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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bedobedo Apr 15. 2018

사물의 인격, 인간의 인격

모 항공의 갑질을 보면서

옷장 속 비밀병원

어렸을 때 장난감을 자기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장난감에 대한 애정에 비례하여 장난감들은 쉽게 고장이 났었다.

첫 번째로 고장났던 파워레인저 레드에게는 그 동안 악당과의 싸움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해야 했고, 같은 편에서 가상의 헬파이어 미사일을 열심히 쏘다가 부서진 아파치 헬기에게도 보상이 있어야 했다.


결국 이들을 위해 옷장 속 비밀병원을 만들었다. 악당들이 발견하지 못하도록 옷장 속에 몰래 감추어 두었는데, 선과 악으로 구분되는 비밀병동의 세계는 파워레인저와 치열하게 싸우던 악당 중의 악당, 티라노사우르스가 함께 병원 신세를 지게 되면서 더 이상 이데올로기적인 구분은 없어지게 되었다.


병동에 있었던 파워레인저와 아파치, 그리고 티라노사우르스가 그 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진 못했지만, 이후 책상 위 건담과의 우주전쟁이나 해적 레고전사들과의 5차 대전에서 벗어나 안식을 취할 수 있었다.



사물도 인격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사물에는 생명이 없다. 하지만 생명이 없다고 인격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굳이 사물에 이름을 붙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어떤 사물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그 사물에게는 인격이 생긴다. 늙은 자동차, 건강한 냉장고, 말 안듣는 노트북처럼.



사람은 인격이 있어야 한다.


최근 무슨 항공 오너의 갑질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갑질은 사람에게서 인격을 지운 뒤 하나의 물건으로 생각할 때 일어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마치 몇 년간 쓰고 버리는 책상이나 최신 컴퓨터를 사는 것처럼, 사람을 어떻게 '소비' 하거나 '구입' 할지를 생각하고 쓸모가 없어질 때 '처분'하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자본주의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 모든 일들이 누군가의 일상이라는 사실이다. 인격 없이 일하고, 인격 없이 대하는 이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는 그저 일상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은 인격이 있는,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일으킨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데 우리 역시 모든 사람을 하나의 인격으로 대한다고 100% 확신할 수 있을까. 점점 사람과 사물과 인격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


예전의 스팸전화는 적어도 중국 어디선가의 사람이 했었지만 지금은 정확한 억양의 음성을 지닌 로봇이 대체하고 있다. 어디 스팸전화 뿐일까. a/s 콜센터, 택배회사 직원, 숙박예약 등 다앙한 접점에서 우리는 점점 사람을 사물처럼 대한다.


특히 인공지능과 사람의 경계가 점점 더 허물어 질수록 우리는 사람을 사물처럼, 사물을 사람처럼 대하는 일에 익숙해 질 것이다.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다시 어린 시절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장난감을 하나의 인격으로 대했듯, 장난감 역시 나를 하나의 인격으로 생각했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그리고 무엇인가를 단지 수단으로만 대한다면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수단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우리가 누군가를, 그리고 무엇인가를 목적으로 대한다면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는 온전한 목적으로 존재한다 기대할 수 있을 것이고, 실제로 그러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걱정하지 말자. 세상 모든 사람과 사물을 하나의 인격으로 대한다면 이미 당신의 삶은 친절과 행복으로 충만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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