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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Nov 06. 2018

쓰기도 다른 옷을 입어야 할 때

퇴사하고 글을 씁니다 : 내 일상을 담아 쓰고 싶은 글 with 메타포라

 “으-앙”

안방에서 열두 발자국을 걸으면 태어난 지 86일을 맞은 아기 괴물이 사는 작은방이 있다(미혼일 때부터 아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기를 낳은 후 귀엽지만 괴롭기도 해서 지은 별명 '아기 괴물’이라고 표현했다).


오후 10시부터 오전 4시까지 조용하다가 알람처럼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스마트폰을 켜서 베이비타임 어플에 아무 아이콘이나 눌러 언제 일어났는지 기록하는 게 매일 아침의 시작이다. 풀어헤쳐진 머리를 끈으로 묶고 안경을 끼고 눈을 감은 채 뛰어간다.


“일어났어? 배고파?”라며 아침인사를 건네는 나와 달리 울음으로 밖엔 표현이 안 되는 아기를 달래고, 분유를 조제하러 바로 옆 부엌으로 반쯤 감긴 눈으로 흐느적거리며 이동한다. 요즘은 요령이 생겨서 분유 탈 때 아기를 마주하기 전, 사용할 주전자를 눌러놓고 젖병에 분유를 조제한 후 방문을 연다.


문을 열면 아기 머리통이 쏙 들어가는 짱구베개가 이불 밖으로 빠져 있고, 아기는 베개에서 벗어나 오른쪽 손가락을 쪽쪽 빨고 있다. 밤새 화장실 노릇을 한 기저귀를 갈고, 부엌에서 물이 다 됐다며 전기포트 소리가 나자 아기에게 분유를 타러 잠깐 갔다 오겠다며 말 한마디 던져놓고 자리를 비운다.


말을 건네고 자리를 비워도 아기는 계속 운다. 잘 섞인 분유를 들고 녀석을 안아 젖병을 물린다. 3kg으로 태어나 6kg이 되니 안아줄 때마다 “무거워”라는 앓는 소리가 튀어나온다. ‘쪽-쪽-쪽’ 하는 소리만 가득한 새벽, 아기는 내 컨디션과 상관없이 잘도 먹는다.


어떤 날은 젖병을 물린 지 얼마 안 됐는데, 아기 옷이 흥건하게 젖었다. 뜨뜻해지니까 아기의 소변이 새나 싶어 봤더니, 내가 피곤해서 젖병 뚜껑을 잘못 닫은 것이다.


물렸던 분유를 중단하고 옷을 갈아입히고, 잘못 닫힌 젖병을 다시 닫아 물린다. 쏟아낸 분유 때문에 끈적거리는 손가락과 축축함이 싫지만 수유를 위해 꼼짝없이 30분은 지나야 한다.


30분 정도 했나 싶은 분유 수유는 매번 1시간을 넘어간다. 배불러서 눈과 몸이 다 레드썬 된 아기를 부여잡고 트림을 시키고 재운다. 나도 아기가 잘 때 같이 자면 좋겠지만 사용한 분유통을 설거지하는 것이 수유의 끝이다. 여기에서 끝나면 싶지만 아기가 밤잠에서 깨어나고 다시 잠들기까지 무한반복이다.


남편이 출근하고 퇴근하는 시간까진 나와 아기, 고양이 마르와 보내는 시간이다. 나는 적적한 공간을 채우려고 틀어놓은 라디오로 귀를 채운다. 날씨가 추워서 따뜻한 곳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돌아다니는 고양이는 그런 나에게 유일한 말벗이다.


매일 아기랑 고양이와 있으면서 내가 하는 말은 주로 다음과 같이 다섯 마디다. “잘 잤어?”, “배고파”, “졸려”, “응-마르”, “고양이, 뭐해?". 나의 언어는 주로 아기괴물과 고양이에게 맞춰진 생활언어로 재구성되었다.


