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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Sep 15. 2021

길 한가운데에 버스를 세우다

@더니든에서 테 아나우로 가는 길 위에서, 뉴질랜드


 창에 드리운 햇살이 낮고 깊어진다. 건너 좌석 팔걸이에 간신히 닿던 키는 시간을 먹고 자라더니 어느새 커튼 아래 무르팍을 간지럽힌다.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는 손가락 위로 주홍빛 그림자가 일렁인다. 버스의 움직임에 맞추어 흔들리는 태양의 물결은 손등에 지도를 그렸다 고쳤다 한다. 여름날 탐스러운 오렌지를 닮아 잿빛 먹구름이 낀 기분에 온기를 더한다. 해를 쫓아 산길을 헤치던 버스는 눅눅한 습기를 머금은 땅에 바퀴를 세운다. 강렬한 빛줄기는 어스름이 내린 호수에 잠긴 지 오래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승객들이 하나둘 떠나는데 못내 아쉬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휘청이는 갈피를 다잡고 선반 깊숙이 들어간 짐을 끌어당긴다. 명랑한 목소리가 축 처진 어깨를 놓치지 않고 불러 세운다. 다정한 말마디는 내내 어지럽던 마음을 진정시킨다. 그의 입술은 몇 시간 전 대화를 나누던 말 모양과 또렷하게 겹쳐진다.


 더니든(Dunedin) 시내 중심에는 크기가 다른 두 개의 팔각형 도로가 안팎으로 나 있다. 모양 그대로 이름을 붙여 옥타곤(Octagon)이라 부르는데 도심 곳곳을 연결하는 심장부라 할 수 있다. 사흘간 부지런히 쏘다녀도 헤매기 십상인 지옥의 교차로지만 떠나는 날 오후가 되니 어느새 눈에 익어 작은 거리와 모퉁이마저 세심하게 살피게 된다. 며칠 전 남섬 최대 도시인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에서 더니든에 도착했을 때 받은 인상이 문득 떠오른다. 크라이스트처치가 잉글랜드 향을 물씬 풍긴다면 더니든은 스코틀랜드풍으로 꾸며져 있다. 에드워드 양식과 고딕 양식이 혼재된 옛 석조건물들을 보면 ‘스코틀랜드 밖에서 가장 스코틀랜드다운 도시’라는 별칭이 허풍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고풍스러운 풍경만으로 여행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하지만 이곳이 유난히 좋았던 까닭은 도시 전체가 뿜어내는 싱그러운 에너지 때문이다. 더니든은 뉴질랜드 최초로 세워진 오타고 대학을 품고 있어 인구의 20% 이상이 대학생이다. 중후한 인상과 더불어 젊음의 활기를 띄는 도시는 상반된 이미지로 더욱 매력적이다.


더니든의 고풍스러운 건물과 우중충한 날씨는 스코틀랜드를 빼닮았다.


 옥타곤 어귀에서 고삐를 푼 버스는 서서히 멀어지는 시가지를 뒤로 한 채 무심하게 달린다. 떠나는 도시를 향한 아쉬움은 다가올 기나긴 기다림으로 방향을 돌린다. 오늘은 남섬의 남동부에서 남서부로 가로지르는 제법 긴 여정을 소화해야 한다. 목적지인 테 아나우(Te Anau)까지 여섯 시간 남짓 걸린다. 뉴질랜드의 목가적인 풍광은 지루할 겨를이 없지만 혼자 떠난 여행은 말동무가 없어 다소 입이 심심한 법이다. 이럴 때면 넉살 좋게 주변의 누군가에게 말을 붙이곤 하는데 뒷자리의 여행자가 호기심을 자아낸다. 얼굴은 타국에서, 특히 다른 문화권에서 여권처럼 쓰이기도 한다. 정확한 국적은 알 수 없지만 옷매무새와 은연히 전달되는 분위기는 크게 예측을 빗나가지 않는다. 버스 맨 뒷좌석에 홀로 앉은 사내는 백발의 단정하게 다듬은 머리 위로 길이를 조절하는 끈이 달린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있다. 시선이 마주치면 피하지도 눈인사를 보내지도 않지만 차분하게 차창밖을 응시하며 자신의 공간을 확보한다. 정갈하게 다문 입매는 필요 이상의 말을 아끼고 키가 큰 배낭은 불룩 튀어나온 곳 없이 말끔하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혼자 짐을 꾸려 뚜벅이 여행을 떠나는 동양인 남성이라면 높은 확률로 일본인일 게다.


