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본 영화 「건축학개론」
첫사랑에 관한 영화는 많다. 그중 상당수는 첫사랑이 왜 실패했는지를 설명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추억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설명되지 않은 감정의 잔여물에 가깝다.
나는 「건축학개론」을 여러 번 보았다. 다시 본 이유는 슬퍼서가 아니라, 매번 같은 장면에서 다른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영화 같은 엇갈림이 없었다. 대신 이해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조차 그때는 알지 못했다.
영화 속 남자는 여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다. 집을 공짜로 지어달라는 말, 아나운서가 되겠다는 말. 그 말들이 미래에 대한 제안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아채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현재에만 반응한다. 스무 살의 자존감은 늘 현재형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사랑이 다가올수록 나는 작아졌다. 상대와 나를 비교했고, 비교의 결과는 언제나 불리했다. 비교적 가난했고, 학벌이 부족했고, 외모도 특별하지 않았다. 그래서 먼저 물러났다. 물러나는 것이 선택이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회피였다.
그 시절 나는 ‘나중’을 믿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는 막연한 예감. 그래서 사람보다 공부를 택했고, 관계보다 계획을 택했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그 사람에게 충분히 친절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미안해”라는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미안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은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한 문장이었다.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가 아니라 나였고, 그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고 있었다.
영화에서 여자는 다시 나타난다. 집을 지어달라는 핑계로. 이 영화가 끝까지 붙잡는 질문은 단순하다. 왜 지금 다시 돌아왔을까. 영화가 진행되며 그 질문의 답은 드러난다. 그녀는 그때 듣지 못했던 말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안다. 확인이 이루어진 들, 사랑을 다시 시작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그런 확인을 원한다. 하지만 그 확인은 끝내 오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어렴풋이 알게 될 뿐이다. 그래서 첫사랑은 기억이 아니라 질문으로 남는다. 끝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