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알바 중입니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이 손님이라는 명사에도 다양한 층위가 존재한다. 사장님이 얼마 전에 새로운 유형의 손님을 만났다고 했다.
“실례가 안된다면 로스팅기 좀 빌릴 수 있을까요?”라는 처음 본 손님의 부탁이었다. 나는 사장의 이야길 듣자마자, 성격이 지랄 맞아서 ‘실례가 안된다면’이라는 단어가 싫었다. 회사 다닐 때 리더가 습관처럼 내뱉은 미사여구라 듣기만 해도 알레르기 반응이 났다.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도 부탁한다는 뉘앙스란 걸 알기 때문이다.
이 손님의 사정은 이랬다. 아는 가게에서 로스팅 기계를 썼는데, 사정이 있어서 못쓰게 됐다고 했다.(그건 전적으로 손님의 사정이었다). 자기가 2킬로그램을 볶고 싶은데 한 배치당 천 원을 줄 테니 쓰게 해달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이야길 듣자마자 의아했다. 로스팅 기계를 빌려달라는 건 카메라 대여 같은 일이 아니다. 자동차를 빌리는 지인의 이야기도 이해가 안 되는데, 로스팅 기계를 빌려달라는 손님이라니. 마치 이번 부탁은 디저트를 팔고 싶으니까 빵을 직접 만드는 빵집에 가서 얼마를 줄테니 오븐이랑 공간 쓰겠다고 말하는 무례함은 아닐까. 어떻게든 이해해보려고 애쓰는 건 안면없는 손님이고, 오롯이 손님이란 이유 때문이었다.
엊그제 연락이 와서 어제 오후 3시에 온다는 손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사장이 한 배치당 천 원은 아닌 것 같아서 시간당 2만원을 이야기해서일까.
로스팅 기계가 놀고 있을 땐 돈을 지불하면 사용 가능하지 않는가. 머리론 괜찮다 생각했는데 막상 경험하니 그렇지 않았다. 손님에게 4배치 4천원과 맞바꾼 사장의 시간은 그 정도면 대체 가능한가 묻고 싶었다. 온다고 해서 밥도 미리 먹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연락 없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인지 정말 궁금했는데 1시간 정도 기다리다 집으로 향했다.
한 손님이 부탁했던 시점부터 이틀은 그 생각에 시달렸다. 부탁의 종류에도 강도가 있다면 손님의 무례함에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일개 아르바이트니까 상관없지만 작은 가게를 홀로 지키는 자영업자들은 정신수양과 자금유통까지 신경쓸 일이 한두개가 아닐 듯 싶다.
어제 바를 운영하는 대표언니가 들려서 일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갔다. 소주 한 병을 시켜놓고 두세시간 넘게 이야기하는 손님 이야기였다. 그 언니는 여장부스타일이라 무조건 친절하게 손님을 응하지 않는다고 귀뜸했다. 처음에는 자기도 잘 몰라서 무조건 친절하게만 했는데, 할 말은 웃으면서 하는 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무례한 순간은 마음의 슬픔처럼 그 찰나에 매인다. 내가 무례한 사람이니까 타인의 무례함이 내 눈에 거울처럼 반사됐던 건 아닐까. 어떻게 사는 게 괜찮은 상식의 삶인지 나이가 들수록 깊은 늪에 빠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