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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 희망곶에 나의 이정표를 세우다

@희망곶과 케이프 반도, 남아프리카 공화국

by 지수


연안을 훑는 배의 움직임이 사뭇 요란하다. 대양을 향해 뻗어나가지도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따르지도 않는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멈춰 섰다가 방향을 잡고 천천히 뱃머리를 돌린다. 꼬불꼬불, 당최 종잡을 수가 없다. 해안절벽 위 좁다란 도로 한 모퉁이에는 차들이 여럿 멈춰 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낭떠러지 아래를 뚫어져라 살핀다.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뻗은 손끝이 한데 모인다. 선미 가까이에서 물보라가 치고 부글부글 하얀 거품이 올라온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분수쇼가 벌어진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희뿌연 물줄기 끝에 매끈하고 거대한 덩치가 떠오른다. 고래가 돌아왔다.


북반구에 위치한 대한민국과 남반구에 자리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계절이 정반대이다. 무더위와 씨름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케이프 반도는 한겨울을 지나고 있다. 처마에 고드름이 달리고 뽀송한 눈이 내리는 날씨는 아니다. 가벼운 겉옷이면 충분할 정도로 온난하다. 철새들이 따뜻한 남쪽 나라로 날아오듯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남극에서도 따스한 바다로 헤엄쳐오는 손님이 있다. 혹등고래와 남방 긴 수염고래가 출산을 하러 케이프 반도를 찾아왔다. 오랜 여행 끝에 다다른 아프리카 해안에는 그들을 반기는 미소가 해사하게 번진다.


보트는 연안을 누비며 고래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케이프 반도는 고래를 가까이 관찰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수도 케이프타운에서 두 시간이면 거뜬할 만큼 접근성도 좋다. 매해 겨울, 앞바다를 누비는 고래를 맞이하러 인파가 모인다. 보다 생동감 있게 관찰할 수 있는 보트 투어도 진행 중이다. 선체는 고래 가족으로부터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진 곳에 자리 잡는다.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생태계를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 다만 인간은 자연에게 공간을 내준 뒤 먼발치서 그 경이로움을 체험한다. 높다란 파도가 바람을 껴안고 맹렬하게 웅웅거린다. 숨죽인 채 바쁘게 물살을 살피는 가운데 새하얀 물보라가 사방으로 흩어진다. 오래 잠수를 끝마치고 떠오른 고래가 뿜어내는 물줄기에 수면이 뒤집힌다. 뱃머리까지 물방울이 튄다. 승객들은 스프레이처럼 흩어지는 바닷물 샤워를 만끽한다.


무너질 듯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신비를 품은 케이프 반도의 종점으로 향한다. 세상의 끝이 코앞이다. 가장 먼저 반기는 건 하늘 가까이에 우뚝 솟은 하얀 등대다. 과거 항해자들에게 불빛을 쏘아주었지만 지금은 반도의 최남단인 케이프 포인트(Cape point)를 내려다보는 전망대로 쓰인다. 닮은 구석이라고는 하나 없는 거친 돌무더기 위에 늠름하게 서 있다. 옛 등대 앞에는 세계 여러 도시의 이름과 거리를 나타내는 화살표 모양의 팻말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여행자들의 고향을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을 하나 보다. 반도인들은 케이프 포인트를 거인의 발가락이라 부른다. 들쑥날쑥 들고나는 모양 때문일까, 묘한 설득력이 있다.


등대 앞 방향 표시 팻말에는 각양각색의 재미난 스티커가 붙어 있다.


발가락에서 너른 발등을 지나 발꿈치로 건너간다. 거인의 굳은살 밴 뒤꿈치에는 탐험가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희망봉이 있다. 세상의 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머리카락을 깃발처럼 휘날리게 한다. 케이프 반도의 필수품인 머리끈을 깜빡 빠뜨렸다. 시야를 가리는 머리 뭉치를 한 손으로 틀어잡고 전진한다. 대양의 기세는 이 땅의 모든 존재에게 공평하게 사납다. 사정없이 깎인 바위와 돌멩이로 지면이 지압판마냥 울퉁불퉁하다. 돌덩이 사이사이에는 자그마한 풀과 꽃이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 낯선 이국의 초본은 자그마하다. 목을 길게 뺐다간 금세 꺾일 테다. 자세를 낮추어 눈높이를 맞춘다. 돼지의 귀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코틸레돈 오르비쿨라타(Cotyledon orbiculata)가 고개를 잔뜩 수그리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자생 다육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초롱꽃을 닮은 녀석은 핑크색 소시지를 문어 모양으로 칼집을 낸 듯하다. 포켓몬스터의 냄새꼬를 연상시켜 한참 비교해본다.


