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개섬에서 펭귄마을로 가는 길에는 이름 난 해안도로가 있다. 9km 남짓하지만 통행료를 받을 만한 값어치를 한다. 벤츠, BMW, 아우디, 현대차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이곳에서 자동차 광고를 촬영했고 세계 7대 드라이브 코스로 꼽힐 만큼 탐나는 경치를 자랑한다. 한편으로는 낙석이 수시로 떨어지는 위험천만한 길이기도 하다. 새파란 대서양을 옆에 끼고 깎아지른 절벽 위로 올라서자 계기판의 바늘이 왼쪽으로 기운다. 채프먼스 피크 드라이브(Chapman’s peak drive)에서는 시속 40km 아래로 속력을 제한한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하늘에 닿을 듯 수직 절벽이 내려다보고 오른편으로 시선을 향하면 깊은 낭떠러지가 끝없이 이어진다. 운전자의 눈은 주변을 살피느라 분주하다. 괜스레 그의 손이 땀으로 흥건하지 않을까 살펴본다. 핸들은 쉴 틈 없이 좌우로 돌아간다. 그리 길지 않은 코스에 114개에 달하는 커브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해안도로 중간에서 뜬금없이 기둥 행렬이 나타난다. 옛 그리스의 신전에서 바라보듯 기둥 사이로 바다가 펼쳐진다. 물론 양머리 모양으로 곱게 꾸민 이오니아식은 아니다. 투박한 시멘트 기둥은 필요를 증명하듯 가늠하기 어려운 무게의 천장을 떠받치고 있다. 터널은 155m에 달하는데 차 두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다. 매서운 바닷바람은 연약한 부분을 사정없이 내리치고 부순다. 곳곳으로 떨어지는 암석 덩어리를 막기 위해 산을 깎아 절반만 개방한 하프 터널(half tunnel)을 만들었다. 절경을 놓치고 싶지 않은 바람은 바다로 난 쪽에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기둥을 세우게 했다. 회랑 사이를 거니듯 문득문득 얼굴을 드러내는 남대서양에 탄성이 흐른다. 아찔함은 기억 저편으로 묻어둔다. 한없이 느리게 시간이 흘렀으면 한다.
해안절벽 위로 아찔하게 이어지는 채프먼스 피크 드라이브는 사이클과 마라톤 코스로도 유명하다.
시폰 원피스의 주름처럼 파도가 층층이 밀려온다. 곱게 접힌 물결은 푸른빛의 농도를 달리한다. 눈이 시릴 만큼 짙푸른 대양은 까마득한 수심을 짐작케 한다. 대륙에 가까워질수록 바다는 흰 물감을 조금씩 섞은 듯 하늘색을 띠다 마침내 모래사장에 부딪히며 하얀 거품으로 부서진다. 자연이 선사하는 파랑의 그러데이션은 나의 발을 묶는다. 벼랑 끝에서 내려다본 망망대해는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이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반도를 가로지른다. 구불구불 산길 끝에 다다른 케이프 반도의 동쪽은 대서양을 접한 서편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케이프 반도를 방파제로 삼은 펄스 만(False Bay)에서는 너울이 잦아들고 파도가 숨을 고른다. 평온한 만 깊숙이에 몸을 숨긴 볼더스 비치(Boulders beach)에는 놀랍게도 펭귄이 둥지를 틀고 있다.
북적거리는 관광지를 예상했다면 보기 좋게 빗나갈 게다.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한 펭귄 마을은 따뜻한 햇살을 머금어 생기가 넘친다. 곱게 페인트칠한 벽 너머 잘 가꾸어진 정원은 영국 시골 동네의 정경을 떠올리게 한다. 담벼락에 그림자를 드리운 나무와 벽면을 타고 올라오는 풀꽃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구 반대편에 핀 꽃망울은 다소 생소한 구석이 있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는데 독특한 모양이 눈에 띈다. 파처럼 생긴 줄기가 쭉 뻗어 올라가다가 고개를 꺾고 점차 폭을 좁혀 가느다랗게 입을 다문다. 새의 길쭉한 부리 같다. 줄기의 이마에는 기다란 황금색 꽃잎이 나 있고 사이사이에 듬성듬성 남색 꽃잎이 섞여 있다. 화려한 공작새의 머리 같달까. 꽃의 이름을 물으니 만델라 골드(Mandela’s Gold)란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유난히 좋아해 그의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만델라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될 테다. 전원 나들이도 잠시, 바다 내음이 풍겨오는 삐걱대는 나무 산책로에 들어선다.
소답한 정원은 만델라 골드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나는 식물로 꾸며져 있다.
아프리카에 펭귄이 산다고요? 펭귄은 남극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보니 이외의 공간에 터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다가온다. 몇 해 전 뉴질랜드에서 뒤뚱거리며 해변을 쏘다니던 노란 눈 펭귄과 블루펭귄을 보았을 때에 받은 인상이 그러했듯이. 전 세계 펭귄의 70퍼센트는 남극에 살고 있다. 나머지는 남아메리카, 호주,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등 남반구 몇몇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데 대부분 그리 춥지 않은 곳이다. 적도가 지나는 갈라파고스 제도에서도 씩씩하게 적응하는 걸 보면 새하얀 얼음 왕국에 산다는 오해에 펭귄은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사시사철 푹푹 찌는 더운 날만 있을 것 같은 아프리카에 펭귄이라니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지도에서 남극을 찾아보자. 아프리카 최남단에 위치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남극에 얼마나 근접한 지를 발견하면 그럴 법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게 될 테다.
