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축구와 녀자인생

퇴사하고 읽은 책 -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킥킥거리며 읽는 맛

by 김애니

<아무튼 피트니스>를 킥킥거리며 읽었는데,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도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여자도 축구를 좋아하고, 여성축구팀이 많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이 한 권의 책을 읽고 축구 상식을 접했고,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질만큼 신선했다.

사진 = unsplash


김혼비 작가는 '축구'라는 소재로, 삶의 다양한 층위를 이야기한다. 사람이 일상에 변화가 일어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본인이 감지하기 전에 조금씩 달라진다. 내게는 퇴사와 육아로 일상의 시간표, 몸과 마음의 자세,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달라진 삶을 선택하고 인생은 선택 후 장단점을 오르락내리락한다.


나에게도 같은 일이 생겼다. 한 사람에게 어떤 운동 하나가 삶의 중심 어딘가에 들어온다는 것은 생각보다 커다란 일이었다. 일상의 시간표가 달라졌고 사는 옷과 신발이 달라졌고 몸의 자세가 달려졌고 마음의 자세가 달려졌고 몸을 대하는 마음 자세가 달라졌다.(9)


어떤 욕망을 이길 수 있는 건 더 강렬한 다른 욕망이라는 작가의 말에 밑줄을 그었다. 나는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다'라는 목표를 가지고 더디고 천천히 재입사를 준비했다. 입사 준비는 하지만 카페하는 사장남편이 제공하는 일당 받는 아르바이트가 있으니 회사에 들어가 일하고 싶다는 욕망이 줄어드는 게 사실이다.


어떤 욕망을 이길 수 있는 건 공포가 아니고 그보다 더 강렬한 다른 욕망이었다. '축구를 잘하고 싶다'라는 중요한 목표를 받쳐 줄 '축구를 잘할 수 있는 몸'에 대한 욕망이 무럭무럭 자라 기존의 욕망들을 압도했다.(155)


가족과 같이 일하는 스트레스는 회사 리더한테 받는 것과 비교하면 좀 덜하다. 미친년처럼 왈왈거려도 싹수가 없다는 둥, 싸움닭이라는 언어폭력은 듣지 않는다. 남편과 헤어지지 않는 이상 보고 싶지 않아도 계속 봐야 하는 어려움은 있다. 그리고 재취업을 준비하면서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른 현실육아가 노답처럼 느껴졌다.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내지만 하원이 오후 4-5시 사이에 가능한 일자리가 세상에 있을까 싶다.


자기 일에 몰두해서 인생을 개척하는 친구나 미혼의 눈에 비친 나는 애 딸린 경력단절여성이다. 위커넥트​는 그런 사회적 시선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플랫폼으로, 나를 경력보유여성이라고 불러줬다. 이곳은 루트임팩트와 협업해서 임팩트커리어W​를 분기마다 진행한다. 참여하는 업체의 분야와 채용공고도 여성들에게 특화되어 있다. 나 역시 공고가 뜰 때마다 지원해왔다. 2기 모집 때는 20명의 여성을 뽑는데 100명 넘는 기혼여성이 몰렸다. 그때 나는 본능적으로 '여기도 경쟁이 치열한 곳이구나'라는 걸 알아차렸다.


재취업을 준비하며 경력단절여성, 취업준비생의 입장에서 힘든 점은 불안함 때문에 잃어버리는 평정심이다. 회사에 들어가면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지금의 일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품는다. 지금을 견디기 힘든 것은 나란 존재도, 목표도 없는 삶이다. 목표의 크기와 유무에 상관없이 스스로 무언가 하라고 되물을 수 있다. 이상하게 나이를 먹어서인지, 목표 조차 허무하고 현실이 세운 목표를 뚫고 나아가지 못할까 봐, 아직 살아있으니까 산다. 그래도 세운 목표는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 죽기'다.


"매일매일 똑같은 동작을 무한 반복하는 것도 지겹고 미치겠는데, 재활할 때 병원 가면 다친 부위 마사지한다고 꽉꽉 누르거든요(중략) 저 생살 바늘로 꿰맨 적도 있는데 그게 백번 나을 정도였어요."

재활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도 있었다. 불안, 그 끝에 오는 (금미의 표현을 빌리면) 절대 고독.(266)


김혼비 작가는 축구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인생 이야기로 읽었다. 어느 정도 아기를 키운 기혼여성들은 10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아기가 1살이니까 그들에 말에 따르면 내 자유인생은 9년 남았다. 9년 뒤면 내 나이 40대 중반을 넘어선다. 그때 되면 무언가 하고 싶다는 욕망이 없지 않을까.


우리 팀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여자 축구팀 전반적으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연령대가 40-50대라는 점이 제일 흥미로웠다. 이 여성 비율이 가장 높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해서 육아에서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268-269)


출산하고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자연인 상태에서 가장 나다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아무래도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은 죽을 때까지 멈추지 못하고,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처럼 가지고 지낼 듯싶다. 아기가 어느 정도 성장해서 육아에서 자유로워지기 전까지 내가 할 일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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