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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니 Sep 24. 2024

쓰기 위한 읽기

내가 다시 나를 찾은 날 6

타인의 언어로 내 고민의 답을 찾아낼수 없다. 책을 많이 읽어도 자기 언어로 생각을 정리하지 않는 이상, 파편적인 지식이나 느낌으로 남을 뿐이다.

몰입하여 독서가 끝났을 때는 온전히 내 삶으로 돌아와
나만의 언어로 재구축해야 한다.

아름다운 시를 쓰려면
내 안에 시를 해석하는 고유의 언어를 갖고 있어야 한다.

코나투스, 유영만, 244쪽



일장춘몽(덧없는 일이나 헛된 영화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처럼 삶에 허무가 찾아왔다. 이렇게 무더운 가을을 타는 건가. 허무함이 찾아오니 잉여로운 시간은 몹시 견디기 어려웠다. 허무함을 기반한 내적동기는 탈이 많았다.

친구와 만나려고 별 수를 쓰다가 만나면 뭐하나 싶었던 찰나에 아이가 아팠다. 누군가에게 내 삶에 찾아온 긴 허무를 털어내고 싶다. 감정쓰레기통 밖에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홀로 오롯이 때론 어쩔 수없이 견디고 있다.


일시적으로 찾아온 허무는 삶의 의미마저 퇴색시켰다.

'내가 뭐 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히니, 그렇게 나를 지탱해줬던 명상과 책읽기도 무의미한 일처럼 다가왔다. 해서 뭐하나 싶은 자조섞인 시니컬함도 올라왔다.


'WHAT DO YOU WANT?'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질문을 하면 뭘하나. 이게 무슨 의미를 주나. 하면서 나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물론 지금도 완전 나오지 못했다.


이별은 다시 사랑으로 치유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처럼 나도 같은 일로 다시 그 간극을 메워야 한다. 친구랑 길게 통화하면서 아르바이트 자리는 왜 안되냐는 질문을 받았다. 대충 이러저러해서 그렇다고 대답 후에 알았다. 내 상황에서 아르바이트로 비용 감당이 절대 되지 않다는 걸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몰입해서 질문하고 현재까지 얻은 답은 두가지였다.

- (내) 몸과 마음이 행복하기를

- 에너지를 받는 선택을 할 것. 머리가 아닌 가슴을 따를 것


그랬던 내게 찾아온 허무는 힘이 셌다. 뭘 해도 의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몸을 움직여야 한다. 머리로만 안다. 텃밭 가는 일도 전혀 즐겁지 않다. 공동육아어린이집 일은 더더욱 하기 싫다. 갑자기 사라지고 싶은 충동도 생긴다(체력저하로 나머지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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