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사무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원격업무(Remote work)' 생소한 미래지향적 단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미 미국에서는 직장근로자중 절반 이상이 주 1회 이상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자유롭게 일한다. 과연 우리나라도 가능할까?
1년만에 글을 쓰려고 하니 어색하다. 도입부가 3류 신문사 칼럼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왜 원격업무 문화를 시작하게 됐고,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실제로 효과가 좋은 지를 자유롭게 써보려고 한다.
2014년, 처음 창업을 하기위해 친구와 함께 출가했을 때, 우리는 작은 원룸을 얻어 시작했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두명이 앉을 수 있는 긴 책상을 놓고 원룸에서 일을하자고 했지만, 남자 둘이서 비좁은 공간에서 붙어서 일한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일이었다. 상대방 다리 떠는 것 조차 짜증이 났고, 우리는 결국 저마다 카페로 일을 하러 떠났다.
심지어, 우리는 같은 카페에서도 일을 하지 않았고 부득이하게 원격업무를 하게됐다. 서로 같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선 다양한 소프트웨어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서로에 대한 확신, 떨어져 있을 때 내 생각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같은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소프트웨어에게 의존했다. 이 과정에서 에버노트, 구글드라이브, 드롭박스, 박스, 힙챗(지금으로 따지면 Slack), 트렐로 등 다양한 툴을 이용했는데, 할 일을 정리하고, 그것을 마무리 하는 것은 완벽했지만, 내 생각, 아이디어, 디자인 등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결국 우리는 만나서 화이트보드에 함께 드로잉하며 생각을 일치시키고 각자 카페로 가야만 했다. 생각이 일치하지 않은 상태에서 각자 업무를 하게 되면, 하루종일 열심히 뻘짓만 하고 오는 위험이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개발하고 디자인하며 밤을 새고 맥모닝을 먹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냥 내가 한번 회의실과 화이트보드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 겠다'
그 때 한창 맥모닝 핫케익에 찍는 꿀시럽 같은게 있었는데, 벌들이 열심히 꽃에서 뭔가 가져와서 이렇게 맛있는 꿀이 된 것이 우리가 아이디어와 정보를 긁어와서 의미있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봤다. 그래서 이름을 비캔버스(BeeCanvas)라고 지었다. 내가 개발을 했고, 친구가 열심히 디자인을 했다. 론칭시킬 생각은 없었고, 우리가 쓰려고 만들었다.
그러다가, 어떻게 열심히 하다보니 사람들이 쓰고싶어하고, 법인도 만들고 투자도 받고 갑자기 정신없이 사업이 시작됐던 것 같다.
이후 4년. 잊고 살았다. 사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투자받고 개발하고, 동기부여하고 이것 저것 하다보면 처음에 우리가 이걸 왜 하게 됐는지, 왜 이게 우리에게 중요한지를 망각하게 된다. 올해들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이런 초심을 다시 찾게 됐다.
비캔버스를 쓰는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고, 회의실과 화이트보드를 통으로 들고다니는 것과도 같아야 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과감하게 우리 회사는 주 1회 원격업무를 선언했다. 우리 회사만해도 출퇴근 시간이 왕복 2-3시간 되는 사람이 절반이었다. 약 6개월이 넘는시간 이런 문화를 가졌는데, 결과적으로 성공적이다. 업무달성률이 30%가 넘게 올랐으며, 사람들의 피로도도 대폭 떨어졌다. 내부적으로 이 문화에 대한 만족감도 매우 컸다.
우리가 이 문화를 만들기 위해 쓴 소프트웨어는 딱 네가지였다.
1. Monday (일정, 할 일 관리) : 개인, 팀의 KPI를 설정
2. Facebook workplace (소셜네트워크) : 업무 이야기를 나누는 핵심 채널
3. Slack (잡담) : 업무 이야기는 안하고 잡담 위주. 메신저로 소통하면 오해가 생기기 때문. 말 그대로 메신저.
4. BeeCanvas (회의실, 화이트보드, 노트) : 말 그대로 회의실, 개인노트, 화이트보드 용도로 썼다.
우리의 모든 업무방식(Workflow)에 이 네가지 소프트웨어가 있으면 완벽하게 안만나고도 일할 수 있었다.
