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기둥, 내 마음의 소리

퇴사하고 읽은 책 - 책기둥

by 김애니
사진 = unsplash / 계속 나
나는 정신적 다이어트가 필요해
날마다 책을 읽는다.


책기둥(문보영) 정체성 중에서


은유 작가가 이끄는 감응의 글쓰기를 들으면서 '시'가 좋아졌다. 에세이와 인문학 같은 정보를 얻거나 쉬운 글쓰기를 좋아했던 나는 시인이 일상에서 건져올린 낯선 느낌, 날 것 같은 생생함이 신선했다. 이런 시 저런 시를 글쓰기 수업하면서 읽었다.


최근에는 일상을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 브이로그를 찍는 문보영 시인의 시집을 읽었다. 유튜브 브이로그에서 먼저 접한 그의 일상은 돼지인형이 꾸준히 등장하고 웃기면서 슬펐다. 위트와 센스가 넘치는 시인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났다. 시인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했다. 그의 브이로그를 보면 내가 보지 못한 다른 시선이 넘쳐난다.



시인은 이 세상을 살지만 왠지 저 세상 언어를 쓰고 ,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경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내 나이보다 훨씬 젊은 문 시인은 달랐다. 감수성은 톡톡 뛰고 시에서 난해하지만 코스트코 빵이 등장하거나 딸기크림프라푸치노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면 '어머 나도 이거 아는데'라는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젊은 감수성의 문 시인의 시집은 쉬우면서도 어려웠다.


은유가 시를 읽을 땐 제목을 길라잡이 삼아 읽어가다 보면 길이 보인다고 했다. '정체성'이라는 시에서 "나는 정신적 다이어트가 필요해 날마다 책을 읽는다"는 문장에 눈길이 머물렀다. 회사 다닐 때도 나는 글을 써내는 충분한 아웃풋을 위해서 이책저책 잡다하게 읽었다.


출퇴근 시간이 길었고 무료해서 책을 읽었다. 성남 복정동에 살 때는 집에서 40분 걸리는 도서관 가는 길이 즐거운 일이었다. 책은 구입해 읽는다지만 내겐 여윳돈과 2년마다 옮겨다닐 위험에 노출된 전세살이 10평 원룸이라 책을 산다는 건 과소비처럼 느꼈던 적이 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집에서 10분만 걸어가면 아리랑정보도서관이 있다. 성북구는 지하철역마다 무인대출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성남에 살았을 때보다 책을 빌리는 일이 수월해졌다.


빌리는 인구가 많으니 늘 무인대출은 만원이다. 그래서 아리랑정보도서관으로 다른 도서관의 책을 상호대차서비스로 이용하는 편이 빠르다. 성북구 다른 도서관 대출도 얼마든지 가능해서 마음만 먹으면 한 달에 20권도 빌려 읽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퇴사하고 감응의 글쓰기를 하면서 매주 한권씩 책을 읽고 마음을 감동시킨 책 속 한문장으로 글쓰기 첫문장의 물꼬를 텄다. 여성주의 책을 읽고 토론했던 메타포라를 하면서 읽고 쓰는 습관을 들이려 노력했다. 그러다 시와 사랑에 빠졌다. 가타부타 설명이 길지 않고 함축적인 시인들이 쓰는 낯선 언어가 좋았다. 상상 가능한 여지가 열려 있어서 읽는 즐거움이 있었다.


문 시인이 날마다 책을 읽는 이유를 표현한 문장이 내 마음 같았다.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마음의 소리가 들킨 기분이었다. 퇴사하고 책을 더 많이 읽는다. 끊임없이 책을 읽었던 이유는 퇴사하고 나를 소개할 무언가 없어지고 마음의 빈 공간을 채우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책을 붙잡고 읽는 순간만큼은 내가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출퇴근 시간이 여전히 40분인데 출근하면서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책을 읽으면 나만의 세계에 오롯이 집중하니 잠시 쉴 수 있다. 아직 읽는 중인 <나는 나를 아직 모른다>을 읽으면서 심리학 트렌드 단어인 자존감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웹툰 '어바웃 블랭크'를 보고 퇴사하고 무척 용기를 얻었던 순간도 떠올랐다. 하지만 현실에서 나는 등가교환이 되지 않는 일을 쉬지 않고 하면서 잘 지내는데, 사회에서는 빈 시간동안 대체 뭐했냐고 질문한다. 나는 아기를 낳았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글쓰기수업을 들었다.


내가 퇴사하고 쉬면서 했던 일을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런 쩌리가 없어보인다. 이제 내가 누구인지 개미발톱만큼 알아가는 중인데, 뒤쳐지는 기분이 수시로 든다. 그 기분에 빠져서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면 나는 매주 책을 읽고 마음에 박힌 문장을 곱씹는다. 인생의 8할이 불안이 원동력일지라도, 그것도 괜찮다. 줏대없이 마구 흔들리는 날들을 잘 기록해보자.


https://www.myktoon.com/web/works/list.kt?worksseq=7650




keyword
작가 프로필 이미지 멤버쉽
김애니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구독자 941
월간 멤버십 가입 월간 멤버십 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