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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Nov 24. 2023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잠식되는 무언가를 꽉 부여잡는다.

작은 창 밖으로 갈색으로 물든 몇 개 남지 않은 나뭇잎이

애처롭게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나는 지금 어떤 색으로 저물어 가고 있을까.

예전 20대 푸르렀던 시절 지금은 강원도 원주로 옮겼지만 그때는 광화문 정확히 말하면 다동에 있는 회사에서 퇴근하면 난 바로 집으로 가려고 을지로까지 가서 좌석을 타고 언제 회사에 있었냐라는 식으로 집에 오기 바빴다.


왜 그렇게 난 낯선 동네에 대한 불안함이 있었는지 시간이 한참 지나고 깨달은 사실은 6시 7시 이후의 간판 네온사인과 어둑어둑해진 저녁의 알록달록한 정리안 된 간판의 불들이 대학 때 귀가시간이 7시였던 내겐 매우 낯설음이었고 그 낯설고 어둡고 불규칙적으로 반짝이는 불들이 약간의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느껴진 것이다. 지금은 간판불도 어느 정도 예쁘고 정리가 되었지만 그땐 글씨체도 간판의 불빛들도 제각각 원색으로 화려하기만 해서 더더욱 특별한 일 없으면 바로 퇴근해서 집으로 향했었다.


하나의 예로 주말에 영화를 보는데도
조조는 아니지만 꼭 1시 정도 즈음 것 아니면 절대 보려 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이상해 했지만 그런 내게 고맙게도 맞추어 주었다. 3시 넘어 4시 30~5시 영화는 이미 내게 너무 늦게 느껴지는 시간의 영화였다. 보고 나왔을 때의 그 어둠이 너무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 어릴 적 나도 모르게 낮잠이 들어버렸는데, 방도 옮겨지고 조용한 어둑한 방이 너무나도 무섭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여고 때도 대학 때도, 20대 때도 회사만 다녔지 별 다를 게 없었다. 타학교 축제는커녕 여학교 축제도 여행의 그 흔한 사진도 추억마저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동기 중 여자 몇 명만 차 한잔하고 가자며 그때는 청계천이 예쁘게 조성되지 않았을 무렵 길 건너 청계천 쪽 쟈뎅인가 하는 커피숍에 들어갔다. 그때도 심장이 카페인에
벌렁거려서 나만 주스를 마시고 차를 마시며 네 명이서 쫑알쫑알 시끄럽게 얘기하고 있는데, 어느 남자분이 얘기 잠시 해도 되냐는 말에 나는 얼굴부터 차갑게 구는데, 그중 S진이라는 친구가 "네~ 하세요." 자기가 법 공부를 하려 산속 절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되려 명리학에 관한 책에 빠지게 되었다며 공짜로 그냥 봐주겠다는 말에 나포함 둘은 경계했고 S진이 포함 둘은 좋아라 했다.


다른 건 다 기억 않나고 S진이한테는 남들은 못났다 못났다 하는데도 본인은 스스로 뿌듯 해 하며 나 잘났다 생각해하며 자기애가 강하고 결혼도 잘할 것이라고.
주변 동기들은 맞다며 꺄르륵꺄르륵 웃어댔다.


나한텐 원하지도 묻지도 않았는데, 굳이 생일을 집요하게 묻더니 말하길 남들은 잘났다 잘났다 해도 본인은 아닌데 난 아닌데 하며 겉은 벽을 쌓고 엄청 차갑지만 마음이 여리고 착한데, 자신감이 참 없고 온통 사주가 물이고 결혼은 늦을수록 좋다. 까지만 기억한다. 그 에피소드가 나름 내겐 충격이었던 걸까. 그때의 그 장소 그 공기 그 느낌이 아직도 기억난다. 늘 그 생각을 하면 참 맞네. 싶기도. 잠시 공사 다닐 때를 회상하니 그 기억이 문득 나서 곁으로 샜다.


어른이 되고도 남은 이 나이에

지금은 아침이 되는 게 두렵다.
눈이 떠졌을 때 작은 블라인드 틈으로 비친 새벽녘의 빛이 어두우면 아! 다행이다. 생각이 밀려오면 잠이 깨버릴까 봐 눈을 질끈 감고 얼른 잠을 청한다. 혹여나 생각이 밀려올까, 혹시나 잠이 깨버릴까 봐.


이렇게 긴긴 터널의 경제적 어려움은 견딘다고 견뎌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나도 모르게 배어 나온다. 그 찌듦이 옷에 배어있는 향기처럼, 냄새처럼. 적어도 나는 그렇다. 굳이 아니라고 고개 젓지 않으려 한다. 사실이니까.


겉으로는 꾸역꾸역 버텨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도 생긴 생채기는 갈수록 심해진다. 경제적 어려움은 인간의 삶뿐만 아니라, 영혼을 파헤치는 고통이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잠식되는 것 같다. 그러는 와중에 몸까지 아프고 피폐해진다. 나까지 아프면 안 되는데. 솔직히 정말 솔직히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꾸역꾸역 한 걸음씩 내딛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당장은 없으리란 것은 잘 안다.


그럼에도 힘을 낸다. 당신과 나를 위해.

내 주변의 모두에게도 찰나의 작은 행복이 스며들었음 한다.

SNS친구분께 허락받고 담아 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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