우선, 안만나고 일할 때는 아침 회의가 가장 중요하다.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정하고, 오해가 없도록 목적을 일치시켜야 한다. 비캔버스의 미팅기능을 활용해서, 서로 화상으로 얼굴을 보며 화이트보드에 서로 일정,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그날 할 일을 정한다.
이후, 관련 업무에 대해 이야기 나누거나,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땐, 각자 개인이 캔버스에 자신의 기획안, 제안을 기록한 뒤 Workplace에 캔버스 링크를 첨부한다. Workplace에 캔버스 링크를 첨부하면 썸네일 이미지도 들어가서 이해하기 훨씬 쉽다.
이렇게 일을 하다보면, Monday에서의 To do(할 일)이 Done(완료) 처리 된다.
핵심은 메신저로 업무 이야기를 안하는 것이다. 메신저로 업무 이야기를 하면, 오해가 생기기 매우 쉽고 뭐 하나라도 설명하려면 채팅을 엄청 길게 해야 한다.
이 위에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실제로 이렇게 소통한다. 그런데, 절대 대다수가 업무 커뮤니케이션을 메신저에 의존한다. 이 때문에, 안만나고 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같은 사무실에 있으면서 메신저를 쓴다. 그러다가 답답하거나 조금 복잡해질 것 같으면 불러서 이야기 나눈다. 결국 메신저는 안만나고 일할 수 있도록 돕는 툴이 아니다.
스탠포드 비즈니스스쿨 연구결과에 따르면 집에서 일하는 인력이 업무 생산성이 13% 높으며, 연간 기업에 200만원 이상의 이득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그러나, 위와같이 일하게 되면 오히려 시간은 시간대로, 스트레스만 쌓이고, 하루종일 이상한 일을 할 가능성이 크다. 같이 일하고 있으면, 상대방 모니터를 보다가 뻘짓하는 것 같으면 지적이라도 할 수 있다. 안만나서 일하면 이러한 위험성이 매우 크다.
결국 우리가 원격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떨어져있어도 일할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소프트웨어가 강력하게 보조해줄 수 있다. 우리는 아이패드, 노트북,스마트폰만 있다면 회의실, 화이트보드, 노트를 통으로 들고다니는 것과 같은. 그런 경험과 가치를 만든다. 그러한 자신감이 여기서 나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원격업무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크다. 주 1회만 원격업무를 해도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이 완전히 바뀐다. 가령, 출퇴근 문화가 없었다면 유튜브나 멜론이 이정도로 크지 못했을 것이다. 평소에 술마시다가 멜론을 듣는 사람은 없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을 때 동영상을 보고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우리에겐 그 시간중 절대적인 시간이 출퇴근 시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출퇴근 시간은 평균 2시간에 육박하는데, 사람들이 잠들기전 유튜브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시간은 1시간도 되지 않는다.
지금 이 글을 보는 사람들중에 반드시 사무실에서만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누구나 노트북만 있으면 카페에서, 집에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처럼 와이파이 환경이 잘 구축된 나라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사무실에서 반드시 모여서 같이 일한다. 하루 3시간 똑같은 시간에 모여 지옥철로 불리는 그것을 타고 오고간다. 사무실에 출근해서는 Fresh start가 아니라 다소 지쳐있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변한다. 그리고 그 세상을 부스트하는 것은 소프트웨어다.
기업에게는 종업원의 높은 생산성, 행복도를 보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그러한 업무가 잘 관리될 수 있는 시스템을 준다. 개인에게는 출퇴근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준다. 결국 이러한 문화를 어떻게, 얼마나 빠르게 부스트할 수 있느냐가 우리의 미션인 것이다.
주 1회 원격업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리고 원격업무에서 가장 큰 부작용으로 평가받는 '소외감'은 주 1회 원격업무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충분한 소속감을 가지면서도 자율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
혁신은 사무실에서 나오지않는다.
소프트웨어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혁신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행복한 사람에게서 행복한 결과물이 나온다.
사장이 씨부렁대는 식당의 음식은 아무리 맛이 있어도 맛 없게 느껴지고 다시는 가기 싫다.
근데 우리는 왜 사람들이 이렇게 일하는 것을 싫어하고, 여행을 떠나는 것을 우선적인 가치로 여기는 현재를 당연하게 느끼는 걸까?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우리나라도 제 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는 우리나라에 빠르게 이러한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우리가 가장 잘하는 언어인 소프트웨어로서 이것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새로운 미래에 동참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세상이 만들어나갈 비캔버스의 내일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