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컥하는 마음

조금만 더 건들면 갑자기 그 자리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질 것 같았다.

by 김애니
저는 글을 쓸 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할 뿐입니다(인터뷰, 당신과 나의 희곡 419)


오늘은 사장이 다른 지점으로 떠나고 아르바이트하는 Y와 L과 나까지 포함해 세 명이서 처음으로 일하는 날이다. 요일 특성상 손님이 많이 오지 않았다. 저번 주 금요일에는 107번까지 영수증을 찍었다. 오늘은 마감할 때까지 87번이었다.


사장이 있었을 때는 문제가 발생해도 민첩한 대처로 매끄럽게 넘어간 기억이 난다. 사장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에스프레소샷 뽑는 일을 맡은 L은 잘 내려오던 에스프레소가 내려오지 않자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나도 혼자서 마감할 때 경험한 잡지식을 내어놓았다.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늘의 문제는 에스프레소 추출시간이 빠르다는 데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시간은 35초인데, 자꾸 26초 이렇게 찍혔다. L은 원두를 갈아서 버리고 또 버렸다. 나는 망한 에스프레소를 재빠르게 버리고 씻었다.


손님이 몰려오지 않아서 몇 번 다시 추출했다가 적당한 샷을 손님에게 넘기고 말았다. 사장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6잔 정도의 손님을 잃었다. 사장이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L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결국 미루었던 사장에게 전화했다. 사장의 한마디에 조치를 취하자 우리가 원하는 35초로 에스프레소가 추출됐다.


카페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은 청소다. Y는 면접 때 설거지하는 일을 즐겨한다고 말했지만 실상 방청소는 몰아서 한 번에 하는 편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아뿔싸'를 외치고 말았다. 카페에서 청소는 매일 해도 줄어들지 않는 옹달샘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청소를 대하는 사소한 습관이 카페에서 할 일이 어떤 이에게는 보이고, 보이지 않는 영역이 존재하는 듯하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사장 없는 3시간을 버티면서 긴장했던 탓일까. 허리가 뼈저리게 아팠다. Y와 L이 가게를 봐줘서 마감담당인 나는 오후 1시 30분에 밥을 먹으러 갔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주문한 새우볶음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분명 1시 30분에 나왔는데 40분에 나온 밥을 보곤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반만 먹고 남은 건 포장했다.


오후 2시부터는 혼자서 카페를 지킨다. 고무바닥을 털고 원두가루를 쓸고, 걸레질을 한다. 만들어야 할 재료가 있으면 채워 넣고 담는다. 오늘은 과일청을 블렌딩 하는 날이다. 슬라이스청과 착즙청을 섞고 그릇에 배분하는 중에 손님이 왔다. 하던 일을 바로 멈추고 주문을 받았다.


사장과 함께 있었을 때, 1킬로그램 봉투는 잘 기억했는데, 혼자 받으니 이게 맞나 싶은 만큼 아리송했다. 손님이 1킬로그램 원두를 사가겠다고 하는데, 나는 맹구처럼 응대하고 말았다.

"정말 집에서 1킬로그램을 다 드세요? 괜찮으시겠어요?"


손님이 사겠다는데 나는 왜 그렇게 쓸데없는 말이 많았을까 싶다. 사장과 단골인 떡볶이집사장이 놀러 왔다. 아이스메뉴만 서비스해봤지 뜨거운 건 처음이라 다시 내렸다. 물 반에 진한 아메리카노를 먹는 떡볶이집 사장님의 입맛을 한 번에 맞추지 못했다. 내리는 와중에 장미차와 청귤차 주문이 들어왔다. 차의 베이스로 쓰는 물이 차가워서 끊는데 시간이 걸렸다. 다시 에스프레소 내리랴, 떡볶이집 사장님과 관계 맺으랴, 물 끓으랴, 차 만들랴 정신이 없었다.


나와 같이 그곳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L과 Y. 커피 메뉴는 많이 만들었는데 수제청은 거의 만들어보지 못했다. 대부분 내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들만 두고 가게를 비웠을 때, 나는 걱정 어린 마음에 청마다 제조 방법을 일일이 넣었다. 그 작업을 하다가 사장이 지시한 우체국택배를 놓치고 말았다. 마음속에서 '으악'하는 비명소리가 새어 나왔다. 사장의 한숨 섞인 어떤 무게감도 같이 느껴졌다.


카페에서 일하다 보면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일들에 자꾸 놓치는 것들이 발생한다. 한다고 하는데 어느 순간에는 고되다는 생각이 절로든다. 매일 쓸고 닦는 일이 카페에서 뿐 아니라 집까지 이어지니 하면서 지친다.


매주 금요일마다 영상편집워크샵을 수강 중이다. 어떤 영상을 만들 것인지 한 사람씩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딱히 나는 할 게 없어서 브이로그를 만들겠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내 브이로그를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는 것쯤은 안다.


영상 하나 만들긴 해야겠고 매일 집과 카페만 다니는 나에게 할 만한 소재가 존재하지 않았다. 할 일이 많다고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조금만 더 건들면 갑자기 그 자리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질 것 같았다.


카페인간으로 살면서 힘에 겨워 자주 울컥한다. 회사인간이었을 때는 상사가 상식 이하로 나를 협박했을 때 화장실에 가서 몰래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널 대표한테 고자질해서 잘리게 할 수 있다는 상사의 흔한 갑질이었다.


카페에서는 갑질이 덜하다. 대신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뚱땅거리는 일이 아니라 계속 몸을 쓰는 일이라 고되다. 맛있게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도 존재한다.


이전보다 일하면서 더 외로워졌다. 주변에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은 없어서 현장의 고됨을 나눌 동료가 Y와 L 그리고 사장 밖엔 없다. 아주 가끔은 울컥하지 않고 마음껏 징징거릴 만한 사람이나 공동체 뭐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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