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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May 20. 2022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사람은 바뀌지 않는 걸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타고난 성격과 오랜 기간 형성된 생활습관으로 수십 년을 살아왔으니 당연하다. 문제는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다. 자신의 기질과 성향은 선택할 수 없지만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어릴 적 상처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트라우마, 환경에 대한 불만족은 마음의 가시가 되어 불쑥 자신과 상대를 찌른다. 그 어려움과 아픔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바꾸려는 의지가 있으면 변할 수 있다는 믿음 또한 가지고 있다. 나 또한 긴긴 시간 스스로를 미워했고 달라지려고 부단히 애썼기 때문이다. 종종 창에 찔린 듯 나의 뾰족한 부분이 가슴을 쿡쿡 찌를 때면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할 수 있다’고 다짐한다. 지금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




#성격을 바꿀 수 있을까?


 고등학교 시절은 나의 암흑기였다. 잘 웃지 않는 시니컬한 학생의 전형이었다. 졸업앨범 속 살기 어린 나의 눈빛에 깜짝 놀랄 정도였으니 말이다. 새내기 대학생 때도 이미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해가 쨍하게 비치 날 벚꽃 아래에서 사진을 찍었다.

-왜 이렇게 화나 보여? 웃어 봐!

친구의 주문에 맞추어 한껏 미소를 지었지만 주변의 반응이 영 별로였다. 분명 웃고 있는데 무엇이 문제인 걸까?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입꼬리만 아주 조금 올라가 있었다. 언제부터 웃는 법을 잊어버린 걸까? 딱딱하게 굳은 내 표정과 냉소적인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날부터 거울을 보면서 웃는 연습을 했다. 입꼬리를 위로 당기고 입을 벌려 소리를 내 보았다. 눈은 그대로인데 입만 웃는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이 이 광경을 봤다면 분명 이상하게 쳐다봤을 테다. 모임을 나가면 일부러 과장되게 웃었다. 나의 표정과 제스처가 어색하든 신경 쓰지 않고 일단 크게 표현하였다.


 반년이 지났을까. 지나가던 친구가 물컵을 엎질러 옷이 젖었다. 찌푸린 표정으로 황급히 얼룩을 닦았다. 지켜보던 동기가 화들짝 놀라며 괜찮은지 물었다. 별 일 아닌데 왜 이렇게 호들갑일까?

-네가 짜증 내는 걸 처음 봤어. 기분이 많이 안 좋은 건가 싶어서.

이게 무슨 소리람. 친한 언니에게 물었다.

-나 화내는 거 본 적 있어?

-아니. 너 맨날 생글생글 웃고 다니잖아. 못 본 거 같은데.

반년 만에 나는 활기차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원래 나의 밝은 면이 이제야 나온 걸까? 아니면 노력으로 스스로를 바꾼 걸까? 정확한 까닭은 모르지만 타인의 눈에는 내가 항상 웃는 사람으로 비치고 있었다. 거울을 뚫어져라 보며 씩 웃었다. 거울 속 나는 누구보다 밝고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토록 마음에 들지 않던 나의 표정과 성격에서 온기를 느낄 줄이야.



#상처와 방어기제 넘어서기


-저는 공평하지 않은 걸 참을 수가 없어요.

신입 시절 직장 상사에게 부당한 일을 당했다. 모두가 꺼리는 업무를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해야 했다. 필수도 아닌 일거리를 처리하려고 퇴근 이후 시간과 주말을 반납해야 했다.

-아이가 있으면 주말에 출근하기가 어려우니까. 미혼인 사람한테 부탁하는 거지. 자기가 이해해 줘.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아이가 없는 사람은 업무 이외의 개인 시간에 일을 해도 괜찮은 걸까? 원칙도 근거도 없는 불공정한 업무 배분에 속이 끓었다. 어느 순간 나는 상사와의 갈등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가까운 선배가 마음이 쓰였는지 따로 불러내었다.

-저도 관리자의 일 처리 방식에 동의하지 않아요. 다만 유독 이번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서요.

업무 분담 방식에서 비롯된 이야기는 나의 삶에 맞닿았다.

-어릴 적 할머니께서 차별을 많이 하셨어요. 고기반찬은 늘 오빠 차지였고 딸은 낳아서 무엇하냐며 면박을 주셨어요. 자기 자신도 여성이면서요. 그때부터 어느 방향이든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참을 수가 없어요.


-평소 공정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일 년 동안 지근거리에서 함께 한 선배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나 보다.

-잘못된 부분은 논의해서 고쳐야죠. 다만 보다 부드럽게 갈등을 풀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다. 다른 문제였다면 이리도 기분이 상했을까? 상대가 나의 방어기제를 건드리자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앞으로 불공평한 사안을 무수히 마주하게 될 거예요. 그때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요. 과거의 상처에 지지 말아요.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 맞은 듯했다. 마음의 흉터는 내가 만든 게 아니지만 어떻게 관리할지는 정할 수 있었다. 매 순간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선배와 동일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연습했다. 이날의 경험은 과거의 아픔과 방어기제로 똘똘 뭉쳐 뾰족하게 반응하는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했다.



#성향의 단점 보완하기


-난 가을이 정말 좋아.

A는 나와 성향이 정반대인 친구다. 좋아하는 계절만 봐도 알 수 있다. 봄, 여름처럼 난색(暖色)의 계절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A는 가을, 겨울과 같이 한색(寒色)의 계절을 사랑한다.

-해도 짧고 날도 추워지잖아. 무엇보다 끝나는 듯한 느낌이 싫어.

-왜? 난 결실을 맺는 연말이 정말 좋아.

이것저것 눈에 들면 주저 없이 하는 나는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끈기가 부족했다. 조금 손 대보고 싫증을 내거나 벌린 작업을 완결 짓지 못했다. 한 번 시작한 일은 우직하게 해내는 A를 보며 열매를 맺는 기쁨을 느껴보고 싶었다. 버킷리스트 중 항상 첫 번째는 내 이름으로 책을 쓰는 것이었다. 문제는 작심삼일이었다. 며칠 쓰다가 금세 잊어버리곤 했다. 지속하는 힘이 부족한 내 성향을 보완할 방법이 없을까? 강제력이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한 해 동안 여러 작가가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 프로젝트에 지원했다.


 마감일이 다가오면 마음이 조급해졌다. 퇴근 후 머리를 쥐어뜯으며 글을 썼다. 마감이라는 두 글자는 글을 쓰는 관성을 만들어주었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마음에 들지 않은 주제를 과감하게 버리는 작업 끝에 다섯 꼭지를 완성했다. 인쇄 전까지 같은 글을 수없이 반복해서 읽으며 수십 개의 수정본을 제출했다. 한 챕터를 쓰는데 일 년을 투자한 경험은 뚝심이 부족한 나의 성향에 큰 변화를 주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만큼이나 애정을 들여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여전히 나는 일단 들이박고 보는 성향이다. 할까 싶을 때는 일단 하고 본다. 다만 하나를 더 챙긴다. 기한이 정해져 있거나 결과물을 내는 프로그램을 찾는다. 100% 완벽하게 해내겠다는 욕심은 없다. 과정을 즐기고 꾸준히 일궈 낸 결과를 확인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데 만족한다.

 



 벌써 2022년의 절반에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 시간을 충실하게 보냈나 돌아본다. 뿌듯한 점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어떻게 항상 마음에 쏙 들겠냐마는 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되새김질을 한다. 지금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바꾸어 보자. 어려운 일이지만 습관과 환경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는다. 잘 되지 않아도 괜찮다. 이번 마감을 놓쳐도 다음 마감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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