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글쓰기 - #1일1글쓰기
주말의 끝 무렵, 시가에서 아기 보고 싶다는 이야길 전해들었다. 나는 외출할 기회라고 생각해 무작정 집을 나섰다. 나는 억지 친절 비슷한 착한 며느리를 하며 마음이 불편해지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 집을 나서면 갈 곳이 없다.
남편에게는 도서관에 간다고 말했지만 나는 정릉역 1번 출구 근처에 있는 카페 로스팅룸으로 갔다. 오늘까지 경력보유여성을 위한 일자리 지원이 마감이었기 때문이다. 아기 돌보는 시간 동안 나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마음이 콩밭에 가있으니 육아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나는 쉽게 아기에게 화를 냈다. 짜증에 가까운 편이긴 했지만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자주 무언가에 집중해 있으면 그것이 해결되기 전까지 그 자리에 오래도록 머무는 경향이 있다. 육아하느라 경력이 단절된 엄마들을 위한 일자리라니, 할까 말까 망설였다. 또 떨어져서 사회의 쓴맛을 보고 싶지 않았다. 루이스네 카페에서 가족무급종사자로 일하면 된다고 마음을 여러 번 다잡았다. 마감 날이 가까우니 나는 안절부절못하지 못하고 이력서를 내고 싶었다.
30개의 일자리 중에 내가 했던 직무로 지원할만한 곳은 없어 보였다. 퇴사하고 나 자신에 관해 깨달은 게 있다. 나는 섭외를 하고 취재 후에 글을 쓰는 일을 9년 했다. 생각보다 나는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성향이 아니었다. 나는 글이 쓰고 싶어서 기자를 선택했다. 고등학생 때 성공시대를 좋아해서 기자가 되면 그런 유명한 사람을 직접 만나 이야길 듣는 기회가 찾아온다고 여겼다. 어쩌면 나는 글이 쓰고 싶었으면 기자가 아니라 '작가'를 희망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되고 싶으면 어떤 장르의 글을 쓰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스스로 따져 물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고 글을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은 일을 하며 만족을 유보했다.
지금 내가 작가로 글을 쓴다면 어떤 장르를 쓰고 싶은 걸까 정리하자면 이렇다. 나는 은유의 말을 빌려 들은 것, 본 것, 행동한 것만 기록으로 남기는, 논픽션작가가 다른 장르보다 내게는 잘 맞지 않을까 혼자 상상했다. 논픽션 분야는 아직 마이너한, 팬층이 한국에선 얕은 장르라 또 삽질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카페 로스팅룸에서 따뜻한 아인슈페너 한 잔을 시키고, 자기소개서를 썼다. 가만히 있는다고 일자리가 생기진 않으니 나는 이렇게 지원해야 했다. 어디든 소속되고 싶었다. 한편으론 소속된 공동체에 헌신하거나 집중할 자신없음을 본다. 내가 만든 회사가 아니니까 백 퍼센트 공감하며 충성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막막했다.
이 카페의 아인슈페너는 4천 원이다. 날에 따라 만드는 바리스타마다 같은 메뉴인데 맛이 다르다. 저번에는 아인슈페너가 얼마나 맹숭맹숭하든지 맛이 변해서 먹고 싶지 않았다. 알면서 나는 또 같은 메뉴를 시켰다. 오늘은 여성바리스타 2명이 고군분투 중이었다. 손님이 얼마나 많은지 그녀들은 메뉴를 받고 또 받았다. 한 명의 바리스타는 밝고 쾌활했고 손님들과 관계가 좋았다. 나머지 한 명은 차가웠고 손님과 거리를 뒀다. 얼굴에도 기쁨이 없었다. 카페에서 일할 때 내 모습 같았다. 이번 주에 가면 밝고 쾌활한 바리스타 역할을 해야지 마음먹었다.
4천 원의 자릿세를 내고 맛있는 아인슈페너와 일자리 지원을 마쳤다. 목표를 이루고 나니 허기가 졌다. 루이스는 시가 식구들과 밥을 먹으러 현대백화점에 갔고, 나는 알아서 혼밥으로 저녁을 해결해야 했다. 혼자서 편하게 갈만한 곳을 머릿속으로 스캔했다. 마음은 혜화 줄 서서 먹는 정돈돈까스에 가고 싶지만 기다리며 먹을 만큼 에너지가 없었다. 혼자서 돈까스를 먹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정릉역 1번 출구로 나가서 아리랑시장을 향했다. 일본가정식 스테키야, 일본꼬치집 토리아에즈를 지나 치킨가라야게를 먹었던 히카리우동을 갔다. 나는 그곳이 처음인 듯한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커플과 함께였다. 나는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30대 커플은 내 옆자리에 앉았다. 히카리우동은 정릉역에서 혼밥하기 좋은 곳이다. 원래 부부 사장님이 함께 하는데 오늘은 여자 사장님만 계셨다.
얼마 만에 혼밥이었을까. 나는 5천5백 원인 오뎅우동과 1천5백원인 유부초밥을 주문했다. 옆자리 커플은 유부초밥과 오뎅우동, 얼큰우동을 시킬까 고민 중이었다. 냉큼 배가 고팠던 나는 여자사장님께 가장 먼저 주문했다. 옆자리 커플은 가게의 동선이 효율적이네 어쩌네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혼밥하기 좋아서 간 곳이었기에 배가 고파서 그런 건지 그들의 대화가 거슬렸다. 그들의 목소리가 큰 만큼 나는 청력이 무섭지만 소머즈급이다. 안 듣고 싶은데 들렸다. 할 수없이 귀를 틀어막았다. 몽키5의 음악을 들으면서 오뎅우동 국물 한 숟가락에 온몸이 풀렸다. 옆자리 커플의 대화도 별 거 아니었다. 나는 배가 고파서 예민했을 뿐이었다.
오늘은 만 1천 원으로 복에 겹도록 행복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