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자존심

사과하지 못한 이유에 대하여

by 김이후

즐거운 오후였다. 이상하게도, 이런 날은 늘 오래가지 않았다.

4시에 퇴근하고 새로 장만한 자동차로 드라이브를 했다. 놀이터에서 아이와 놀아주며 체력도 미리 뺐다. 약간 추웠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좋은 마음에 저녁은 내가 샀다. 이전부터 가보려 했던 장어집에 갔다. 아이도 장어를 잘 먹어주었다. 알싸한 마늘 맛이 좋아 여러 번 추가로 먹었다. 아내도 좋아했다.


어떤 일은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난다. 우리에게도 그랬다. 아내는 평소부터 나에게 지시톤으로 집안일을 시키는 편이다.


“이따 이것도 해” “그건 왜 아직이야”


오늘도 이런 지시가 못마땅하게 느껴졌다. 결국 아내의 말 한마디를 참지 못해 화를 터뜨렸다.


"너는 입으로만 한다. 진짜. 생각을 해봐 그렇게 시켜대는 게 맞는지"


아내는 화를 내는 나에게 더 크게 화를 내며 엄포를 놓았다.

그렇게 우리는 대화가 단절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전부터 내 마음이 평온하지 않았다. 우리 관계에 비슷한 문제가 있던 것은 오래된 일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한다 말하지만 아내는 공감을 말한다. 이는 아주 큰 괴리이다. 나에게는 너그러운 가장이란 것이 어려운 것이었고 작은 부분도 따지려 들었다. 내가 어디까지 맞춰야 하느냐는 것이 주요 불만이었다. 아내는 물러섬이 없다. 우리는 또 멀어졌다.


나를 돌아보며 인내심에 대해 말을 해본다. 내가 제대로 참았던 적은 있었나. 인내라는 것은 나의 감정에 반해서 참는 것이다. 어떤 목표를 위해 관두고 싶고 그만하고 싶지만 그걸 버티는 것이 인내이다. 인내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인내할 만큼의 가치, 그 이후의 영광. 가족만큼 이에 해당하는 단어는 없다. 장어를 잘 먹던 아이, 장난치는 표정을 짓던 아내 얼굴을 떠올리면, 오늘 한숨 한 번 더 쉬고 넘겼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참아야 할 때 참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보통의 부부관계가 마찬가지이듯, 우리 관계도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쉽게 터뜨리는 쪽이고, 아내는 쉽게 내려놓지 않는 쪽이라서 나는 참아야 하고, 아내는 버텨야 한다. 문제는 이 사실을 인지하는 것과는 별개로 일상은 감정이라는 때가 묻게 마련이다. 매번 잘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다. 결국 먼저 사과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문자메시지를 여러 번 썼다 지우는 것은, 화 때문이라기보다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그 자존심이 나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방어인지, 아니면 끝내 사과하지 않기 위한 핑계인지, 그 경계는 생각보다 자주 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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