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재촉하던 가족에게 1년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동생
나에게는 두 살 차이 나는 여동생이 있다.
1989년생. 올해로 서른여덟이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고집이 셌다.
호불호가 분명했고, 하기 싫은 일은 끝내하지 않았다.
공부도 그랬고, 취업도 그랬다.
그래서 말이 적었고, 신중했다.
말을 꺼내는 순간 기대가 생긴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달랐다.
부모님의 기대를 읽는 데 능숙했다.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면 먼저 떠들었다.
기대는 커졌고, 실망도 함께 따라왔다.
대신 그때마다 지원을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꽤 철없는 방식으로 자랐다.
그런 나를 동생은 지켜봤다.
불만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크게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게 늘 고마웠다.
그래서 동생이 뭔가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반대하지 않았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딱 하나, 불만이 있었다.
연애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남자를 만난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모태솔로 아니냐고 물으면 웃으며 넘겼다.
괜히 안쓰러웠다.
사랑을 모르고 사는 건 아닐까,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인기가 없는 거 아니냐, 조금 꾸미고 다니는 게 어떠냐.
그런 말로 동생을 화나게 하기도 했다.
어느 날 회식 중이었다.
좀처럼 먼저 전화하지 않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이아 반지를 받았다고 했다.
말문이 막혔다.
올가을에 결혼을 할 거라고 했다.
만난 지는 1년쯤 됐고, 같은 사무실의 공무원이라고 했다.
축하한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곧바로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부모님도 어안이 벙벙해 있었다.
어제 들었다고 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결혼 얘기를 가장 많이 하던 엄마는 특히 그랬다.
동생은 1년 동안 말하지 않았다.
결혼을 재촉하는 부모님과,
인기 없다고 농담처럼 말하던 오빠에게도.
확정되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는 게 싫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태도였다.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축하만 하면 될 일을, 나는 왜 미안해졌을까.
우리는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동생에게 필요 없는 짐을 얹고 있었던 건 아닐까.
동생은 늘 자기 방식으로 살아왔다.
양보는 했지만, 방향은 바꾸지 않았다.
내가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회사,
조금 더 나은 경제력을 말할 때도
동생은 자기 속도를 고집했다.
버는 만큼 쓰고, 가진 것 안에서 기쁨을 찾는 삶이었다.
나는 늘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바라봤다.
눈은 언제나 앞에 있는 무언가를 향해 있었다.
그래서 이제야 인정하게 된다.
동생은 자기 몫의 삶을
이미 충분히 잘 살아오고 있었다는 것을.
그의 속도는 느린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남들과 다를 뿐이었다.
조만간 동생에게 말할 생각이다.
고생했다고. 많이 배웠다고.
늘 자기 생각으로,
자기 삶의 관할권 안에서 살아온 동생의 결혼을
나는 진심으로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