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만 하면 몇 초 사이에 마법이 일어나는 기분이다.
내가 아는 배움의 최고 동력은 절실함이고 필수 조건은 덩어리 시간이다
<다가오는 말들, 은유>
카페에 오는 손님을 만나면서 나는 어떻게 하면 맛있는 '것'을 만들어 ‘서비스’할지 배워간다. 일하는 카페는 단골손님이 많다. 그들은 매일 먹는 메뉴로, 만드는 나보다 훨씬 많이 마신다. 그래서 긴장되는 순간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어난다. 조금만 달라져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내가 잘 만들지 못하는 메뉴를 만날 때마다 식은땀이 흐르고, 손님의 눈길에 뒷골이 당긴다(도둑이 제발 저리는 결과인가?!).
그날은 혼자 매장을 볼 때였다. 메뉴에 없는 메뉴를 달라는 손님을 만났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빈약한 기억을 더듬어 만들었다. 아뿔싸! 쓴 말차가루가 평소보다 많이 들어갔다.
메뉴판에서 사라진 음료 제조법을 까먹는 것도 잘하지만 나는 우유 스팀에 약하다. 아이스메뉴만 먹는 스타일이라, 따뜻한 라떼의 벨벳거품의 느낌을 잘 알지 못한다. 우유가 뜨거워지면 비린 맛 때문에 잘 마시지 못하고, 뜨거운 음료 자체를 잘 먹지 못하는 편이다. 날씨가 추워지니 따뜻한 라떼 음료가 아이스음료보다 앞섰다. 그 말인즉슨 벨벳밀크, 스팀을 잘해야 한다는 뜻이다.
손님 중에 매일 아이스아메리카노와 따뜻한 라떼를 마시는 분이 있다. 사장이 내린 따뜻한 라떼를 좋아하는 손님이다. 오후에는 혼자 마감하는데 그 분이 오면 괜히 긴장이 된다. 정신도 아찔하다(얼마 전부터 하루에 두 번의 방문, 결제는 현금이다).
평일에는 매일 보는 사이라 서비스가 잘못 나가면 민망하다. 무엇보다 피드백이 빠르다. 다음날 사장에게 라떼손님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사장님이 해주신 라떼가 맛있어요"라고 말하면 나는 옆에 찌그러져있다. 사장은 3년 동안 커피를 내렸고, 나는 이제 고작이란 단어로 꾸며도 될까 말까 한 수준이지 않는가(하긴 손님이 그런 걸 알게 뭐람).
따뜻한 라떼를 좋아하는 손님 덕분에 벨벳밀크를 잘해내여 한다는 절실함이 생겼다. 은유 작가가 쓴 책을 읽다가 위에 인용한 문장에 저절로 이해가 됐다.
나는 스팀을 잘해서, 맛있는 라떼를 만들고 싶은 절실함이 있는가? 커피에 투자할 덩어리시간이 있는가.
사장이 내린 라떼만 찾는 손님의 마음을 기어코 돌리겠다는 각오로, 스팀연습할 2팩의 우유를 구매했다. 사장은 다른 매장에 갔을 때도 스팀하는 소리만 들어도 우유의 질감을 잘 맞춘다. 그런 능력이 전에는 전혀 부럽지 않았는데 요즘따라 갖고 싶은 능력이다.
따뜻한 라떼에 무슨 벨벳밀크 타령이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벨벳밀크에 중독된 그러니까 스팀이 잘 된 우유거품을 맛본 사람은 안다. 그것의 달콤하고 폭신하게 입술에 감싸는 질감을 말이다.
우유스팀은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어려운 영역처럼 다가온다. 잘만 되면 몇 초 사이에 마법이 일어나는 기분이다. 스팀하는 방법은 특별하지 않다. 스팀피처에 적당량의 우유를 담고 공기주입, 회전이 전부다. 사람이 마실 때 적당량의 온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스팀할 때 머리와 몸이 따로논다.
따뜻한 라떼를 좋아하는 손님이 그 날 오후에도 왔다 갔는데, 에스프레소도 망하고 거품도 망쳤다. 사장님께는 보고드리지 못했다. 내일 따뜻한 라떼 손님이 다녀갈 것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