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책을 받아들이는 마음에 관하여
유튜브를 보다가 신동엽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유치원에 가고 싶다고 떼쓰던 날, 엄마는 대신 카스테라와 흰 우유를 내밀었다고 했다.
가난해서 유치원은 보낼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어린 그는 울면서도 끝까지 그 카스테라를 먹었다고 했다.
그 선택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는 고백이 오래 남았다.
이 영상은 차선책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늘 최선을 고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순간이 더 많다.
그래서일까,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항상 내 욕심만을 좇다 현실 앞에서 좌절하곤 했다.
차선책을 선택할 여유가 없었다.
학창 시절, 목표한 대학에 갈 성적이 나오지 않자 차선을 찾기보다 공부를 통째로 놓아버렸다.
연애에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많이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다. 친구로 지내다 보니, 나 혼자 마음이 커졌다.
퇴근 후 함께 자주 가던 카페를, 주말에는 나 혼자 찾곤 했다.
추운 겨울 목도리를 빌려주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 관계가 조금은 달라진 게 아닐까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사내 동기라는 상황을 핑계 삼아 시간을 보내기만 했다.
결국 우리는 이루어지지도, 친구가 되지도 않았다.
나에게는 카스테라라는 선택지를 떠올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돌아보면, 나는 성공이 아니면 다 실패라고 여기는 흑백논리로 살아온 것 같다.
그래서인지 선택의 순간마다 나를 흔든 건 결과가 아니라,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던 내 마음이었다.
카스테라도 그랬다. 중요한 건 카스테라가 아니라, 울면서도 그걸 삼킬 수 있었던 마음이었다.
내 삶은 패배만을 거듭하지는 않았고 운 좋게 몇 번의 성공도 함께 했다.
그러나 성공의 환희와 패배의 아픔이라 생각했던 것은 잠시였다.
지나 보면 성공이 반드시 성공은 아니었고 실패 또한 그러했다.
공기업에 붙었을 때는 인생이 풀리는 줄 알았지만,
지방 발령을 받고 나서야 그 선택이 또 다른 버티기의 시작이었음을 알았다.
누구나 선망하던 여자와 우연히 연락하게 되어 사귀게 되었지만
그녀는 나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결국 그런 선택의 순간들은 지나가 버린다.
남들과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갈래를 만들 뿐이다.
돌아보면, 그 이후의 시간들이 이어져 지금의 나를 하나의 이야기처럼 엮어 왔다.
어쩌면 지금 내 앞에 놓인 것들 중 상당수는,
유치원 대신 내밀어졌던 카스테라 같은 것들 일지 모른다.
그래서 이제 생각한다.
나도 기꺼이 카스테라를 먹자. 이 시간도 언젠가는 지나간 선택 하나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