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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Jun 27. 2018

가족이라도 ‘함께’ 살기는 쉽지 않아

다른 사람보다 나는 함께 사는 둘째 여동생이 제일 싫었다.

“동생이랑 이 나이 먹고 또 싸웠다. 진짜 혼자 살거나 빨리 결혼을 해야지. 마음은 결혼해서 독립하는 일에 훨씬 기울어져 있다.      


오늘은 밥 두 그릇 먹었다는 이유로 싸웠다. 원래 있었던 내가 산 슬리퍼도 보이지 않는다. 누구를 데리고 와서 내가 산 슬리퍼를 가져간 거야. 잡히기만 해봐라.      


점점 유치해진다. 자꾸 철없는 나만 보인다. 아 진짜 혼자 살고 싶다.


돈을 빨리 모아서 내 집 마련하면 왕싸가지는 내 집에 한 발자국도 들어오지 못하게 할 거야.”(2009)               


동생과 살기 시작했던 첫 해에 밥 두 그릇 먹었다고 싸운 날의 기록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싸웠던 걸까.


욕망하고 꿈꾸던 남자와 결혼을 하고 혼자 살고 싶어 발악했던 나는 독립을 경험하지 못한 채 둘째 여동생에서 남편으로 투쟁의 대상이 바뀌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사는 건 어렵다.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6년 동안 열 평짜리 분리형 원룸에서 두 살 차이 나는 둘째 여동생과 같이 살았다. 우리가 함께 살았던 6년은 미운 정으로 가득한 시간의 산물이었다.


얼마나 서로 미워했는지, 둘째 여동생의 핸드폰에 저장된 내 이름은 “막말 싸가지 지존”으로 되어 있다.


나는 동생의 이름으로 저장해두었다가 싫다는 감정이 머리 끝까지 올라오면 전화번호를 지워버리고 연락하지 못했던 일도 있었다.           


생활습관과 성격이 달랐던 나와 동생은 치약을 사용하는 방법부터 사사건건 부딪혔다. 


동생은 학원에서 영어 가르치는 일을 해서 오후 12시에 출근하고, 나는 오전 8시 15분까지 출근이었다.

내가 먼저 잠자리에 들면, 동생이 뒤이어 영어공부를 하고 들어와서 잤다. 불투명한 문을 사이에 두고 자신의 눈이 나빠진다며 스탠드 대신 환한 형광등을 켜놓아서 나는 같이 사는 동안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어느 날은 쓰레기 치우는 일 때문에 화가 났던 기억도 있다. 나는 쓰레기봉투가 꽉 차기 전에 미리 버리는 스타일이고, 동생은 가득 차고 넘쳐야 버린다. 성격이 급했던 나는 분리수거 쓰레기를 버리느라 짜증이 났고,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느라 열이 받았다.


동생의 뒤치다꺼리를 왜 내가 하는지 예민하게 굴었다. 함께 살면서 자기가 맡은 일은 스스로 해주길 기대했다.      


우리는 서로 집에 오는 시간도 달랐다. 혼자 있을 때 집이 천국인데 같이 있을 땐 뭔가 사생활을 침해받는 느낌이 있었다. 동생은 내가 먼저 집에 와 있으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집에 일찍 왔다고 다투는 일이 꽤 있었다. 좁은 집이 답답해서 나는 퇴근하고 주로 운동하러 가거나 무언가 열심히 배우러 다녔다.


매일 늦게 들어오는 일이 많은 나니까 동생은 혼자만의 시간을 일찍 와서 방해받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그날은 또 크게 싸우는 날이 되었다.             


동생은 키 170센티미터에 뭐든지 잘 먹고 성격도 여장부처럼 호탕하다. 약간 의리에 살고 죽는 유형이다. 한 번 마음을 주기로 하면 끝까지 믿으면서 간과 쓸개를 다 빼준다. 자신의 콤플렉스가 있으면 어떻게든 커버해서 좋은 쪽으로 보이게 하려고 노력한다. 집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 말이다.


나도 키는 168센티미터에 어디 가서 작은 몸집도 아닌데, 동생과 함께 다니면 사람들이 언니냐고 물어봤다. 나는 아빠를 닮았고 동생은 엄마 판박이라 외모에서 풍기는 느낌도 달랐다.


말싸움으로는 이길 자신이 있는데 다른 건 동생이 늘 유리했기 때문에 싸울 때 덤비면 손해를 봤다.


이성끼리도 서로 맞춰가려면 엄청 싸운다던데, 나는 둘째 동생과 결혼생활에 맞먹는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싸우면서 나는 동생을 싫어하는 감정도 느꼈지만 가족과 싸우지 않고 동거하는 법을 가장 많이 배웠다.


밥을 두 그릇 먹었다고 싸운 이후로 나는 밥통에 밥이 떨어지지 않게 1.5배 넉넉하게 쌀의 양을 늘렸고, 햇반과 라면을 항상 비축해두었다. 다 떨어진 날에는 사 먹었다.


1주일에 한 번씩 하는 쓰레기 배출은 같이 하자고 제안하면서 어느 정돈 해결했다. 각자에게 필요한 혼자만의 시간은 최대한 존중했다.


생활습관이 달라서 잠드는 시간이 다른 건 '안대'를 끼거나 잠잘 때 듣는 '음악'으로 해결했다. 다행히 금방 잠드는 편이라 깊은 잠은 들지 못하더라도 자는 시간 때문에 싸우는 일을 줄였다. 집에 일찍 들어가면 빨리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싸우는 날은 무조건 좋아하는 음식을 사먹으며 풀려고 애썼다.


진한 육수로 끓인 복정동에만 있는 '뿅의 전설'에서 찹쌀 탕수육과 짬뽕을 먹으며 풀었다.


뽀글뽀글 뜨거운 뚝배기가 넘칠 정도로 한 입 먹으면 속까지 시원한 계란찜을 내주는 바비큐 치킨집에서 매콤달콤 기름기가 쏙 빠진 치킨을 뜯으며 화해를 했다.


때론 차돌박이가 들어간 부대찌개를 먹으면서 매콤하고 개운한 맛과 함께 감정을 해소했다.



"내가 누군가를 싫어한다는 말은 내가 누군가에게 싫어할 만한 대상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차별 감정의 철학 중에서)


나는 둘째 동생과 생활습관과 성격이 맞지 않아서 가족임에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내 성격이 중간 지대는 없고, 좋고 싫음이 명확해서 그럴 줄 알았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는 남보다 더 쉽게 둘째 여동생에게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차별했던 가해자의 모습에 가깝단 생각도 들었다.

                          

지지고 볶긴 했지만 '함께'라서 외로운 서울 생활이 덜 차갑게 느끼며 버틸 수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동생과 나는 서로의 다른 점을 부딪힌 적도 없었고, 부딪혔을 때 갈등을 어떻게 풀어가며 살아가야 하는지 함께 살았던 시간 동안 그제야 배웠다. 


배운 걸 이젠 남편에게 써먹어야 하는데 쉽진 않다. 또 다른 시작이다.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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