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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Jul 05. 2018

나도 엄마가 필요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건 남이 해주는 모든 것

서울 와서 내가 제일 많이 중얼거린 말, 먹고 싶다......살아내려는 비통과 어쨌든 잘 살아 남겠다는 욕망이 뒤엉킨 말, 먹고 싶다

(혼자 가는 먼 집 중에서).      

‘먹고 싶다’는 욕망이 올라올 때는 주로 마음이 헛헛한 순간이었다. 서울에서 13년 동안 자취하면서 지출이 가장 많았던 게 식비였고 늘 무엇을 먹을지 고민이었다.


누군가 돌봐주지 않는 '나의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시도했다.


대학교 기숙사에서 살 때는 명OOO의 냉동국 서비스를 신청해 한 끼는 학교급식으로 나머지 끼니는 방안에서 밥을 해먹으며 국이랑 챙겨 먹으려고 애썼다.


주스로 채웠던 끼니


클렌즈주스로 끼니를 해결하거나 아침마다 김밥집에 들러 질릴 정도로 김밥도 충분히 사먹었다. 김밥집마다 밥을 마는 정도와 재료 손질하는 맛이 어떻게 다른지 매일 먹다보면 식별이 가능해진다.


질릴 만큼 김밥순례를 끝내면 체질에 맞지 않지만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해 콘후레이크, 오트밀, 냉동밥, 냉동떡, 식빵, 선식, 채식 등 먹기 위해 시도해보지 않은 종류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하다 질리면 다시 차려먹는 ‘밥’으로 돌아왔다.     



먹기 위해 밥을 챙긴다는 행위가 힘겹게 느껴진 건 자취를 하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둘째 동생과 함께 살면서 밥통에 밥이 떨어지면 화가 치밀었다.


내가 다 먹은 것도 아닌데 비어있는 밥통을 마주할 때마다 온갖 짜증이 몰려왔다. 큰아버지가 보내준 20kg의 노란 쌀포대에서 정량의 쌀을 푸고, 쌀을 씻는 물에 닿는 맨손이 싫어 꽃분홍 고무장갑을 끼고 박박 씻었다. 밥이 지어지는 동안 먹을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를 하는 과정에서 냄새와 연기를 맡다보면 입맛이 떨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매일 ‘무엇을 먹을까’에 시달리다보니 먹는 일이 지겨워져서 대충 먹는 일도 많았다. 햇반과 라면, 참치캔으로 허기를 손쉽고 빨리 해결하는 방법을 자주 선택했다. 3분요리와 반조리식품, 편의점 도시락은 자취생인 나에겐 만병통치약 혹은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다.


엄마가 챙겨주는 밥만 먹다가 스스로 해먹으려고 하니 빨리 알약 한 알로 배를 채우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밥 스케일


멀어서 자주 가지 못하는 고향에 갈 때면, 엄마가 차려준 밥으로 배터지게 허기를 채워야 직성이 풀렸다.엄마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거하게 차려주면 게걸스럽게 먹었다.


나에게 이 정도로 식욕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목구멍까지 음식이 차올라서야 먹기를 멈췄다. 소파에서 쉬고 있으면 엄마가 귀찮을 정도로 이것, 저것 먹으라고 쉴 틈없이 챙겨주는 음식셔틀이 시작됐다. 서울 가면 절대 누릴 수 없는 호사였다.      

‘매일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관한 화두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끊임없이 괴로운 문제였다. 밖에서 사먹을 정도로 월급이 넉넉하진 않아서 할 수없이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체면치레 할 조미김, 참치캔, 스팸, 비엔나소시지가 내가 주로 싸갔던 반찬이었다. 햄 반찬을 싫어하는 동료가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간편한 제품 위주로 싸야만 했다.      


엄마랑 같이 사는 동료의 반찬은 나와 차원이 달랐다. 아무리 요리를 싫어하는 엄마라도 때깔부터 차이가 났다. 오늘 아침 구운 튀김요리, 제철나물, 메추리알보다 많이 들어있는 소고기장조림, 직접 양념한 갈비찜, 그 집 스타일로 만든 김치겉절이 등 타인의 엄마 반찬을 먹으며 남이 차려주는 밥에 대한 욕구를 해소했다. 나이를 먹으면 독립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끼니 챙길 걸 생각하면 신중해야 한다.        

‘먹고 싶다’는 내 욕망 뒤에는 누군가에게 지속적인 돌봄을 받고 싶은 간절함이 숨어 있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꿈꾸는 대로 흘러가지 않아 불만족스럽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며 챙기는 입장에 서니, 나는 돌봄을 받고 싶은 욕구를 잠시 묻어두고 달라져야 한다.      


일어나자마자 비몽사몽으로 프라이팬에 토마토와 베이컨, 달걀프라이를 굽는다. 토마토가 구워지면서 프라이팬이 더러워질 때면 대충 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프라이팬이 더러워져서 그것을 깨끗이 씻는 데까지 생각이 나아가니 다 귀찮다.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고 싶으면 돈을 내고 노동력을 구매하면 해결이 될까. 내가 엄마라고 부르는 엄마도 돌봄이 필요하지만 자식 때문에 욕망을 보류하며 살아내고 있는 건 아닐까.  아직도 나는 엄마의 돌봄이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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