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용남 Jan 14. 2016

일자리 고갈, 고통의 시대를 대비하며

미디엄에서 갈아타기

청년 일자리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과거의 평생직장의 개념은 급격하게 사라져가고 있고, 청년들은 안정된 일자리를 갖기위해 바늘구멍같은 행정고시 등에 집중하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선거철이 다가와서인지 언론이나 TV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많이 들린다. 얼마 전 KBS 대토론회에 참가할 일이 있었는데, 대학생들 대다수는 청년 일자리 문제는 정부와 대기업에 의해 발생했기 때문에 이들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가장 들어가고 싶은 직장 1위는 국가기관 2위가 삼성,현대차,LG 등이었다. 가장 증오하는 곳이 가장 평생을 바치고 싶은 곳과 일치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내가 사업을 하면서 느낀 것은 국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지 못하고 돈으로 단기적인 개선 정도에 그치는 것 같아 아쉽긴 하지만 청년인턴 고용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자리 문제 해결에 대한 방안에는 여러 시각이 있지만, 나는 구조에 의존한 수동적 시각보다는 조금 더 능동적인 시각으로 이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다양한 해석 중의 하나일 뿐이니, 이 해석에 동의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


우선, 일자리 문제는 산업구조 변화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급격히 성장하던 시기에는 국가 시설을 재정비하기 위한 산업들이 팽창했다. 조선, 철강, 건설, 화약 등 수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일자리 걱정할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일자리는 노동강도가 높고 관리자와 노동자간의 마찰도 많았기 때문에 이 세대에서의 성공 공식은 대학진학 후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이 되는 것이었다. 대학만 진학하면 일자리 걱정이 없을 뿐더러 신체적인 노동강도가 그리 높지 않은 일도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성공 공식에 따라 길러진 수 많은 젊은 세대들이 산업구조 변화 속에 급격히 휘말리면서 발생한다. 과거보다 아주 높은 수준의 인재임에도 대기업에 취직이 안된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산업구조가 변화해서 많은 인력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신입보다는 경력직을 선호한다. 요즈음, 단군이래 최대 스펙(?)이라는 말을 요즘 많이 쓰는 것 같은데, ‘스펙이 좋다’라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 강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교육수준이 높은 상황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대학생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는데 원하는 일자리를 갖지 못하니 억울할 수 밖에 없다. 대학공부에 충실해도 안된다. 토익을 잘 봐도 안된다. 대체 무엇을 해야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인가? 충분히 이해할만 한다.


나는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 밖에 없다고 본다. 세상의 변화를 먼저 인지하고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제, 기업은 인력을 점점 줄이려고 한다. 내수시장을 장악해왔던 기업들도 이제는 해외 기업과 시장을 나눠먹어야 한다. 경영실적도 문제이지만, 기술이 너무 발달해서 열 사람이 할 일도 이제 한 사람이 하거나 로봇이 해낸다. 여러모로 과거와 같은 크기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있다. 게다가, 과거처럼 사람들이 평생직장을 원하니, 기업의 입장에서는 사람을 뽑는 것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 이력서 몇 장과 몇분의 면접만으로 이 사람과 평생갈 것인지에 대해 결정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그럼 해결책이 뭐란 말인가? 중소기업에 들어가는 것? 창업하는 것? 모른다.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것이고 그러한 문제는 전문가에게 맡겨두겠다. 모든 사회구조는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구조적인 해법을 내는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떠한 정책이나 구조도 모두에게 정의로울 수 없다. 이것을 인정하고 나면 무언가를 명쾌하게 주장하기 힘들어진다.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해결책은 ‘우리 안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할 수 없는 것’과 ‘나를 방해하는 것’등에 집중하는 것은 굉장히 쉽다. ‘내가 이렇게 해도 저런 이유로 안될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굉장히 쉽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어떠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 고통스럽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무엇을 하라는 말인가? 토익? CPA? 행정고시?


나는 가장 중요한 행동으로 ‘변화에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을 꼽고 싶다. 인간은 강하고 빠르고 번식력이 좋기 때문에 지구를 지배하게 된 것이 아니다. 어떤 동물보다도 적응력이 강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다. 인간이 적응을 위해 했던 일 중에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따라하기’ 였을 것이다. 사람들이 도망가면 나도 같이 도망한다. 이유는 모른다. 호랑이라도 있나보지. 그렇게 사람들은 적응하고 살아남아왔다. 지금도 2–3명이 하늘보고 있으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하늘을 한 번씩 본다. 그것이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토익을 공부하고 행정고시를 보는 것이다. 대부분 집단이 그곳을 향하기 때문이다. 그곳이 안전한 길이라고 본능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변화를 두려워하게 돼있다. 이러한 따라하기를 통한 적응이 동물적 생존에는 유리했을 지 모르지만, 최근 발생하는 문제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시장경제가 생기면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생겼기 때문이다. 모두가 보는 곳은 비싸고 넘보기가 어렵다. 조금만 변화를 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데도 그 박스 밖으로 나오는 것이 인간에게는 본능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를 깨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만들었을 때, 마차를 만들던 사람, 말을 키우던 사람, 마굿간을 관리하는 사람, 마차를 끌던 사람, 마차에 씌우는 천을 만드는 사람. 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을 것이다. 에디슨이 전기를 만들었을 때, 양초를 만드는 사람 등 수 많은 사람들이 역시 일자리를 잃었을 것이다. 당시로 보면 그들은 악마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그들이 악마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소수의 사람이 세상에 변화를 주었고, 우리도 그를 점차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헨리 포드에 의해 수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을 지라도, 택시기사, 버스기사, 트럭운전수, 택배 등 수 많은 일자리가 다시 생겨났다. 전기로 인해 생긴 일자리는 두말할 것도 없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를 구조적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면,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만큼 뒤쳐질 수 밖에 없다. 분명히 누군가는 변화를 받아들일 것이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일자리, 사업기회등을 발견해서 부를 획득할 것이다.


변화가 없는 기존을 관철하기 보다는, 그것을 인정하고 변화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과거에는 변화가 이렇게 급격하게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인류는 최대의 변곡점에 서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유주의라는 개념, 시장경제라는 개념, 정보혁명이라는 개념. 완전히 새로운 개념에 서있다. 1년, 1년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제의 직업과 직종이 오늘 그대로 보존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할 수 밖에 없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다수가 걷는 길에서 빠져나오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누구도 성공을 장담한 삶을 살지 않는다. 아주 재벌가의 자제들도 성공을 장담한 삶을 살지 않는다. 물론, 생계가 어려운 사람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안정이라는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기 굉장히 힘들긴 하지만, 우리는 모두 비슷한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기회는 언젠가 오기 마련이다. 수 많은 기회가 사라진만큼, 또다시 지금은 생각할 수도 없는 차원의 수 많은 기회가 다시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손에 움켜쥐게 될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모두 다같이 그 길을 향해 가고있다. 인간은 늘 그렇게 살아남아왔다.

성공? 실패? 안정? 위험? 변화가 빠른 이 세상 속에서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담담하게 걸어나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한번 쯤은 살아볼만한 인생아니겠는가.

작가의 이전글 가상현실(VR)속에서 우리는 폭력성을 숨길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