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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Nov 17. 2018

될까? 엄마 사람으로 잘 살기

  퇴사하고 글을 씁니다 : with 메타포라

엄마로 살아도 내가 좋아하는 일은 

고집스럽게 지켜내고 싶다


지난 8월에 아기를 낳고 참석한 엄마모임에서 나를 부르는 새 이름이 생겼다. “어머님들”. 그  소리는 들을 때마다 나는 낯섦과 부담스럽다는 감정을 느꼈다. 갈 때마다 원하는 색종이를 골라 아기와 내 이름을 적었지만 불리지 않는 이름표라 무용지물이었다.


나는 ‘어머님들이 아니고 제 이름 세 글자로 여전히 불리고 싶어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오르락내리락거렸다. 모임의 담당자가 8명의 엄마 이름을 불러주기엔 여유도 없거니와 5번만 만나면 끝인 관계니 이름이 불리고 싶다고 말하는 건 조금 과하다 싶다.


8명의 아기 엄마들은 매주 금요일 오후에 2시간씩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같은 달에 태어난 아기라는 공통분모로 모였는데 서로 친밀해질까 싶은 마음은 마지막 모임 날까지도 이어졌다. 이름부터 ‘엄마모임’으로 왜 모이는지 명확했고, 베이비마사지, 발육과정, 이유식을 한다는 취지에도 동의해놓고, 혼자 부대끼는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남편, 시댁을 소재 삼아 온갖 험담이 오가고, 은근슬쩍 아기 자랑하거나 자기 자랑을 내어놓는 자리이지 않을까 싶어서, 사는 지역에서 주최하는 ‘엄마모임’이었음에도 기대하는 마음이 없었다. 나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고 넉넉한 시간이 있어야 신뢰도 쌓이는 관계를 주로 맺어왔다.


일대일로 만나는 모임에는 충실하지만 사람이 많은 그룹에 들어가면 자진 벙어리가 되기 일쑤였다. 사람이 많아서 얻는 시너지가 있는 만큼 가장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있으면 힘들었다. 나는 그런 환경에선 주구장창 듣는 사람이 되었고, 듣느라 피곤해서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모임은 다를까. 모든 엄마들이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고민으로 힘들어하니, 나만 겪는 어려움을 아니구나 싶어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어 좋았지만 역시 말이 많은 아기 엄마가 있었다. 그 엄마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아기 이름은 외웠다. 5번의 만남 동안 엄마들의 대화는 아기의 잠, 기저귀, 수유로 시작해 그것으로 끝이 났다.


엄마인 우리 자신은 아기라는 존재로 겪는 어려움으로 대체된 고민과 삶의 모습뿐이었다. 내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다른 엄마들이 어떤 기저귀를 쓰는지, 분유는 무엇을 먹이는지, 아기가 잠은 얼마나 자는지 온통 아기에 관한 이야기만 궁금했다. 올해 8월에 태어난 아기들은 같은패턴을 가진 아기가 한 명도 없었다.


매일 단둘이 아기와 있다가 같은 시기의 아기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원치 않는 비교에 시달렸다. 다른 아기 얼굴은 동글동글한데, 내 아기는 볼살이 터질 것 같아서 동글동글한 아기 엄마가 부러웠다. 어떤 아기는 분유를 줄 때 엄마만 보는데, 내 아기는 나와 눈을 맞추기보다 피하기 일쑤여서 집으로 돌아와 억지로 눈맞춤을 시도했다가 실패감을 맛봤다. 모임을 담당하는 직원은 다른 아기의 발육상태와 자신의 아기를 절대 비교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우리아기 이유식’이라는 마지막 모임 주제도 아기 엄마의 역할에 충실한 내용이었다. 영양사인 강사가 이야기 중간에 “아기에게 엄마와 아빠는 롤모델이자 거울이에요”라고 흘러가듯 툭 던진 말이 직원의 ‘어머님들’ 다음으로 와서 박혔다.


영양사의 말은 ‘어머님들’이라는 역할에 잘 어울리고 적절한 말이었는데 왜 이렇게 불편할까. 어쩌면 그 불편함은 첫째로 태어나서 살며 겪은 수많은 ‘처음’이, 내가 아이를 낳아도 계속해서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나는 여전히 전에 살았던 방식대로 다시 열심히, 또 열심히 살아야 된다는 부담감이 산더미 같은 걱정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나는 자연주의 출산으로 아기를 낳았다. 산후조리원 대신 조산원에서 5박 6일 동안 엄마되기코스를 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함께 지내는 모자동실로 모유수유를 했고 정해진 시간에 밥이 들어오면 먹고 아기가 울면 수유를 했고 기저귀를 갈았다. 3일 정도 하니까 2평 정도 되는 공간이 답답해서 7박 8일 코스인데 일찍 나왔다.


