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마음의 거리를 받아들이기까지

by 여니

사람은 아니, 나는 아직도 철이 덜 들었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여전히 무엇이

어른이고 무엇이 부모인지 자주 헷갈린다. 나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사정이 있어서 2017년 봄부터 지금까지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잡일을 하며 살아왔다고 스스로를 설득해 왔지만.. 정작 아이에게는 그 많은 시간과 무게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아마 아이의 기억 속에서 나는 언제나 바쁘고, 늘 형편이 여유 없고, 자주 아픈 엄마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아이가 중학교를 지나고, 고등학교를 지나는 동안 나는 곁에 있었지만 온전히 함께 있지는 못했다. 마음은 안 그래도 늘 어떤 사정과 걱정과 불안 속에 빠져 아이를 첫 번째로 돌보지 못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시기일 수도 있는데.



입시를 앞두고도 우리는 마주 앉아 긴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대학도, 과도 이미 정해진 뒤에야 그것도 휴대폰 너머로 긴 대화를 나눴다. 군 입대를 앞두고서야 겨우 얼굴을 마주했을 때 나는 울 것 같으면 꾹 참았고, 입술을 깨물며 괜히 말이 빨라졌다. 평소의 내가 아닌, 나답지 않은 모습으로.



아쉬움이 목에 걸린 채 그렇게 헤어진 뒤 아이는 집으로 돌아갔고 몇 주 뒤, 군복을 입기 전 유난히 짧게 깎은 머리 사진을 보내며
“잘 다녀올게”라고 했다.
그 짧은 문장 하나에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에게서 나는 톡으로 연락을 받으면서 아빠에게는 목소리로 연락이 온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서운했을까. 그 서운함이 사랑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지만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건 내 열등에서 비롯된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 아이에게는 그동안 그렇게 걸어온 길이었을 뿐인데 나는 그것을 비교하고, 재고, 내 스스로 상처로 만들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에 나는 시간이 필요했다. 왜 이렇게까지 나는 모자랄까. 왜 늘 한 박자, 아니 두 박자씩 늦을까. 그 생각이 들 때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슴에 차올라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요즘 나는 며칠에 한 번씩, 힘든 이야기는 조금 뒤로 미뤄두고 아주 사소한 마음 하나라도 일기 쓰듯 글로 남긴다. 그냥 엄마의 생각과 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면 충분하다.
그러다 가끔
“엄마, 글 잘 쓰네~”
하고 건네는 아이의 말을 받는다.
아마도 가볍게,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겠지만
그 한마디가 나에게는 오래 남는다. 일본에 관심이 많다길래 읽어볼 만한 책을 얘기해 주고, 가끔은 쉬운 일본어 표현을 하나씩 적어 보낸다. 시험에 자주 나오지만 의외로 사람들이 헷갈려하는 함정 같은 말들. 이미 알고 있다며 웃는 말도 있고 처음 알았다며 고맙다는 이모티콘도 온다. 그 작은 반응 하나에 나는 그 아이가 화면 너머에서 잠깐 웃고 있을 얼굴을 상상하며 아주 짧은 찰나의 기쁨을 느낀다. 그 기쁨이 조금은 이기적인 기쁨이라는 것도 알면서 이 얼마나 내 위주의 못난 생각이었나.



사랑한다는 이유로
미안함을 덜어내고 싶어 했던 이기적인 나.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쩌자고 이리도 어리석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