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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Dec 22. 2023

두번째. 적나라한 바닥과 먼 얘기라 생각했던 백혈병.


아시는 분은 아실 수도 있지만 박 스테파노 작가가

중학교 동창이자 남편이다.

잠이 오질 않는다.
남편은 강직성척추염이라는 류머티즘 질환에 통풍 자가면역질환으로 인한 온갖 통증과 염증 그리고 아토피, 건선까지.

내 글 중 <생일날 집에서 나오다.>라는 글도 이유고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하루하루가 퍽퍽했다.

두어 달에 한번 피검사를 하고 요산수치도 체크하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반드시 먹어야 하는 한 뭉치의 약을 꼬박꼬박 챙겨야 한다. 희귀 난치성 질환으로 산정특례를 받았다지만 그 몇만 원마저 아쉬울 만큼 일을 해도 송사로 시작된 생활의 버거움이 휘몰아치는 고통, 끊임없는 희망고문 같은 각 기관의 프로세스의 순연. 점점 바닥을 향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숙박시설을 전전했고 아침은 대충 제일 싼 식빵으로 대신. 이른 저녁으로 3시 30분쯤 우린 머리를 맞대어 어떨 땐 2~3천 원 조금 괜찮아질 땐 4.900 원하는 쌀과 딱하나의 반찬으로 식사를 한 지 2~3년이 되어가는 듯하다. 그 결과 난 확 줄은 식사량에 되려 체하기를 반복하며 살은 오르고 남편은 반대로 살이 줄었다.

좀 더 싼 숙박비로 강남에서 홍대 종로 선릉의 여러 곳 강남역 뒷골목, 방이동 문정동 거여동 암사동 둔촌동에서 다시 암사동 빠진 곳은 있어도 더한 곳은 없다. 분당에서만 7군데를 옮겼고 그러다 분당의 정말 싼 곳. 병원 옆이라 며칠씩 혹은 몇 주씩 병원 입원하는 가족들의 숙소 같은 저렴한 곳을 찾아 들어왔다. 형편없는 매트리스 화장실은 굳이 말을 아끼려 한다.

우린 아무 일도 아닌 일로 서로 자주 말이 없어졌고
그러다 트리거가 있으면 폭발. 논리적이고 지극히 이성적인 반신에게 난 점점 자신이 없어져갔고 그리도 우유부단한 것 싫어했고 생각해서 빠른 선택을 하는 성격이 이제는 늘 몇천 원 몇만 원이 예산이어서 인지 뭐든지 잘못되지 않은 좋은 선택을 하려고 묻고 의논하다 보니 그러다 한 명은 짜증 나고 다른 한 명은 주눅이 들어가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아무리 화해하고 리셋하자고 서로가 스스로를 털어내려 하지만 어떻게 한번 찔렀던 화살의 촉을 뺐다고 해서 금방 아물겠는가.

그러다 보니 고인 물처럼 서로가 안쓰럽고 사랑하는 마음의 종류는 달라져도 아끼고 아파했다.

서너 달 전부터는 남편의 살이 급격히 빠져서 나는 아니라 했지만 스스로 흉한 뼈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몸의 변화와 본인만 느끼는 덜컥하는 겁이 났던 것 같다. 자주 아프다 했고 나는 병원 가자 하면 "내 병은 좀 심각한 것 같아." 그러고는 그 강한 고집과 책임감을 말릴 수도 억지를 부릴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도 당장 급한 것들이 바로 눈앞에 다가오는 하루의 연속이었다.

한 달 전부터 속이 느글거리는 느낌이 나고 왼쪽 옆구리가 아프고 굳는 느낌이라고 했다. 두어 달 6개월 이렇게 순연되면 아니 핑계가 아니라 거처라도 일정하면 고정직이라도 4대 보험 되는 약간의 경력 인정되는 일도 알아보겠지만, 그 순연이란 게 사람 심장을 쪼그라뜨리는 며칠, 길어야 일주일이다. 다들 "왜?"라고 물을 것이고 한심하다고 비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이란 게 우리가 아는 것만 있는 것은 절대 아님을 가슴을 치 듯 느꼈다. 그러기에 이번만 기다리고 제대로 검사받고 치료받자가 십팔번이었다.

