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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Dec 12. 2018

가사노동은 당연한 게 아니야

백일상을 차리지 않은 ‘나는’ 엄마

얼마 전,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이었다. 하필 가장 피곤한 월요일 다음날인 화요일이었다. 요즘 내 일상은 매일이 ‘월화수목금금금’의 연속처럼 느껴져 아기의 백일을 챙길 여유가 여러모로 없었다. 내가 보기에 태어난 지 100일 된 아기는 대부분 누워 있고,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생각보다 거의 없다(찾아보니 아기가 주 양육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태가 두 돌까지 이어진다고 하니 좌절이다).


일상의 달콤한 여유가 없으니 백일상도 엄마인 내가 챙기고 해내야 하는 번거로운 일처럼 다가왔다. 그런 와중에 엄마모임이 있는 단체 카톡방의 프로필이 아기 100일을 맞아 바뀌기 시작했다. 그냥 하는 다른 엄마들의 백일상이 나에게 은근한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100일상, 번거로워도 해? 말어?’라는 내적 갈등을 저울질하며, 나는 하기 싫으면서도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니 해야겠다는 두 가지 입장에서 망설였다. 유튜브에 셀프백일상을 검색했고, 장난감도서관에서 백일상용품을 대여할까도 고민했다.


고민만 하다가 나는 100일을 기념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못했다. 100일 기념으로 아침에 스마트폰으로 아기 사진 1장만 남겼다. 그렇게 조용히 아기의 100일상은 잘 지나갈 줄 알았다. 엄마가 전화로 나를 달달 볶기 전까진 말이다.


“꼬맹이, 자냐? 100일은 어떻게 할 거야?”

- 음...그냥 안 하려고

“그래도 100일인데 해야지. 간단히 미역국 끓이고 사진이라도 찍어줘.”

- 알겠어


엄마는 백일상에 대해서도 듣고 싶은 답이 있었고 자신의 의도를 넌지시 내가 알아주길 바랐다. 엄마는 내가 아기 백일상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 걸렸는지 바로 다시 전화를 했다. 나는 하고 싶지 않으면 꾸물거리면서 “알겠어”라는 말로 엄마의 강요를 대충 방패처럼 돌려막았다. 통화하고 이틀 후, 엄마는 쌀을 보내는 일 때문에 나에게 연락을 했다.


“꼬맹이는 뭐해?”

- 응, 안 자고 있어

“꼬맹이, 100일은 어떻게 했어?”

- 아무것도 안 했는데...

“통장은 만들었어?”

- 아니, 아직

“만들라니까, 넌 집에서 뭐하냐!!!”

- 알았으니까, 끊어


엄마는 아기의 안부를 물으며 백일상을 챙기지 않았고, 아기 통장도 만들지 않았던 나의 게으름을 타박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내가 백일상을 차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왜 집에서 넌 뭐하냐는 식의 질문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일까. 나는 ‘집에서 뭐하냐’는 말한마디에 도대체 뭘 하며 지내는지 정리해봤다.      

사진 = unsplash /  돌잔치도 어떻게 될런지 쩜쩜쩜


전에는 직장을 다니느라 몰랐던 집에서 할 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다. 오전 7시부터 남편이 집을 나서면 나는 아기의 기저귀를 갈고 수유를 한다. 어느 정도 놀아주다가 잠투정을 하면 아기를 재운다. 재우면 빵이나 후레이크, 우유나 커피로 아침의 허기를 채우고, 청소를 한다. 걸레질을 시작하기도 전에 아기가 깬다. 나는 다시 아기의 기저귀를 갈고 수유를 하고 놀아주다가 잠을 재운다. 그 이후에 나는 끝내지 못했던 걸레질을 시작하거나 점심을 대충 먹는다. 아기가 자지 않고 깨어있을 때도 청소 혹은 설거지, 빨래, 밥하기, 요리 등 가사노동을 이어간다. 가사노동이 아닌 일은 책읽기, 모임 과제하기, SNS 정도다.


바깥에 나가지 않아도 집에서 할 일은 제자리걸음처럼 늘 그 자리다. 나는 오전부터 오후까지 시간을 투자하는데 왜 집안일은 해도 줄어들지 않는지 의문이다. 결혼하고 육아를 시작한 여성은 일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끝이 없는 가사노동의 쳇바퀴를 돌고 있지 않을까.      


여성의 무급가사노동의 가치가 통계청에 따르면 연간 360조원으로 여성이 남성 3배라는 기사를 봤다. 여성의 가사노동 행위별 비중은 음식준비와 자녀돌보기가 가장 크게 차지한다. 나는 가사노동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두 가지의 일을 매일 해내고 있다. 집에서 뭐하냐며 그냥 내뱉은 엄마의 말에 담긴 시선이 다시 나에게로 향한다.      


아기의 100일이 누군가에겐 축하할 일이지만 엄마인 나에겐 축하와 동시에 무급가사노동의 피로함이 물밑듯이 밀려오는 단초 같은 사건이었다. 아기 100일을 챙기지 않아서 비수 같은 말은 반복해서 들었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너는 엄마가 왜 그러느냐”라고 묻는 이들에게 나도 묻고 싶다. 엄마는 왜 그래야 하냐고. "그럴 거면 왜 아기를 낳았느냐"라고 묻는 이에겐 이렇게 현실이 고단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애초부터 시작하지 않았을 일이라며, 후회 중이라는 말도 안 되는 대답을 준비했다.


마냥 자식일 땐 몰랐던 엄마의 가사노동은 당연하게만 여겼고 안락하게 누릴 줄만 알았던 시간들. 이제 그 시간들이 나에게 복수를 하는 것인가.    


사진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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