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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Nov 14. 2022

[5문장쓰기] 소소한 날들의 기억

22.11.4~11 #일상 #현실육아 #잃어버린사랑 

11/4

[주차]


안하무인 아저씨가족이 총 7세대가 사는 빌라에서 허구한 날 짖는 개와 함께 산다. 그 호실만 한 빌라에서 3대나 주차를 하고, 관리비 2만원도 지난 2월부터 내지 않고 있다(실제 주차구역은 7대만 가능하다). 자주 그 호수 때문에 이사가고 싶고 나는 감정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그 아저씨는 안하무인으로 잘만 산다. 그래서 더 분노한다. 나는 왜 안하무인, 제멋대로인 아저씨를 보며 분노하는 걸까. 책임감없이 행동만 하고 권리를 누리려는 모습에서 화가 난다. 내 안의 그 아저씨 같은 정말 별로인 모습이 있지 않는가(아예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주차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아서 머리가 아프고, 아저씨차가 내 차 출입구를 딱 막아서 혈압이 오른다. 마음이 답답하다. 전면주차를 후진으로 빼서 나가야 하는데 나는 그 지점이 무척 막막하다. 아무리 주차와 운전은 쉽다고 말로 읊조려도, 현실에서 나는 주차가 어렵다. 말과 현실의 딜레마에 허구한 날 빠진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날 그 아저씨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범위까지 생각이 날아갔다. 위험하다. 어서 잘먹고 잘자야 한다. 하긴 아직 저녁 먹기 전이니 생각의 질이 영 높지 않다. 


11/7

[술]


내 주변에는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술 마시는 문화가 있는 커뮤니티에 들어가니 대부분 저녁 먹을 때 맥주 한 캔은 기본이고, 뒷풀이라도 하는 날에는 마구 취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그런 관계가 낯설다. 맨 정신으로 관계를 맺고 다양하게 수다를 떨다가, 술을 잘 마시는 커뮤니티에 들어가니 이방인이 된 기분이다. 친목의 비용으론 꽤 대가가 크다. 다수 안에 술먹지 않는 소수는 이상하게 작아진다. 내가 술에 취해본 경험이 없어서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 말의 요지는 술을 먹지 않고 친해질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듯해서 아쉽단 이야기다.


11/8


[양육과 보육 사이]


요즘 아이는 자기 전에 내일 무엇을 먹을 건지 종알종알 이야기한다. 어젯밤엔 초코시리얼, 요거트랑 꼬깔콘, 죽을 먹는단다. 그래서 나는 아침부터 급하게 계란죽을 끓였다.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초코시리얼과 꼬깔콘, 요거트를 먹었다. 요거트 숟가락을 무심코 큰 걸 줬는데 아이스크림숟가락을 달라고 했다. 큰 숟가락에 덕지덕지 묻은 요거트! 그거 한입먹고 다른 숟가락을 쓰라고 내가 말했지만 아이는 결단코 거부했다. 내가 먹으면 될 일인데 겁박하듯 아이 머리를 쥐어박고 사자후를 했다. 아침부터 일어나 계란죽을 끓였는데 그걸 안먹어서 괘씸했던걸까.아침저녁으로 누군가를 챙기는 삶은 언제쯤 졸업할 수 있을까.


11/9


[정기검진]


오늘은 정기검진 때문에 간담췌 CT촬영을 했다. 피도 뽑았다. 병원에 오면 기분이 바닥으로 쭉 가라앉는다. 아픈이들을 보는 게 마음이 편치 않다. 미래 내 모습도 그들과 다르지 않을까, 우리 부모님이 아프면 저런 모습일까 등 수많은 생각과 형상이 겹친다. 그래도 아직 건강하니까 그걸로 감사하자며 마음을 다독인다. 이제 검사도 마쳤으니 6시간 금식에서 해방이다. 요즘 스타벅스 돌체 블랙밀크티(숏, 오트밀크 변경)에 꽂혔는데, 날 위해 그 한잔을 마셔야겠다. 건강이 최고인 하루다.


