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없이 마실테다 - #1일1글쓰기
카페에서 에이드 메뉴를 시작했다. 작년에는 분홍코레모네이드를 했다. 직접 레몬즙을 짜서 만들었다. 카페는 여름이 대목이라 테이크아웃 매장에서 이번에도 레몬을 짠 후 서비스하기 어려워졌다. 길거리에서 파는 레몬 짜는 기계를 사면 어떨까 했지만 아작날 손목 생각에 몸을 사렸다. 레몬청과 사과계피청으로 보완했고,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 사람들이 에이드를 선택하기 시작했다.
활용도가 높은 레몬청은 거의 다 떨어져 엊그제 새로 담갔고, 사과계피청은 아직 많이 남았다. 사과계피청은 그것 자체로 레모네이드와 비교했을 때 맛이 부족해서 티를 넣어 보충했다. 빨간 사과랑 잘 어울릴 것 같은 레드류 차와 섞었는데 맛있었다. 그래서 사딸라 에이드가 됐다. 완성도를 높이느라 레모네이드보다 늦어졌다.
'맛있다'는 말이 나오도록 음료를 개발하는 일은 간단해 보이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먹어본 맛이 많아야 창의적으로 접목해 신메뉴로 선보이는 게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고객으로 사 먹었던 음료 메뉴가 많지만 기업이나 판매자 입장이 되어 생각해본 적이 없어, 처음 하는 일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드다'라는 책을 읽는 중인데, 브랜딩을 할 때 고객 입장에서 업의 본질을 정의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른 기업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나중에 나만의 매장 경영을 꿈꾸며 혼자 브랜딩 공부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카페의 본질은 '우주최강 맛있는 원두'로, 마시고 나서 '행복하거나 기분좋음'을 전하는 일이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커피를 팔지만, 고객이 구매하는 보이지 않는 가치는 '소확행'이란 단어로 응축 가능하지 않을까. 커피를 마시지 않는 이들에게도 다른 음료로 그것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알콜 모히토를 좋아한다. 그래서 라임청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새로 레몬청을 담는데 사실 라임이 눈에 밟혔다. 사고 싶을 땐 사라. 인터넷으로 시켜서 하루를 기다리는 게 싫을 만큼 급해서 시장 가서 냉큼 구매했다. 과일가게 이모님이 "이 비싼 라임으로 청을 만든다고"라며 잔소리를 들었다. 작은 매장에서 과일 보관이 용이하도록 하는 방편이 과일청이란 판단이 섰다.
과일청을 만들 때 껍질에 묻은 농약 제거를 위해 뜨거운 물에 레몬과 라임을 담궈놓는다. 코끝에 시트러스 향이 짙게 맡아졌다. 그 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됐다. 레몬색과 라임색을 보는 자체로 싱그러운 여름이었다. 향에서 느껴지는 것이 맛으로까지 이어지면 알만한 행복에 빠진다.
과일청을 담는 방법은 수두룩하게 인터넷에 나온다. 레몬은 씨를 제거해야 하고, 라임은 그에 비해 간편하다. 채칼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서 엊그제 레몬을 담으면서 피를 봤고 어제는 라임을 채썰며 약간 베었다. 그래도 라임으로 작은 1통을 만들고 나니 뿌듯했다. 라임청은 애플민트까지 넣어 야무지게 숙성 중이다. 무알콜 모히또를 생각하며 만들었다. 과일청만으로 맛을 내긴 어려울테니, 청과 잘 어울리는 시럽 구매가 필요하다.
최근 내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카페 관련된 이들이 많다. 티베리에이션 원데이 클래스를 연다고 하길래 냉큼 신청했다. 프랜차이즈처럼 분기마다 신메뉴를 런칭하기엔 작은 카페라 버겁지만 노력해야 한다. 빵과 같은 디저류를 할 상황이 안되면 티 메뉴라도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방법을 선택했다. 사장은 커피만 제대로 하기도 벅차서, 티메뉴 개발은 일종의 프로젝트 성격이 강하다.
이번에 티에이드를 만들면서 내가 좋아하는 분야란 생각이 들었다. 티 메뉴 개발하는 일은 평소 무언가 만들기 좋아하는 내 성향과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무언가 만드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은 신나는 기분을 선물한다.
청만들기에 빠져 있으니, 제철과일로 청을 전부 만들어보고 싶을 정도다. 한다발 사면 먹기 힘든 바나나랑 생블루베리를 청으로 만들어볼까 한다. 평소 자주 마시는 루이보스와 어울릴 다른 티나 과일청은 무엇이 될까 상상하는 일도 즐겁다. 티에이드와 잘 어울리는 허브가니쉬를 찾아 음료에 접목시키는 일도 재미있다. 맛과 향이 딱 떨어졌을 때 희열은 일의 성취감까지 높여준다.
과일청 하나 담그면서 내 적성까지 뻗어가는 오지랖 같은 생각의 그물이란. 재미있는 일은 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법이다. 티베리에이션 원데이클래스 후기도 기대해달라. 커밍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