태양을 등지고 언덕을 누비는 일런드 영양


나무판자를 이어 붙인 보행로는 고르지 못한 바닥을 대신한다. 왼편에 까마득한 바다를 끼고 희망의 언덕을 넘는다. 잿빛 바위 위로 나선 모양으로 비틀어진 뿔이 보인다. 거대한 전동드릴 같다. 얼굴은 사슴인데 몸은 소다. 영양 중 가장 덩치가 큰 일런드영양(Eland)이다. 괜히 다가갔다가 뿔에 받칠까 물러선다. 하얀 고개는 지루할 틈이 없다. 바위산 곳곳에서 예고 없이 동물들이 인사를 건넨다. 유유히 긴 다리를 성큼성큼 뻗는 타조와 삐죽한 돌에 앞발을 올리고 한숨 돌리는 얼룩말이 있다. 개코원숭이는 짝을 이루어 서로의 등을 시원하게 긁는다. 사람을 피하지도 덤벼들지도 않는다. 끊임없이 나타났다 떠나는 동물들의 행렬 너머 높다란 봉우리가 있다. 가장 높은 암석 위에 올라 두 팔 가득 벌린다. 세상의 끝에서 대양의 숨결을 들이쉰다. 옛 모험가의 포부가 허파를 타고 혈액을 돈다.


이 땅을 처음 밟은 탐험가는 얼마나 가슴이 뛰었을까.


가파른 내리막이 등장한다. 줄지은 계단을 따라 태양도 한 층씩 내려간다.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은 석양으로 노랗게 물든다. 칼로 벤 듯 수평으로 난 줄무늬 암벽은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나무 표지판에 커다랗게 적힌 이름을 보고 다시금 실감한다. 아프리카 대륙의 끝 희망봉(Cape of good hope)에 다다랐다. 널리 알려진 이름과 달리 우리는 ‘희망곶’이라 부른다. 거인의 발꿈치가 바다 쪽으로 튀어나와 있어 지형상 곶이 알맞은 표현이기 때문이다. 희망봉은 잘못된 일제식 지명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 대서양과 인도양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일컫지만 진짜 땅끝마을은 아굴라스 곶(Cape of L’Agulhas)이다. 발견 당시 정확한 지리를 알지 못해 생긴 오류이지만 작은 실수는 희망곶의 상징성을 조금도 흠집 내지 못한다. 희망곶의 발견은 세계를 뒤흔든 역사적 사건이다.


광활한 대지와 무한한 대양은 세상의 끝에서 만난다.


1488년 포르투갈 함대를 이끄는 바르톨로메우 디아스는 아프리카의 남쪽 끝을 알아내라는 명령을 받고 출항한다. 그는 13일 동안 거센 강풍과 파도에 표류하다가 유럽인 최초로 희망곶을 발견한다. ‘폭풍의 곶(Cape of Storms)이라는 별칭은 그때 만들어진다. 고향으로 돌아온 디아스를 만난 주앙 2세는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희망곶’이라 바꿔 부른다. 이후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곶을 돌아 인도에 도착하면서 희망은 현실로 이루어진다.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식민지 건설과 약탈이 본격화되고 서양 중심의 질서가 세워지는 구심점에는 희망곶이 있다. 근대의 문을 연 열쇠를 앞에 두고 감정이 엎치락뒤치락한다. 인류의 위대한 도약인지 세계를 화염으로 뒤덮은 스모킹 건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노을이 타오르는 희망곶을 보며 마음에 울리는 소리를 입 밖으로 흘려보낸다. 찬란하게 반짝이는구나. 오늘날 이 공간은 새롭게 쓰이고 있다. 인간의 성장과 죄악의 시발점에 대입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의미를 부여한다. 과거 항해자들은 북극성을 보고 길을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남반구에서는 북극성을 볼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새로운 뱃길을 개척하다 보니 경험도 지식도 부족했다. 위치를 가늠하고 방향을 세울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다. 독특한 지형과 비석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그들에게 희망곶은 목숨과 목표를 지키는 이정표였던 셈이다. 아프리카 종단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인 희망곶은 나에게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꿈과 새로운 도전의 마침표이자 출발점으로 자리매김했다. 세상의 끝에서 가슴이 뛰었던 건 이곳이 나를 성장시키는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었음을 알았기 때문 아닐까.


우리가 정복한 희망곶을 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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