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에미나이

퇴사하고 읽는 책 - 체공녀 강주룡 #1일1글쓰기

by 김애니

'간나라 기런 거인지......간나는 어쩔 수 없는 거인지......기양매양 하던 대루다 솥뚜껑이나 돌리며 만족하였어야 하는 거인지.'


광운은 정색하고 주룡의 어깨를 붙든다.


- 스스로 그러시면 아니 되오. 부엌데기이고자 자처하면 부엌데기 취급을 받고 독립군 행세를 하면 독립군 취급을 받는 거요(72, 체공녀 강주룡)


싸우는 일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곤하다. 상황이 주어지는대로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살면 좋지 아니한가. 살수록 삶의 순간마다 싸워야 하는 일이 많다.


아기가 태어나니 이동하는 곳마다 기저귀갈이대가 없어 난감했고, 아기띠를 하고 아기와 동행해도 지하철 한 자리를 더 차지해야 하는 어려움에 눈동자는 갈 곳을 잃는다(아기가 자꾸 발을 움직인다). 아기띠가 불편해서 유모차를 구매했더니 그것도 가는 곳마다 지뢰밭이다. 기저귀 발진에 좋다고 해서 산 기저귀 용품은 우리 아이에게만 맞지 않는지 기저귀 유목민을 자처한다. 아이를 위한 좋은 용품을 사기 위해 쇼핑하는 내 모습이 어색하다. 선택지가 많아서 구매하기도 어렵다. 남들이 다 좋다는 국민용품으로 샀는데 실패했다. 육아템은 성공했던 기억보다 실패하는 날이 많은데, 다른 엄마들은 성공하면서 사는 것처럼 보인다.


출산 후 나는 싸움닭처럼 삶을 대하는 느낌이다. 직업 전선에서 뛰어내려 육아하는 전업주부로 살림과 육아만 집중하면 사는 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수십 번 한다. 일을 구한다고 해도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방향을 잃었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 있긴 한 걸까. 일을 시작해도 아기와 살림은 어떻게 할 것인지 내가 해결할 숙제다.


지인의 말대로 원래부터 아기와 함께 살기는 팍팍한 현실이었던 걸까. 바라지 말아야 할 것들을 과하게 이기적으로 나는 바라는 건가. 나 혼자 육아하기 참 좋은 원더랜드를 꿈꾸며 사는 건가.


<체공녀 강주룡>은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농성운동가였다. 독립운동가로 살다가 남편을 잃고, 공장에 취직한다. 강주룡에게 누가 그렇게 살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그는 투쟁하며 산다. 싸우는 삶은 쉽게 지친다. 노동운동가는 전태일만 있는 줄 알았더니, 강주룡이란 여성인물도 있었다니. 모르는 건 늘 약이 아니라 무지만 알려준다.


주부의 삶은 살림과 육아로 빼곡하게 들어차도 모자랄 판이다. 그것만 집중해도 성공한 살림꾼은 되지 않을까. 살림과 육아가 일이 될 순 없을까. 지치고 싶지 않은데 주변만 둘러봐도 순식간에 지친다.


호기롭게, 아기의 어린 시절을 기록하다가 잘하는 유튜버를 보면서 이 길은 아닌가벼 라는 단말마를 내뱉는다. 브런치에 뭐든 끼적이지만 작가라는 타이틀이 갖고 싶었던지 막상 쓰다가 잘 안되니 이 길도 아닌가벼 라는 마음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육아하며 글쓰고 책 읽는 다수의 여성을 보면서 이 길도 나만의 길이 아니네 라며 한발 빼고 싶은 마음이 훅 올라온다. 어딜 가나 경쟁하지 않고 나대로 사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꿈이었던가.


삶이 점점 미궁이다. 갈 바를 이토록 안개처럼 알지 못한 때가 있었나 싶다. 그래도 붙잡는다. 간나는 어쩔 수 없다고 그렇게 변명하듯 살진 않겠다고. 말이든 방귀든 써야 쓰고 쓰면 써진다 앞뒤도 맞지 않는 푸닥거리를 두드리겠다고.


가만히 있는다고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니까. 내 삶의 범위 안에서 스스로 바뀌고 달라지기 위해 싸우는 삶을 멈추지 않아야겠다.


[밑줄 그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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