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무사히'를 외치며 살아온 나에게 건네는 조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학 시절 자취방을 함께 쓰던 사람이다. 우리는 컵라면 물을 얼마나 부어야 가장 맛있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하던 사이였다. 그는 이직을 고민하고 있었다. 현재 다니는 회사는 안정적이고, 재택근무가 가능하며, 급여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다만 회사의 매출은 줄어들고 있고, 산업은 오래되었으며, 주기적으로 희망퇴직 이야기가 나온다고 했다. 말하자면 지금은 괜찮지만 미래는 애매한 상태였다.
그에게 들어온 제안은 AI 자율주행 스타트업이었다. 최근 큰 투자를 받았고, 직함은 하드웨어 선임 엔지니어, 연봉은 지금보다 15% 높았다.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었다. 그는 내게 물었다.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안정적인 직장에 오래 다녔다. 그 덕분에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법을 배웠고, 동시에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 법도 익혔다. 루틴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대신해 준다. 질문을 없애주고, 결정을 미뤄주며, 결국은 선택의 책임까지도 덜어준다.
사람들은 흔히 안정적인 삶을 성공이라고 부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안정은 실제로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준다. 다만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질문을 제거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오늘 무사히 끝내자”라는 문장에 더 익숙해졌다. 이 문장은 매우 유용하다. 그러나 오래 사용하면 삶이 현재형에만 머무르게 된다. 어른들은 말한다. 안정적인 게 최고라고. 너 자신을 알라고.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 말에는 언제나 빠져 있는 문장이 있다. “그래도 혹시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그 책임은 네가 져야 한다.” 나는 그 책임을 지지 않기로 선택했다. 대신 예측 가능한 내일을 얻었다. 고점은 낮고 저점은 높았다.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다만 이 거래에는 환불이 없다.
친구는 아마 그 회사를 선택할 것이다. 그는 불확실한 미래를 택할 것이고, 언젠가는 그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다. 혹은 그것을 자신의 인생 서사로 만들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태도다. 그는 아직 자신의 시간을 미래형으로 쓰고 있었다.
통화를 끊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꿈을 포기해서 늙는 게 아니라, 꿈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될 때 늙는 건 아닐까 하고.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아직 말할 수 있는 꿈이 남아 있다는 증거로서. 아주 작고 별 볼 일 없는 방식이지만, 적어도 이것만큼은 안정적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