 인사를 해볼까 곁눈 짓을 하는 와중에 노란 초원이 뭉게구름을 벗 삼아 달리기를 한다. 등받이에 체중을 실으며 고개를 젖힌다. 시간은 넉넉하고 기회는 언제든 있다. 이어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음악은 눈앞에 펼쳐진 정경에 선율을 입힌다. 훗날 여행을 상기하면 장면은 리듬과 하나 되어 생동감 있게 그려질 것이다. 멈출 새 없이 천연의 색감을 훑던 차량은 소도시 고어(Gore)의 정차역에서 숨을 고른다. 널찍한 내부에는 빨간 당구대가 테이블을 대신한다. 대충 세어도 열을 훌쩍 넘는다. 그 옛날 역사에서 삼삼오오 모여 바둑을 두던 어르신들처럼 자그마한 마을의 버스정류장은 주민들이 어울리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걸까. 위스키와 보드카, 와인을 빼곡하게 줄 세운 바를 보며 갸웃거리다가 어정쩡한 미소로 주문한다. 마실만 한 게 있으려나. 바텐더는 능숙하게 매일 쨍쨍한 시간대에 등장하는 여행자에게 달달한 딸기 셰이크를 만들어준다. 깜찍한 키위가 셰이크를 먹는 모습이 그려진 종이컵은 도무지 배경과 어울리지 않지만 말이다.


당구장을 연상시키는 고어의 버스정류장. 뉴질랜드의 상징인 키위가 셰이크를 먹고 있다.


 돌아온 버스 안에는 승객이 몇 없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잠시 후 새로운 여행자들이 빈 곳을 속속 채운다. 특별한 것 없는 소박한 동네 고어가 복잡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곳은 서부의 테 아나우와 남부의 인버카길(Invercargill)의 갈림목 역할을 한다. 인버카길은 뉴질랜드의 땅끝마을이자 세계 최남단 도시다. 남극이 그리 멀지 않다. 최북단, 최서단처럼 대륙의 ‘끝’은 낱말 스스로 힘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의 관심을 빨아들인다. 예나 지금이나 끝자락에 다다르거나 정복하려는 심리는 여전한가 보다. 여행가방이 교차하고 짐칸이 묵직해지자 테 아나우행 버스는 다시 힘차게 불을 뿜는다. 앞으로 세 시간이면 피오르 골짜기에 발을 담글 수 있으리라. 서쪽으로 부지런히 액셀을 밟기도 잠시 덜컹이며 브레이크를 건다. 엔진이 고장 난 걸까.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길가에 차를 세운다. 기사는 운전석에서 일어나 통로를 뚜벅뚜벅 걸어온다. 그의 신발 코는 맨 뒷자리를 향한다.


- Mr. Yamada? (야마다 씨 맞나요?)

야마다라는 이름을 가진 나이 지긋한 여행자는 갑작스러운 물음에 목을 길게 뺀다. 기사는 야마다 씨에게 이것저것 빠르게 질문하는데 말꼬리가 길어지는 만큼 눈빛의 흔들림이 격해진다. 모든 승객의 시선이 뒤편으로 쏠린다.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겠다. 그는 영어를 하지 못한다. 소리 없이 입만 뻐끔하는 모습에 기사는 입술을 깨문다. 무언가 곤란한 상황이 벌어진 게 틀림없다. 앞머리를 연신 쓸어 올리던 기사는 바로 앞자리의 나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 어떻게든 해보라는 간절한 외침이다. 이 버스에 동양인은 야마다 씨와 나, 둘 뿐이다. 나는 일본인이 아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별 수 없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상체를 홱 튼다.


日本人ですか? (일본인이신가요?)

야마다 씨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다. 대학생 때 일 년 간 일본인 친구와 룸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간단한 일상회화는 할 수 있지만 이후에 별달리 쓸 기회가 없었다. 어느 만큼 이야기할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 どこへ行きますか。(어디로 가세요?)

내가 일본인이 아니라는 걸 알았나 보다. 그는 여행 책자의 한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인, 버, 카, 길? 가타카나로 쓰인 글씨를 한 자씩 읽다가 마지막 글자에서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떨리는 눈동자로 기사를 올려다보자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야마다 씨는 고어에서 인버카길행으로 환승해야 했다. 뉴질랜드는 차편이 많지 않다. 더욱이 인터시티 버스는 반드시 예약을 해야 한다. 버스 회사는 관광객들이 주로 다니는 루트를 고려하여 노선과 배차 간격을 정한다. 사전 예약 시스템으로 운전자들은 승객의 탑승 이력도 확인할 수 있다. 분명 인버카길행 차량에 오르지 않은 야마다 씨를 찾다가 이곳으로 연락했을 것이다.


야마다 씨는 이 길을 걸어 한적한 소도시를 배회했을 테다. 


- 인버카길로 가는 버스가 있나요?