한 곳에 오래있는 걸 잘하지 못해서 산후조리원을 가지 않고 집에서 산후도우미와 친정엄마 찬스를 사용했다. 엄마의 육아 정보는 35년 전, 산후도우미의 육아 정보는 최신 것이지만 자신의 철학이 확고한 타입이었다. 산후도우미가 아기 목욕을 시킬 때마다 여자아이가 어쩌고 저쩌고 할 때는 뇌가 도는 느낌이었다. 나는 젠더 감수성이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친정엄마와 산후도우미의 도움으로 40여 일 남짓 몸조리를 하고 혼자 아기와 씨름하는 시간을 보냈다. 외로웠고 답답했다. 그런 필요로 내키지 않지만 엄마모임에 참석하면서 덜 외로운 것 같았다. 같은 시기에 동갑내기 아기엄마들과 아무런 필터 없이 ‘아기’이야기만 해도 되니까 좋았다.


출산까지는 주도적으로 준비했는데, 육아에 관한 지식이나 정보는 젬병이었다. 그런 면에서 엄마모임에 나가니 아기발달과정, 출산 후 어려움, 이유식, 잠에 관한 짧은 지식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모임에 가면 간호사 출신의 직원이 두유, 제철과일, 초코과자와 같은 주전부리를 챙겨주었고, 그곳에 머무는 두세시간 동안 기저귀도 버려주고 아기도 안아주니까 챙김받고 배려받았다. 나는 의지를 발휘해 참석한 자리인데 의도치 않게 받는 배려가 마지막까지 빠지지 않고 모임에 나갔던 이유가 되었다.   


11월 20일은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 된 날이고, 엄마로 살아본 지 딱 100일 된 날이다. 아기를 낳으면 자연스럽게 엄마 역할을 받아들일 줄 알았다. 아기가 자랄 때마다 엄마에게 주어지는 과제들은 생소하고 새롭다.


얼마 전에는 6.5kg이 된 아기의 기저귀를 바꾸는 일조차 나는 처음이라 쩔쩔매며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쉽게 물건을 사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더 그렇다). 아기가 자랄 때마다 바꿔줘야 하는 기저귀 사이즈 하나 고르는 일에 1시간 넘게 사이트를 뒤지고, 엄마들이 활동하는 카페를 들락날락 거리며 에너지를 쏟아냈다.


내 것을 사는 일도 여러 번 생각하는 편이라 엄마로 해내야 하는 일 역시 기진맥진하다. 이제 아기에게 모유와 분유를 번갈아 주면서 익숙해질 때쯤 되니, 그다음은 이유식 만들기라니. 즐겁게 이유식 하는 시간을 보내려면 엄마의 마음으로 잘 만들어줄 업체를 찾아야겠다.


엄마로 사는 삶이 마냥 괴로운 건 아니다. 아기의 삶이 먹고 자고 싸는 일로 단순해서 시간의 틈새를 잘 이용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요령껏 가능하다. 책을 읽다가 아기가 울면 흐름을 끊고 달려가거나 잠잠해지면 다시 읽으면 된다. 아기가 잠자고 싶어 칭얼거릴 때는 한 팔로 안고 바운스를 주면서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릴 팔의 체력이 있다.  


내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 같은 역할이 서너 개로 늘어났다. 엄마 사람으로 내가 사는 게 행복해야 주변 사람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엄마로 살아도 내가 좋아하는 일, 좋아했던 것은 고집스럽게 때론 의지를 발휘해 지켜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제작하고 만들어 낼 때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회사를 퇴사하고 8개월 동안 꽤 많은 곳에 지원을 했다. 왜 떨어지는지 나만 모르는 상태가 이어지고, 결과를 받아들이고, 다시 용기를 내서 갈 만한 회사를 더 찾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쳤다. 회사에서 내가 필요하지 않다면, 내 일은 스스로 만들어가야겠다 싶었다.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이유는 돈이 필요하고, 안정된 삶이 주는 만족을 잡을 수 없는데 잡으려 했다.


인생을 길고 가늘게 봤을 때, 회사 다닐 때도 하고 싶었던 컨텐츠를 영상으로 기획하면 어떨까 싶었다. 콘텐츠로 돈을 벌고 말이다. 2012년에 만들어 두고 잠자던 유튜브 계정을 활성화시켰다. 집에서 아기와 보내는 시간을 기록하고 컨텐츠를 영상으로 만들면 덜 심심하고 편집 기술도 덤으로 얻지 않을까. 유튜브 플랫폼에 꽂혀서 <된다! 김메주의 유튜브 영상 만들기>를 읽고 튜토리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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