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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Oct 31. 2022

[5문장쓰기] 추모하는 마음을 지닌 채...

22.10.11~31 #추모 #육아번아웃 #주말농장 #책 

[계속...10/31]


이태원 사망자 장례비 1,500만원이라는 기사가 눈에 보일 때마다 이상하게 섬짓하다. 이번엔 운좋게 내가 참사를 피해갔다는 안일한 단순함이 눈에 밟힌다. 정신과의사 정우열은 유튜브 커뮤니티에 "추모하는 마음을 지닌 채 잘자고 잘먹고 일상을 지속하는 것이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줍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인터넷뉴스를 볼 때마다 감정이 널뛰기를 한다. 일단 잘자고 잘먹어야겠다. 


[현실육아]


<비혼이고 아이를 키웁니다>를 읽었다. 결혼유무와 상관없이 양육은 쉽지 않구나 싶어 공감이 됐다. 나도 입양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조금 있었다. 지금 내가 낳은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되짚어보면 입양이 웬말인가 싶다. 아이는 꼭 내 배가 아파 낳아야 할까에 관한 고민은 계속 이어질 듯싶다. 입양할 만큼 내 그릇이 크지 않아 좋은 이야기를 눈으로 잘 소비한 느낌이었다.


[세월호]


아이가 어린이집 5~7세 친구들과 1박2일 가을소풍을 떠났다. 하루 떨어져 지내는데 약간 오매불망이다. 세월호 사건이 떠올랐다. 당시에 난 미혼이라서 자식을 잃은 부모 마음을 체감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자녀가 있는 과장님들이 무척 침울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이젠 아주 조금 부모의 마음 그걸 알 듯 말듯하다. 부모 품을 떠나 씩씩하게 잘 자고 먹고 노는 아이 사진을 받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방황]


삶의 나사가 약간 빠진 듯하다. 가족 외에는 어떤 모임이나 커뮤니티 이런 곳에 있어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마음과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관계는 에너지와 노력이 많이 든다고 들었는데, 그에 따른 행동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내 욕망 아니 내면의 소리에 좀더 귀기울일 걸 후회하는 마음도 든다. 어느 기류에 휩쓸려서 나는 요즘 헤매고 있는 걸까. 앗, 가을을 타는 건가.


[한 끗 차이 10/21]


꽤 오랜만에 소설 <어디 갔어, 버나뎃>을 읽었다. 소설이 재미있어서 유초가 추천한 <잃어버린 사랑>을 읽을 참이다. 이전에 대출한 <난생 처음 경제공부>를 읽는데 까만 건 글씨고 하얀 건 종이처럼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는다. 소설 읽다가 인문서를 보려니 적응이 안된다. 경제사 이야기한다고 엄청 자신감만 높고 진짜 별로였던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쳤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내 인생에서 최악의 사람과 만남이었다. <어디 갔어, 버나뎃>을 보면서 주인공 딸인 비에게 몰입해서 함께 사라져버린 버나뎃을 찾느라 심장이 두근거렸다. 영화로 보면 2시간인데 약간은 느리게 3일에 걸쳐 이야기를 소화했다. 이 기세를 몰아 <잃어버린 사랑>도 재미있게 읽어야지.


[쾌락의 뇌를 깨우기 10/24]


유튜브채널 <육아빠>에서 생존의 뇌와 쾌락의 뇌를 챙겨듣곤, 거의 다 들었다. 육아번아웃을 언급하면서 '생존의 뇌'와 '쾌락의 뇌'를 이야기한다. 미래지향적이고, 절제하고 현실적인 생존의 뇌만 쓰다보면 뇌가 당연히 지친다고 한다. '쾌락의 뇌'는 현실에 충실하고 충동적이라고 표현했다. 쾌락의 뇌도 활성화시켜줘야 한다길래 이번 주말에 평소 절대 하지 않을 짓도 시도해봤다. 인생네컷에 가서 남편과 아이와 함께 셀프사진을 찍었다. 5천원을 내면 2장의 네컷 사진을 받을 수 있다. 평소 같으면 왜 가야 하는지 1도 이해하지 못하는 생존의 뇌만 가득했던 내게 쾌락의 뇌를 깨워주고 싶었다. 내게 쾌락은 주로 미각,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편인데 최근에 그런 빈도도 확 줄어서 약간 삶의 낙이 많이 얕은 편이었다.


