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는 대부분 피상적이다

말하지 못한 장례식에서

by 김이후

지난달, 친구의 아내 장례식을 다녀왔다.
토요일 저녁이었다. 부고 문자가 아니라 친구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울산은 못 가게 됐다. 어제 와이프가 갔다.”
그 문장을 읽는 동안 방 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
해는 지고 있었고, 아이는 장난감을 흩뜨리고 놀고 있었다.
그 평온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미 아내가 혈액암으로 투병 중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같은 나이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우리는 멀리서 조용히 응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소식은 더 현실감이 없었다.


친구는 아이를 갖지 않으려 했다.
아내의 몸이 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내는 끝내 아이를 원했고, 임신과 동시에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갔다.
조기 출산, 그리고 투병.
병명이 알려진 건 한참이 지난 뒤였다. 희귀 혈액암이라고 했다.
1년이 채 되지 않아, 친구의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말을 준비하지 않기로 했다.
기차표를 예매했고, 부조금을 챙겼다.
아내는 아이를 맡길 수 없어 함께하지 못했다.
빈소는 조용했다.
영정사진은 따로 준비되지 않아, 급히 꺼낸 증명사진 같아 보였다.
장례식 비용과 절차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고, 그 설명들은 이상할 정도로 또렷했다.
그 현실적인 언어들이 빈소를 더 차갑게 만들었다.


친구는 크게 말이 없었다.
어울리지 않게 큰 정장 자켓과 삐뚤어진 넥타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이 그의 상태를 대신 설명하는 것 같았다.
동창 몇 명이 와 있었고, 우리는 잠시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누구도 웃지 않았다.
웃는 것이 실례일 것 같았다.


조문을 마치고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왔지만, 그 앞에서는 어떤 문장도 쓸모가 없어 보였다.
기차 시간에 맞춰 나오는데, 친구가 따라 나왔다.
말없이 담배를 피웠고, 연기를 뿜으며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가장 밝은 목소리를 골라 말했다.
“정리되면 연락해. 술이나 한잔하자.”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막상 그런 자리에 서면 우리는 늘 같은 말을 반복한다.
위로는 대부분 피상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위로를 건넨다.
그 말이 상대의 슬픔을 덜어주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아마도 위로란, 슬픔을 줄이는 말이 아니라
그 슬픔 곁에 누군가 있었다는 흔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흔적들이 쌓여
친구가 언젠가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랐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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