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채소는 '부추'입니다

육퇴 후 혼밥이 주는 여유, 놓치지 않을 거예요 #1일1글쓰기

by 김애니

육퇴 후 혼밥이 주는 여유가 이토록 풍성할 줄이야. 아기가 잠깐씩 깨서 달래주어야 하는 긴장스러운 순간을 빼곤 밤의 시간은 온전히 나로 숨 쉬는 순간이다. 출산하기 전에는 돈 버는 시간 외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점철된 삶이었기 때문에, 육아로 제한되는 삶의 찰나마다 버거웠고,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탔는지 삐걱댔다.


육아하고 혼자 밥에만 집중에서 먹는 시간은 꿀 같은 휴식을 보장한다. 거기에 음식까지 맛있으면 이보다 더 짜릿한 건 없다.


맛있는 음식은 사소한 것들로 채워진다. 전기밥솥이 고장 나서 신혼살림으로 준비했던 가마솥밥을 짓다가 최근에는 압력밥솥 15분의 마력에 입맛이 길들여지고 있다. 솥이 무겁긴 하지만 밥맛은 기가 막히게 좋다. 묵은쌀도 마법처럼 맛있는 쌀로 바뀌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압력밥솥 밥에 길들여진 혀는 외식을 나갔을 때도 어떤 솥으로 지은 밥인지 알아채릴 정도다.


압력밥솥으로 갓 지은 밥 한 공기와 영천시장에서 공수해온 반찬들, 쯔유를 넣고 맛을 낸 각종 찌개만으로 충분한 밥상이다. 식기세척기를 집에 들이지 않아서 맛있게 먹은 에너지를 설거지하는데 써야 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널브러진 식기와 반찬통 사이로, 치우지 않을 자유를 혼자서 오롯이 누렸다.


아기는 매일 오후 9시 전에 잠이 든다. 매주 금요일에는 주말을 앞두어서인지 아직도 불금을 즐기고 싶은 나는 누구인가. 회사 다닐 때도 불금에는 운동하러 가거나 배우러 다녔다.


현실육아 후 불금은 운 좋으면 외식, 대부분은 집밥을 먹는 삶이다. 혼자서 육아를 도맡아야 할 때는 마트에서 식재료를 구해 만들어 먹는다. 배달시켜먹거나 밀키트를 사는 방법도 있지만 까탈스러운 성격에 차지 않는다. 남을 위해 밥을 차리는 일은 지치는데, 내 입에 들어가는 제철요리를 할 때는 하나도 질리지 않는다. 이럴 때 보면 나는 스스로를 꽤 사랑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오늘 불금 머릿속 계획은 대패 오리고기와 부추, 숙주나물, 마늘을 넣은 메인 요리와 부추를 과하게 넣은 부침개를 생각했다. 종종 가는 집 근처 정육점이 있는데 대패 오리고기가 신선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은 장사를 안 하는지 문을 닫았다. 문이 열렸을 줄 알고 부추 1단과 부침가루를 사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요즘 제철 채소가 부추인지 1단에 천 원도 하지 않았다. 카페 공간 리뉴얼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꼼짝없이 집에서 아기를 돌봐야 한다. 화내지 않고 육아를 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 잘 먹으려고 부추 1단을 무턱대고 샀다. 순대국밥집에서 다진 양념으로 부추 넣는 집이 있었는데, 나는 유독 부추를 좋아했다. 부추국 먹냐고 동료가 놀릴 정도로 좋아하는 채소다.


압력밥솥에 밥을 올리고, 부추를 한 움큼 썰고, 채친 당근과 양파를 더하고, 부침가루와 계란 2개, 밀가루, 적당한 물을 넣고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잔뜩 둘러서 제대로 기름을 먹게 해 줬다. 2장을 구워서 반은 남겨두고 1장 반이나 먹었다.


부추 부침개에 해산물을 넣으면 풍미와 식감이 좋겠지만 해산물을 썰어 넣을 힘이 없었다. 내일 다시 해 먹는다면 백화점에서 큰 맘먹고 산 깐 새우를 왕창 넣어봐야겠다.


부추 부침개와 내가 직접 담근 레몬청을 넣은 레모네이드까지 곁들여 먹었다. 느끼한 부침개 맛을 레몬이 잡아주었다. 좋아하는 채소 부추 한 단을 사서 이제 3분의 1밖에 쓰지 않았다. 내일도 혼밥 2번 예약, 다음날도 혼밥 2번이 기다리고 있으니, 부추로 가능한 요리를 해서 맛있게 먹을 생각에 괜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무래도 이번 주말은 부추로 시작해서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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