기사는 단호하게 가로젓는다. 이미 떠났단다. 다음 차량은 내일 같은 시간에 고어에서 출발한다. 야마다 씨는 하루에 딱 한 번밖에 없는 차편을 놓친 셈이다. 이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한담. 머리가 지끈거린다.

このバスじゃないです。(이 버스가 아니에요.)

그는 앞좌석 시트를 꾹 누르며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본다. 전할 말이 많은데 낱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입안에서 단어가 뒤섞이고 날아다닌다.

- 야마다 씨에게 어떻게 할지 물어봐 주세요. 이 차를 타고 테 아나우까지 갈 건지, 아니면 여기서 내릴 건지.

통역사의 고충이 금세 이해된다. 한 번은 영어로, 다른 한 번은 일본어로 내용을 옮기다 보니 어느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다. 두 외국어가 충돌한다. 이건 영어도 일본어도 아니다. 당황하니 말문이 막히고 뭐에 걸린 듯 가슴이 답답하다.


- 오늘, 버스 없어요. 내일, 있어요. 그러니까, 내려서 걸어요. 저쪽에, 버스터미널 있어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당장 떠오르는 낱말을 무작정 내뱉는다. 손짓 발짓을 해가며 안간힘을 쓰자 야마다 씨도 미간을 찌푸리며 조금이라도 알아들으려 애를 쓴다. 점잖은 그가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직관적인 몸짓을 아이처럼 따라 한다. 마지막에는 뜻 없는 단발의 소리로 소통한다. 어느 정도 전달이 되었나 보다. 배낭을 들쳐 메고 서둘러 내리는 뒷모습에 마치 내가 그가 된 것마냥 초조하고 두려움이 앞선다. 바퀴가 구르고 어수선한 실내가 정돈되지만 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제대로 전하지 못한 말마디가 사위를 에워싼다. 환승이라는 단어가 왜 안 떠올라가지고. 오늘 버스가 없다는 걸 이해했을까. 오해해서 허겁지겁 달려간 건 아니겠지. 예약하라는 말을 했던가. 여행 일정이 어그러지면 안 되는데. 오늘 밤 묵을 숙소는 있으려나. 처음에 인사를 건넬 걸 그랬어. 그러면 고어에서 내리라고 말했을 텐데.   


구름이 피오르드랜드의 산정을 덮고 있다. 비 갠 테 아나우 호수를 걸으면 마음이 잔잔해진다.


 빗줄기가 거세게 창을 때린다. 손바닥으로 유리를 쓸고 물기를 닦아내도 뿌연 안개가 시야를 가로막는다. 남섬은 우리나라와 반대로 여름이 건조하고 겨울이 습하다. 이 계절에 수도꼭지를 끝까지 돌려 물이 폭발하는 듯 폭우가 쏟아지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다. 물난리가 난 도로를 보니 피오르드랜드에 들어섰나 보다. 이곳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때문에 일 년 내내 장마철처럼 꿉꿉하다. 산등성이를 넘지 못한 구름이 골짜기에 걸려 머금은 물방울을 제멋대로 털어낸다. 빙하도 내 속을 아는지 능선을 따라 눈물을 흘린다. 딱딱하게 굳은 응어리도 씻겨 내려가면 좋으련만. 고개를 넘자 무섭게 퍼붓던 소나기도 안녕이다. 변덕스러운 하늘은 젖은 대지를 붉은 열로 데운다. 태양빛은 뉴질랜드에서 가장 깊은 호수 속으로 침투한다. 거친 비를 뚫고 오니 거짓말처럼 ‘비처럼 물이 샘솟는 동굴’이 기다리고 있다. 


 마오리는 글씨도 발음도 올망졸망 어여쁜 이름을 호수에 붙였다. 테 아나우는 긴긴 시간 인내한 여행자를 은은한 노을로 환대한다. 저릿한 다리와 아물지 않은 기억을 토닥이며 마을 어귀로 들어서는데 낯익은 음성이 어깨를 잡아끈다. 기사는 장갑을 벗고 악수를 청한다.

- 아까 정말 고마웠어요.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덕분에 모두가 평안하게 올 수 있었어요.

오랜 운전과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누구보다 힘들었을 텐데 잊지 않고 고마움을 표한다. 요동치는 감정이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전하는 작은 감사에 사르르 녹아내린다. 야마다 씨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돌이켜보면 그는 언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혼자 떠날 줄 아는 용감한 할아버지다. 이보다 더 곤란한 일을 여럿 당했을 지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겨내 왔을지도 모른다. 문득 여행의 기술은 언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게 실감 난다. 그저 오늘 밤 우리 셋 모두 시원한 맥주 한 잔으로 털어버리고 단잠을 자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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