11/10


[잃어버린 사랑]


오늘 오전 10시 대표가 사무실에 온다고 했다. 전날부터 지각할까봐 긴장되더니 급기야 오늘따라 아이는 세 코스에 걸쳐 아침을 천천히 먹었다. 재촉과 짜증이 뱃속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계란죽도 어느 정도 먹어서 허기를 달랬다고 생각했는데 양이 부족했던 걸까. 어린이집 앞 주차도 난코스였다. 자리가 없어서 근처 아파트에 세워두곤 아이는 잰걸음으로, 나는 성큼거리며 부리나케 등원을 했다. 지각하지 않으려고 매일 했던 아이 얼굴 로션과 선크림도 까먹었다. 이놈의 조급증!


<잃어버린 사랑>을 다 읽었다. 모성애의 다른 면을 적나라하게 적어줘서 재미있었다. 내 안의 말못한 그 모성애 뒷면을 긁어주는 기분이었다. 주인공 레다와 젊은 엄마 니나 사이에 나는 자리잡은 듯하다.어떨 땐 레다처럼 나 자신만을 생각하다가 니나처럼 아이만을 위해 헌신을 선택하는 양면성이 공존한다. 자신을 위해 두 딸을 떠났다가 돌아온 레다의 행동력은 정말 놀라웠다. 레다의 동기부여에는 자기자신이 굳건해서 낯설기도 했다. 어젠 어린이집 소위모임에서 서기를 했다. 오랜만에 타인의 이야기를 녹취했던 옛실력을 마음껏 펼쳤다. 7명의 발언을 거의 다 받아적었다. 누군가 나에게 "고생이 많네요"라고 했는데 "제가 잘하는 일이에요"라고 당당히 말하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젊은 엄마 니나에게 아이가 잃어버렸던 인형은 어떤 의미였을까. 잃어버린 걸 찾았으면 그걸로 된 게 아니었나보다. 내가 니나였다면 인형도 찾고 그집 열쇠도 받아서 나왔을 것 같다. 모성애에는 양면성이 존재하는데, 사회적으론 한면만 주구장창 그러니까 엄마의 헌신 이런 식으로만 소비된다고 봤다. 모성애의 이면이 그려지면 세상이 큰일이 나는 걸까. 어린이집 운영에서도 남편보다 내가 감당하는 게 훨씬 많은데, 그것도 그리 바람직하진 않은 듯하다. 하긴 바람직과 형평성 이런 거 따질수록 뇌가 과부하가 걸린다.


자식이란 뭘까 이것도 잠깐 고민했던 듯하다. 아이가 어릴수록 자식을 향한 사랑이 꽤 크다고 본다. 아이 위주로 외출을 다니다보니 점점 나는 재미가 없다. 아이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놀이터와 동물원은 그만 가고 싶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잘 못놀아주겠다. 맛있는 집에 가서 밥먹고, 조용히 차 마시면서 멍 때리는 게 제일 좋은데,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우리 아이를 위해서 뭉친 부모 역할 틈 사이에서 매번 나는 갈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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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


[회사에서 내 위치]


죄송한데 제가 아이 등원하고 출근을 해야 되서요. 오전 9시까지 도착이 어려울 듯합니다.”

팀장은 팀원 전체가 오전 9시까지 오라고 일방적인 전달을 했다. 내가 9시까지 일터에 도착하려면 오전 8시엔 집에서 나가야 하는데, 어린이집 문이 그때 열리나. 점점 회사에서 나란 사람의 입지가 신문지 위에 겨우 발을 구겨넣어 서있는 모양새다. 안되는 걸 된다고 표현할 길이 없어 죄송하다고 하며 꾸역꾸역 돈을 번다. 솔직히 자괴감이 든다. 왜 긍정보단 부정이 먼저 튀어오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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