혼자 육아한다는 사실에 힘이 들어서 공동육아어린이집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것도 내겐 어떤 대안이 되어주지 못했다. 다른 곳보다 부모 참여가 높아서 다른 부모와 마주치는 일이 훨씬 빈도가 많지만 정말 내가 원했던 건 그런 류의 커뮤니티가 아니었나 보다. 역시 경험하면 생각이 달라진다. 내 안의 기준이 높아서 감사 혹은 만족스러운 고백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고민에 빠져 있었는데 엄마들의 커뮤니티에서 힘든 이유를 <육아빠> 정신과 전문의가 이야기해주니 과한 신뢰가 됐다.

아직 5살인 아이가 내일 모레 지나면 곧이라도 초등학교에 입학할 것 같다는 과한 앞서감이 내게 있다. 곧 졸업시즌도 다가오고 올해가 2달 정도 남아서 속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오직 내겐 생존의 뇌만 사용된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쾌락의 뇌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남은 2달 동안 안해본 짓 좀 하면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졌다.


[가는 계절이 아쉬워 10/25]


응요밭에서 배추와 무를 뽑을 날이 약 3주 정도 남았다. 그러니까 내가 청계산입구역에 갈 일이 3번 남았다는 이야기다. 서울을 떠나고 싶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못 떠나니까, 대안적인 방법으로 텃밭, 주말농사를 시작했다. 첫 시작은 호기심이었지만, 3평 짜리 작은 농사를 지으며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기분이 들었다. 좋은 땅은 햇빛과 물과 바람이 작물을 알아서 키워줬다. 나는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면서 잡초를 뽑고 자란 얘들을 수확해서 오면 됐다. 내가 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받았다.

콘텐츠를 만드는 혹은 만들어내는 직무를 하다가 가구 구독 회사에서 처음 해보는 일을 하며 가슴 한 켠의 구멍이 난 듯했다. 이대로 가는 게 맞는지 지금 하는 일을 탈출하고 싶다가도 콘텐츠 만들면서 무언가 잘 만들어낼 자신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흙과 식물을 만지고,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자연 가운데 들어가니까 보이진 않지만 마음의 회복이 일어났다.

기후위기 시대에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 외에 이산화탄소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주말농장에서 하는 탄소농업이기도 했다. 도시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팜파티도 해보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공동육아어린이집 학부모들처럼 비슷한 가치관을 가졌다. 제로웨이스트 등 환경에 관심이 많고 귀촌귀농을 꿈꾸는 사람,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봄에 비해 짧은 가을 농사가 무척 아쉽다. 주말농장에 참여하면서 계절의 변화를 가장 가까이 느꼈다는 한 참가자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자연은 순리대로 계절의 변화를 맞이한다. 바질은 추위에 약한데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지니 바질잎의 검은 반점이 나타났다. 바질과도 안녕을 고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다. 1주일 혹은 2주에 한번 밭을 가꾸러 갈 뿐인데 도시에서 밭을 일구며 내 마음밭도 더디지만 튼튼해지고 있다. 고마워, 땅아!


[인생밀크티 10/28]

  

전에는 요가를 마치곤 나누미떡볶이에서 김밥이랑 오뎅 먹는 게 루트였다. 요즘에는 성대마트에서 500ml 데자와랑 중국차를 구매해 홀짝거리며 마신다.  


250ml 캔음료는 많은데 500ml 페트병이 잘 안판다.

동아오츠카에서 만드는 데자와는 대학생 때부터 즐겨마셨던 음료다. 더 맛있어보이는 공차로 밀크티 붐이 일자 나는 데자와의 밍밍한 맛이 싫어 갈아탔다. 이 음료는 39살에 암으로 하늘나라에 간 이 대리님이 나처럼 좋아하는 음료기도 하다. 나는 데자와를 의식처럼 마시면서 이 대리님이랑 대학생의 추억을 자주 떠올린다.

이렇게 쓰고보니 이 대리님이랑 톰과제리처럼 잘 맞았는데, 요즘엔 그런 동료가 없다. 이젠 직장에서 내 나이가 너무 많은 위치에 있고, 첫사랑 같은 첫직장보다 점점 힘들고 애매한 곳에서 직무란 걸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첫직장 다닐 때도 그만두고 싶어서 난리를 피웠다. 시간이 지나서 나쁜 기억은 휘발되어 남아있다.

앞으로 지금 다니는 요가원을 다닐 시간도 4번 남았다. 500ml 데자와는 쿠팡에서 주문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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