해안 산책로가 제법 길다. 직선으로 뻗은 길과 나무 계단의 반복이다. 양 옆에는 목재 가림막이 있어 산책로를 제외한 곳의 출입을 엄격하게 막는다. 고개를 빼고 건너를 살피는데 모래와 어지럽게 얽힌 나뭇가지, 듬성듬성 난 덤불 사이로 앙증맞은 움직임이 있다. 사람들의 속삭임은 흙 군데군데 움푹 파인 구멍으로 향한다. 두더지나 토끼 굴 치고는 꽤 크다. 동굴은 굵은 나무줄기와 잔 가지들로 덮여 있는데 하늘을 나는 새나 덩치 큰 동물들이 접근하기에 까다롭겠다. 어두컴컴한 통로에서 푸스스하는 소리가 나더니 까맣고 동그란 머리가 나온다. 무릎 높이의 깜찍한 펭귄이 외출에 나선다. 까망 부리 위 눈두덩이는 연한 핑크빛이 돈다. 얼굴선을 따라 선명하게 흘러내리는 흰 띠는 칠흑 같은 얼굴과 대비를 이룬다. 하얀 가슴팍 상단에는 검은 줄이 가로지른다. 목 언저리에서 시작하는 검정 줄무늬는 아치 꼴로 옆선을 타고 물갈퀴가 달린 발까지 내려온다. 배 곳곳에 난 깜장 반점과 새까만 등허리를 골똘히 관찰하다가 줄무늬 펭귄이라 이름 붙여본다.
볼더스 비치에 서식하는 케이프 펭귄은 삼천 마리가 넘는다.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나미비아 해안에 거주하고 있는 펭귄 종을 아프리카 펭귄이라 한다.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는데 이곳 케이프 반도에 군락지가 있어 케이프 펭귄, 울음소리가 당나귀와 닮아 자카스 펭귄이라고도 불린다. 당나귀의 목청을 들어본 적이 없어 반대로 자카스 펭귄의 말소리로 듣고 당나귀의 울음을 짐작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진다. 해변으로 향하는 길목마다 풀숲 아래 구덩이에서 펭귄들이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튀어나온다. 펭귄 가족은 대문 앞에서 서로를 향해 무어라 외친다. 별이 내리기 전 해야 할 일이 있는 걸까? 산책로의 끝에는 푸른 물결이 가볍게 하얀 모래를 적시고 있다. 파도가 미처 닿지 못한 마른자리에는 거뭇거뭇하고 둥그런 덩어리들이 떼 지어 몰려있다. 새하얀 뭍보다 더 희멀건 배를 바닥에 깔고 가무스름한 등짝으로 햇빛을 흡수한다. 기분 좋게 데워진 오후의 햇살로 일광욕을 즐기나 보다. 조금 전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어 축축한 뭍에는 갓 수영하고 나온 펭귄들이 우두커니 서 있다. 사냥에 돌아와 지친 걸까, 아니면 잔뜩 물기를 머금은 털을 말리는 걸까.
자카스 펭귄은 10~20도 수온의 따뜻한 해류에 서식한다. 사냥을 마친 펭귄은 바다를 등지고 해변에 늘어져 있다.
새까만 돌처럼 움직임이 멎은 펭귄 무리와 달리 윗동네는 사뭇 부산스럽다. 모래사장 북쪽에는 낮게 경사 진 언덕이 있다. 이곳도 펭귄 굴로 땅이 움푹 파여 있다. 해안가 펭귄 마을에는 침입자를 막아줄 덤불과 키 작은 수목이 없다. 대신 지하층을 더 깊이 판다. 쑥 들어간다. 나뭇가지로 둥지를 만들기도 한다. 무엇이 더 푹신할까?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나무 계단을 앞두고 갑작스레 손님이 들이닥친다. 나무 벽면의 벌어진 틈 사이로 펭귄이 침입한다. 보행로를 메운 사람들은 서둘러 공간을 내어준다. 거인들에게 둘러싸였지만 두려움이 없다. 오히려 우리는 안중에 없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저으며 산책로에 흩어진 얇은 가지를 찾는다. 둥지로 쓸 만한 걸 구하나 보다. 바지런히 살피더니 튼실한 걸 부리 사이에 물고 구멍 속으로 유유히 사라진다.
뒤뚱거리는 뒷모습을 보며 새삼 깨닫는다. 보행로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어디까지나 이곳은 펭귄의 영역이고 우리는 잠시 그들의 마을을 방문한 손님이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국립공원이나 동물보호구역을 방문할 때면 동물들은 우리를 벗어나 자유로이 활보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너른 자연 속에서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고 스스로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먼발치서 지켜볼 뿐이다. 허락된 길까지 가고 정해진 규칙을 따른다. 놀라지 않게 함부로 다가가거나 소리 지르지 않는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풍경은 우리 주변에 자리한 동물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들이 있을 곳은 사람을 위해 만든 동물원이 아니라 나고 자란 고향이 아닐까. 케이프 반도의 자그마한 마을에서 인간과 동물이 서로를 존중하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지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