몇 주 전부터 그리 건장하던 사람이 16~8kg가 빠진 살로 계속 속이 안 좋다고 했다. 그 속에서 돈과의 머리도 써야 한다. 금요일부터 이상하더니, 토요일부터 혈변에 자꾸만 뭐만 먹으면 토하고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선지 같은 피떡을 토했다고 했다. 어지러움은 더 커졌고 오늘은 강하게 우겼다.
검색도 해 봤고 조금 무게감 있는 위쪽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119를 부르고 상태를 얘기했고 걷지를 못하고 실려나갔다. 응급차에 타고나서도 눈을 어렵게 떠서 나를 찾았다. 눈물 많은 병신 같은 난 눈물이 핑 돌았다. 제일 가까운 제@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보호자를 불렀고 접수를 했다. <보호자> 란 말의 무게감. 겁이 안 났다면 거짓말이다. 피검사를 했고 CT 등을 찍었고 우리는 그 와중에도 위 식도 어딘가를 조금 지혈하 듯 지지거나 조치를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잠시 후에 심각한 얼굴로 조금 높은 의사가 와서는 백혈구 수치가 일반인에 30배가 넘고 비장이 보통사람은 10센티인데 24센티로 비대해져 있다고 이건 위의 출혈이 아닌 <급성백혈병>이나 <혈액암> 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처음 보는 의사였지만 심각해하며 걱정하 듯 얘기했다.

당장 입원하고 수혈을 안 하면 위험하다 했다. 오늘 네다섯컵을 쏟았으니 당연히 수치가 그리 나왔나 보다. 내일은 척수에서 골수검사를 해야 하고 지금은 당장 수혈부터 해야 한다고.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았다. 의사가 다녀간 후 제일 먼저 남편이 한 말. "이번에도 이겨내야지. 너무 세게 맞으니 이상하게 아픈데 헛웃음이 난다.", 원무과 가서 입원수속할 때 병원 대납하는 방법 물어보는 법을 말하고는 나를 걱정했다. 원무과로 갔더니, 389 283원이 박*웅 이름과 함께 떠 있었다. 이러저러한 말 끝에 지금은 여력이 없고 응급실 대납과 수속은 병원비로 미룰 수 있지만 나머지는 응급실 원무과 말고 1층 원무과 병원 담당자와 상담을 하라며 일단 6인실을 주었다. 5시 전에 가라며.

위, 대장내시경을 그냥 마취 없이 한다면서 금방 끝나니 다른 데 가지 말고 기다리라고. 난 시계만 바라봤다. 5시를
넘겨버렸다. 내일 가서 얘기를 해 보리라 다짐했지만 이미 응급실 원무과에서 비관적으로 얘기했기에/  무엇보다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있어야 한다고 묻는데, 식은땀이 났다. 우린 2020년 내 생일에 쫓겨난 후로..주거가 불안정하기에

그렇게 남편은 입원실로 들어갔고(코로나 이 후로 아직도 보호자는 못 들어간다.) 난 덩그러니 오롯이 혼자 남았다. 더 할 일이 없는데도 일어나 한동안 돌아서 나오질 못했다. 오전에 갔던 병원을 저녁 7시를 바라보며 눈물이 물 흐르듯 소리만 안 냈지 엉엉 울면서 길을 걸어갔다. 다행히 가로등도 밝지 않았고 가게들도 길 건너기 전까진 없었고 사람들도 없었다. 소중하게 주셨던 재킷이었지만 추운 것도 못 느꼈다. 그렇게 숙소로 들어갔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널브러진 것들을 치우고 겉옷에 알코올향 짙은 세균 없애준다는 믿거나 말거나 놓여있는 스프레이를 사정없이 뿌렸다.

이미 간호사한테 말을 들었겠만, 다른 말의 카톡이 와있었다.
준비해서 와야 할 필요한 건 전혀 없고 휴대폰 충전기랑 이어폰만 갖고 와 달라고. 그리고 밥 혼자라도 챙겨 먹고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칫솔 치약 아토피인 남편의 괴롱워하는 건조함을 위해 그나마 싸게 편의점에서 산 유수분기라고는 없는 존슨 앤 @@로션과 이가 안 좋으니 이쑤시개 치실과 손톱이 조금이라도 길면 온 머릿속과 얼굴 목이 피가 터지니 어울리지 않는 손톱깎이, 수건과 이것저것을 챙겨서 작은 가방에 넣어 내일의 채비를 해놓고 씻고는 물 한잔 마시고 그때 앉았다.

어디서 지켜보기라도 한 듯 다시 밀린 숙박비 재촉전화를 받고 끊은 후 난 혼자 있으니 하루종일 찔끔 찔금 참았던 눈물이 펑펑 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눈물이 나질 않는다. 아무 생각이 안 난다. 누군가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지만 그 역시 지쳐서 포기했다. 텔레비전을 틀어놓았지만 적막함만이 무서울 만큼 가득하다. 난 안 죽을 거다. 병원에 외로이 혼자 있을 그 사람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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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응원해 주실 분의 도움을 민망함 죄송함 뒤로하고 너무나도 갈급함에 이렇게 뻔뻔해집니다.

브런치에도 죄송합니다.


* 김혜연 하나  102 - 910394 - 13107

박 스테파노 아내입니다.

개인적인 컨택 필요하시면 일단 메일주소 남기겠습니다.

dobittai@naver.com


혼자라 생각되고 보고싶으면 사진이라도 보라며 찍어 준 남편 사진은 본인이 마지막 자존심?자존감마저 떨어질까 하여 차마 못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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