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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Oct 22. 2024

1.5대 8로 싸웠다.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
딱 질색.

그런데 오늘은 내가 옛날엔 말이야..

좋게 좋~게 포장해 말해서 여리고 정 많고 눈물 많아도 불의에는 강했다. 예를 들어 20대 초반 그때만 해도 전철 안에서 다리 벌리고 신문 쫙 펴서 다리 기대는 분들이 가끔 있었을 때였다. 다른 아가씨들은 찌푸리며 옆으로 피했지만 난 달랐다. 가뜩이나 저음에 발음 정확한 난 작지 않은 당당한 소리로 대신, 정중하게 "선생님, 죄송하지만 다리 조금만 오므려 주시겠어요.. 혹은, 신문 조금만 작게 봐주시겠어요. 고맙습니다." 했었다. 회사생활 어느 정도 되니 후배들의 방패막이가 될 때도 있었다. 정말 정말 조용하다가 해도 해도 이건 아니다 싶은 불의를 보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었는지.

그러던 내가 옆지기를 만나서 기댈 수 있어서 좋았다. 애교는 없어도 보호받는 느낌?
하지만 강대강이 붙으면 하난 약이어야.. 최소한 약인 것처럼은 해야 유지된다.

옆지기는 정의롭기가 무서울 정도다.

얼마 전 난 독감 예방접종(나도 내가 그 정도일 줄은..)으로 아파서 마스크를 해도 옆지기는 혈소판이 바닥이라 면역력도 따라주지 않으니 내게 옮아서 심하게 아프다가, 얼마 전 생일로 여러분의 소중한 쿠폰으로 우린 잠시의 호사를 누렸다. 며칠 전 갑자기 추워진 일요일. 불란서(ㅋ) 크라상 키친처럼 잘 되어 있는  투ㅆ공간에서.

앉아있는데 문을 닫지 않고 메뉴도 시키지 않고 떠들고 있길래 우리끼리 작은 소리로 뭐라 하다가 선뜻선뜻 들어오는 찬바람에 많이 아픈 옆지기가 문을 닫으러 가는 사이..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저기 문 좀 닫고 들어오시죠." 그중 많게 봐도 20대 후반의 친척 결혼식으로 캐주얼한 정장 입은 것이 어색한 청년이 주머니 한쪽에 손을 넣고 한참을 뚫어져라 나를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난 "왜요? 저 아세요? 아님, 할 말 있으세요?" 했더니 성질을 내면서 손가락짓을. 그러더니 일행이 다 어른들인데 아휴 씨@" 하더니 자기 분을 못 이겨서 나갔다 금방 들어왔다. 그렇게 난 벌떡 일어났고 처음엔 옆지기와 그 여덟아홉 명과의 다툼이 (옆지기 상태를 보니 적혈구 수혈할 때가 되어 얼굴은 허옇고 손은 부들부들하면서 말을 하는데) 내가 끼어들어서 다퉜다.

얘기는 양쪽 입장 다 들어봐야 하는 것이라 어쩌면 내 입장에서만 쓰는 글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도 어이가 없고 화가 올라오는데 꾹꾹 누르고 살았던 투쟁심이 불타올랐다. 우리 세대정도의 어른이란 남자가 내 팔을 밀치더이다. (중략)

그렇게 그렇게 정리가 되었고 그들은 사과를 했고 나가버렸다.

T인 옆지기는 바로 털었고 J인 난 턴 척.
내 심장의 진정은 3~4시간 지나서 정도였다.

한참이 지난 어제 옆지기가 하는 말이
"내가 웬만해선 다 좋게 좋게 볼게.
당신이 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을 보고 그러기로 했어. 그러니, 힘들어하지 말아~, 오롯이 당신 마음만 힘들잖아.."


 지금 우린 다시 병원이다. 담당의사에게서 채혈결과를 보고 안 좋은 말을 들었다. 그래도 그 속에서 희망을 찾고 부여잡는다. 새벽에 나올 때 되려 차가운 손으로 따뜻한 내 손을 잡아서 자기 주머니에 넣듯.



수혈 기다리는 옆지기의 얇아진 종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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