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1.14~18 #도시농부 #일의질 #김장
11/14
[올해 첫 깍두기]
지난 11월 12일(토)에는 9월에 심은 배추와 무를 수확하며 가을농사를 마무리지었다. 텅 빈 텃밭을 보면서 마음 한편이 시원섭섭했다. 그다음 봄 농사는 내년 4월에나 시작해서 빈 시간이 꽤 길게 느껴질 듯하다.
주말 동안 배추와 무를 다듬고 정리했다. 오늘에서야 농장에서 수확한 무 1개로 깍두기를 담았다. 마트의 무와 내가 기른 무는 식감과 향이 달랐다(기분 탓인가). 원래 무는 아삭한데 노지에서 자란 녀석은 아삭한 소리부터 다르게 느껴졌다. 자연에서 자유롭게 자라서 그런가 배추된장국을 끓였는데 물에 배추맛이 많이 우러났다. 그 배추맛을 잡느라 마늘과 양파를 왕창 넣었다.
작은 주말농장이지만 내 먹거리의 출처를 확실히 안다는 점에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다. 마트에서 쉽게 돈을 주고 사는 식재료의 간편성과 활동성은 매우 높지만 그만큼 냉장고에서 묵히기 일쑤였다. 마트 채소는 빨리 안 먹으면 순식간에 상한다. 그에 비해 텃밭 작물은 냉장고에서도 오래 보관이 가능했다.
요즘은 농업하는 사람이 정원을 만들고, 가드닝하는 사람이 농사를 짓는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농사가 마무리되니까 다음으로 퍼머컬처 72시간 교육이나 들어볼까 싶다. 내년에는 좀더 큰 텃밭정원을 시도해볼 수 있을까.
11/15
[버티는 하루]
물류지원을 하며 9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 불쑥 퇴사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온다. 어제 무인양품 의자류 커버를 끼우면서 뭐하고 있는지 현타가 왔다. 가구디자이너는 아이패드랑 입으로만 일하는데, 나는 비닐과 상자정리 같은 허드렛일을 해서 순식간에 비교가 됐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지만 편하게 일하고 싶은 마음은 잘 버려지지 않는다. 세상에 편하고 쉬운 게 없다고 읊조려보지만 그렇지 않은 일도 많은 듯하다. 가구 재고현황의 질문이나 배송일정에 답해주고 점점 지쳐간다. 3개월 백일만 더 버티는 건 어려우니까 하루하루 오늘만 버티자!
11/16
[마음 알아차리기]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는 아침마다 아이들이 모여앉아 자기 이야기를 하는 '아침열기' 시간이 있다. 평소 아이는 말이 없는 친구라, 별 이야길 하질 않는다고 들었다. 아이가 나에겐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선생님 말에 따르면 "속상한 일이 있어서 할 말이 있어"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주었다. 아이는 엄마인 나에게 혼날 때면 속상한 마음이란 걸 인지하는 듯하다. 요즘 자주 혼나는데 매번 내가 아이에게 속상한 마음이 들게 빌미를 제공했나 싶다. 한편으론 속상한 정도가 어른인 내게 혼날 때뿐이라니 귀여워서 코웃음이 나기도 한다. 나도 단순하게 속상했던 그 어린시절이 있었는데...여러 모양의 마음을 알아채고 다독여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꽤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속상한 마음과는 별개로 머리 자른 지 1달이 되니까 나는 얼마 자라지도 않은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가고 싶어졌다. 머리카락을 자르면 수더분한 모습이 아주 잠시 말끔해지는 그 순간을 즐기는 게 분명하다. 미용실 가려면 예약도 잡아야 하는데 귀찮지만 내 마음을 알아차려 줘야겠다.
11/17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이 생각은 자신을 평가절하하고 새로운 시도를 스스로 제한하는 가장 나쁜 핑계 중 하나다.(일의격 발췌)
11/18
<무 요리 풍년>
지난 월요일에 담은 깍두기가 잘 익었다. 전라도사람인 내겐 간이 딱인데 서울사람인 남편에겐 짜다고 했다. 아이랑 먹으려고 작게 썰었더니 크게 베어 먹는 편이라 식감이 성에 차지 않았다. 남은 무로 깍두기를 담을 땐 어른 입 크기에 맞춰야겠다. 어제 ‘한국인의 밥상’에서 무정과를 봤다. 쌀조청에 무를 썰어서 절이는 방식이었다. 무정과를 만들면 가을무의 식감을 오랫동안 맛볼 수 있다고 했다. 꽤 정성이 필요해 보이는 음식이었는데, 맛이 궁금해서 조만간 쌀조청을 사서 마법사처럼 무정과를 만들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