점검을 마친 보트 저장고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꿀맛 같은 점심시간이다. 온기 어린 볕으로 식은 몸을 데우고 옷매무새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짜낸다. 비닐랩으로 둥둥 감은 차가운 야채 샌드위치와 과일이 전부이지만 강 수영과 래프팅으로 잔뜩 허기진 나에게는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나른해진 몸을 고이 접어 단잠에 빠지려는 찰나 승선을 알리는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오후 일정의 시작이다. 긴장의 연속이었던 오전과 달리 보트는 흥과 여유로 넘친다. 높은 등급을 여러 차례 타서 일까? 웬만한 낙차에도 꿈쩍 않는다.
- Easy, Easy!(쉽다 쉬워!)
어깨춤을 추며 들썩이는 우리의 모습에 PC는 호탕하게 웃는다.
-이제부터 2.5단계 이하 급류를 만나면 보트 밖으로 뛰어내려요. 래프팅은 맨몸으로 해야 제맛이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끔뻑이는데 일순간 뒷목덜미가 들리더니 물속으로 날아든다. 시야를 가리는 앞 머리카락을 걷어내고 보트 옆구리의 로프를 잡으려 하자 나무 노가 앞을 가로막는다.
- 강의 흐름을 읽으세요. 중앙으로 가면 틀림없어요.
둥둥 떠내려가는 동료들은 당혹감에 언 표정으로 두리번거린다. 확신 없는 눈빛이 교차하지만 배에 오르기엔 이미 늦었다. 점점 속도가 붙는 물살에 휩쓸려 떠밀려가다 물보다 하늘의 비중이 커진 순간 푹 가라앉는다. 꼬르륵꼬르륵. 정수리 위로 파도가 덮치고 코와 입 안으로 강물이 들이닥친다. 꿀렁꿀렁 잠수를 끝마치고 수면 위로 떠올라와도 희뿌연 정신이 가다듬어지지 않는다. 이게 바로 맨몸 래프팅인가.
- 잠베지 물맛이 어떤가요?
시커먼 청록빛을 삼키는 맛이랄까. 휘감는 물결은 푸름보다 어둠에 가깝다. 맨몸 래프팅은 보트를 탔을 때만큼의 극적인 낙차는 없지만 수면과 같은 높이에서 파도를 타는 짜릿함이 있다. 카야커가 강변까지 밀려난 친구를 쫓는다. 하나의 강이지만 물은 저마다의 길이 있다. 각자 내달리는 길이 달라 중심을 관통하기도 꺾기도 가쪽으로 빠지기도 한다. 비슷하게 출발했지만 한참 떨어진 우리는 노를 내려 당겨주기도 어깨를 끌어올려주기도 한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다시금 패들의 면을 모은다.
- Three, two, one, OOH! AAH!
물에 빠진 생쥐꼴이지만 배포는 고래도 집어삼킨다. 다음 타자가 무엇이든 자신 있다. 뒤이어 '엄마' 소리가 절로 나오는 엄마(The mother), 사정없이 몸을 구르게 하는 세탁기(Washing machine), 굉음으로 머리를 울리는 터미네이터(The terminators)가 들이닥친다. 바닥의 움직임과 PC의 목소리에 촉수를 세워 앞으로 숙였다 엎드렸다 하며 유연하게 급류를 넘나 든다. 작은 규모를 만나면 망설임 없이 강의 중심부를 파고들어 온몸으로 파도를 만끽한다. 출렁이는 물살과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꿀렁이는 잠베지 강의 물살을 거슬러 보트로 향한다.
- 18번 급류는 가장 악명 높은 녀석이에요. 과연 몇 명이나 살아남을지 봅시다!
이미 몇 번이나 레벨 5를 이겨냈다. 으쓱대는 어깨로 짐짓 늑장을 부리는데 동료들이 보트 깊숙이 몸을 밀어 넣는다. 잠시 한 눈 판 사이 PC의 지시를 놓쳐버렸다. 아차 하는 순간 보트가 큰 낙차로 추락한다. 선체 테두리의 로프를 꽉 잡고 파도를 탄다. 무사히 위기를 넘긴 안도감에 고개를 들며 숨을 몰아쉬는데 ‘퍽’하는 마찰음과 함께 뒤편으로 날아간다. 보트 전체를 덮는 두 번째 파도를 정면으로 맞고 저항할 힘도 없이 밀려난다. 분명 물에 빠졌겠구나, 본능적으로 직감하며 팔다리를 허우적댄다. 질끈 감았던 눈을 가늘게 뜨자 나무 노가 허공에서 빙빙 돌고 있다. 좌우를 살피니 튜브에 엉덩이가 끼인 것처럼 드라이버 칸에 팔다리를 내놓고 몸째 빠져있다. 다행히 배 밖으로 튕겨나가지는 않았지만 그 모양새가 참으로 민망하다. 발갛게 달아오르는 뺨을 누르며 후들거리는 손발로 자리를 찾아 기어 다닌다. 머리수를 세는 PC의 손가락을 따라가다 보트 위 모두가 배를 잡는다. 래프팅 내내 고공비행을 즐기던 탄자니아 친구가 또 혼자 먼 길을 떠났다. 우리 중 가장 충실하게 급류를 체험하고 있는 동지의 구명조끼를 끌어올리는데 똑같은 비디오테이프를 반복해서 돌리는 듯하다. 명성 그대로 망각(Oblivion)을 불러일으키는 충격의 한 방이다.
씩씩하게 잠베지 강을 즐긴 래프팅 식구들
새벽 해와 함께 시작한 여정도 슬슬 끝이 보인다.
- 대미를 장식해 볼까요? 응당 맨몸으로 마무리해야죠.
마지막 급류를 앞두고 동료들과 동그랗게 손을 맞잡는다. 물살이 거세짐과 함께 잡은 손을 놓으며 꽃잎처럼 흩어진다. 꿀꺽꿀꺽 목구멍을 삼키면서 잠베지 강의 파도를 만끽한다.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거대한 미션을 달성한 기분이랄까. 등을 떠밀듯 보트를 뭍으로 민다. 푸시식 바람이 빠져 쪼그라드는 보트와 달리 마음은 펌프질을 하듯 부풀어 오른다. 하루 종일 긁히고 물에 빠지고 공중으로 날아가고,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했지만 그 모든 과정이 더 큰 힘으로 다가온다. 강물을 머금고 무게를 늘린 옷자락과 내 키만 한 패들을 이고 내려온 높이만큼 산을 타는데도 발걸음에는 에너지가 넘친다. 산등성이 너머 치켜세운 엄지가 보인다.
- The queen is back! (여왕이 돌아왔다!)
래프팅 식구 중 유일한 여성이기에 무사 완주를 축하하는 환호가 두 배로 크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순간을 함께 한 드라이버 PC와 스카우팅 카야커, 래프팅 하는 내내 주요 지점 곳곳에서 미리 대기하여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준 포토그래퍼, 맛있는 식사와 운전을 담당한 스태프들, 그리고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한 여섯 동료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서로를 격려한다. 이보다 완벽한 팀워크가 있을까. 마지막으로 패들의 면을 모은다. 애정과 응원을 가득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