대부분 혼자 말하거나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지낸다. 아기와 고양이랑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내가 뭐하고 지내는지 모르겠다.


단순한 일상이지만 의지적으로 하는 행동이 있다. 육아에 파묻혀 사회와 동떨어지고 싶지 않아 김현정의 뉴스쇼를 챙겨 듣거나 20분 넘는 수유를 하면서 SNS와 아기를 번갈아 살피며 다른 사람은 뭐하고 사는지 둘러본다.


블로그에 한 주 동안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보면서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써내려간다. 사진과 관련된 내용만 가볍게 쓰려다가 하소연을 하는 글로 바뀌어 버린다.


예방접종 때문에 소아청소년과에 진료를 갔다가 아기가 몇 등인지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길 들어야 해서 황당했단 이야기, 고향에 놀러 갔다가 교통사고 후처리를 잘못해서 가족 간에 의가 상해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한 마음의 소리 등 정리되지 않은 사건과 복잡한 소리를 글로 정리한다.


의지적으로 하는 행동 외에는 대부분 아기 기저귀를 갈고 분유나 모유를 먹이고, 나도 먹고 목욕을 시키고 잠에 든다. 육아가 시작되면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쉬는 삶을 누려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아기가 태어나니까 매일 기록하는 일보다 대충 씻고 자는 게 더 중요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왜 글을 쓰고 싶은 걸까. 글을 쓴다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고, 누군가를 소재 삼아 오해를 만드는 일 같기도 하고, 혼자 감정에 미쳐서 널뛰는 것을 받아내는 쓰레기통이 필요한 건가 고민한다.


올해 퇴사와 출산 이후로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은유 작가의 글쓰기 수업을 들은 일이다. 임신하고 8개월부터 출산 2주 전까지 ‘감응의 글쓰기’를 다녔다.


출산 후에는 은유의 메타포라 강의를 매주 월요일마다 저녁에 시간을 쪼개서 다니고 있다. 지난 합평 때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에서 꽃수레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왜 재미있게 읽었는지 생각해보니 알콩달콩 모녀 사이에 내가 함께 있는 느낌을 주는 쓰기 때문이었다. 이때까지 썼던 내 글쓰기를 돌아보니, 하고 싶은 말만 하느라 일방적으로 말하고 설명하기 바빴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일상이 출산과 동시에 달려졌으니 쓰기도 다른 옷을 입어야 할 때가 찾아왔다. 성향이 호기심 많고 궁금한 것을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다. 편의점에서 신상품이 나오면 호갱이 되어도 좋으니, 맛보고 즐긴 걸 사진으로 기록해서 SNS에 올리는 걸 즐겨했다.


가장 많이 했던 일은 카페나 빵집, 맛집투어다. 꾸준히 했던 바디맵, 요가와 같은 운동이었다. 어린 아기를 낳고보니 이전에 했던 취미생활과 잠시 안녕을 고해야 했다. 수유방과 기저귀교환대가 잘 비치된 대형마트나 백화점, 어린이 도서관으로 행동반경이 좁아졌다.


맛집에 가서 밥먹는 일보다 마트에서 장을 봐서 집에서 차려 먹는 일이 훨씬 많아졌다. 6kg 아기를 안고 집안을 움직이는 게 흔한 운동 아닌 운동이다. 달라진 일상의 모습처럼 쓰기의 소재나 보는 시각도 다른 계절을 지나고 있다.


육아하는 틈 사이로 요즘 가장 자주 읽고, 독자로서 내가 즐겨 읽는 글은 솔직함이 담긴 에세이다. 육아하면서 답답한 일상을 일방적으로 토로하는 글은 되도록 쓰고 싶지 않다.


오히려 담담하면서 거리감을 유지한 일상 에세이를 쓸 생각이다. 미혼이었을 때부터 아기를 좋아하지 않은 이가 출산 후에 달라진 일상에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이렇게 살기도 한다며, 담백한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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