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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Oct 29. 2024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슬픔이 좋았다.

 

 혈액암 주사실 앞에서 책도 읽어보고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보기도 하고 가끔은 글을 쓰기도 하고...
그러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가 있다.
이렇게 기다리고 있노라면 지나간 기억. 며칠 전 있었던 일. 아끼고 사랑스러운 페북 벗의 막둥이에 대한 내 모자란 기도가 닿았는지 하는 생각. 아끼는 언니 오빠분의 병환은 어떠신지.. 그로 인해 힘들진 않은지..  따님의 시험과 계획은 잘 되어가는지..
온갖 생각이 머릿속과 마음 안에서 둥둥 떠다닌다.

시간이 나서 보는 국감은 개탄스럽고 속이 더 답답하고 이제는 너무 어두운 영화는 눈에 잘 담아지질 않는다. 그러다 우연히 조립식 가족과 정숙한 세일즈를 접하게 되었다. 둘 다 옆지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내가 좋다니 함께 보기로 했다. 조립식 가족. 꼭 핏줄을 나눠야만 가족일까. 많이 느끼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 정숙한 세일즈에서 정숙(배우 김소연 님)의 이런 대사가 나왔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슬픔이 좋았다.'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그래.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옆지기.

원인이 나완 틀리지만 가깝지 않은 가족관계.. 지나온 슬픔들.. 현재 서로의 마음 상태가 같진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슬픔이.. 편했고 적지않은 나이에 두번째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책을 읽고 쓰고, 난 커다란 강아지를 키우며 다른 언어들을 배우며 어쩌다 여행 가고 그렇게 그렇게 잔잔히 나이 들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데 하늘은 아직 아직이라 했고 한다.

러브스토리나 가을동화 같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접할 수 있다 생각했던 쉽게들 말했던 백혈병.
나는 지금 수혈을 하지 않으면 기운을 내지 못하는 옆지기의 혈액 주사실 앞에 3시간째 앉아있다.
기다림은 내겐 늘 해 오던 것이라서 이젠 버겁지도 그다지 힘들지도 않다.

그저 내가 갖고 있는 두 가지의 희망을 계속 꼭 잡고 놓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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