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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 넘치는 카페

빈센트 반 고흐_ 밤의 카페테라스, 1888

by 전애희

온라인-오프라인

박래현 작가의 <부엉이>처럼 온통 푸른 잿빛의 날들의 연속이었다. 아이들 등교 후 대충 집을 치우고 이진숙 작가의 『새로고침-서양미술사』 두 권을 가방에 넣은 후 집을 나섰다. 내비게이션에 장소를 등록했다. 김성민 커피 브라운. 주차장 입구 쪽으로 다가가자 가을 햇살이 들어왔다. ‘얼마 만이야!’ 커다란 구름과 푸른 하늘의 조합이 들뜬 내 마음에 가속도를 더해주었다.

작년 김상래 작가가 운영하는 <살롱 드 까뮤>에서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며 예술을 보고, 느낀 것들을 글로 써보았다. 그 시간들은 나에게 ‘내 책’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선사했다. 예술 작품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서양미술사도 궁금해졌다. 때마침 <살롱 드 까뮤>에서 느슨한 미술책 읽기 모집 소식이 들려왔다. 서양미술사 책으로 진행된다니! 바로 신청했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고 나뭇가지마다 새잎들이 얼굴을 내밀던 봄날,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된 결코 느슨하지 않은 ‘느슨한 미술책 읽기’ 모임이 시작되었다. 매주 수요일 9시 온라인에서 만나 좋았던 문장을 낭독하기도 하고, 궁금한 건 묻기도 하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며 첫날의 낯섦을 조금씩 이겨나갔다. 1권 「인간다움의 순간들:르네상스부터 낭만주의까지」를 다 읽고, 2권 「위대한 고독의 순간들: 라파엘전파부터 추상미술까지」으로 독서 모임을 하던 중 책의 저자 이진숙 작가님과의 만남도 가졌다. 대부분 성장기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기에 여름방학 동안에는 잠시 쉼의 시간도 있었다. 2학기 개학과 함께 다시 시작된 책 모임은 어느새 3권 「치유와 연결의 순간들: 초현실주의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로 넘어갔다. 바로 오늘이 느슨한 미술책 읽기 모임의 첫 번째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날이다.

넓은 카페에 한 명 한 명 도착할 때마다 우리는 반가움의 인사를 나눴다. TV에서 보던 연예인을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 신기했다. 줌에서의 첫 만남처럼 낯 설 줄 알았는데, 서로 나누는 대화 속 목소리는 똑같았다. “이렇게 두꺼운 책 혼자라면 못 읽었을 거예요." “보통 서양미술사 책에서 보지 못한 이야기가 있어서 더 재미있었어요.” “어려운 부분은 건너뛰면서 읽었어요.”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내용도 책 읽기 모임을 통해서 이해도 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는 책들이 쌓이고, 카페 안에는 향긋한 커피 향과 우리들의 이야기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19세기 파리의 카페

‘카페 드 라 누벨 아탱’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예술가들과 압생트를 마셨던 에릭 사티(1866-1925)의 대표작 〈짐노페디〉를 들으며 고흐가 그린 〈밤의 카페테라스〉를 보았다. 카페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고흐와 함께 카페테라스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아있는 화가들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실제 〈밤의 카페테라스〉의 모델이 된 카페 ‘라 본 프랑케트(La Bonne Franquette)’에는 무명 시절을 보내던 인상파 화가들과 피카소가 자주 찾았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빛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모네와 르누아르가 생각하니 절로 미소 지어졌다.


‘라 본 프랑케트(La Bonne Franquette)’


프랑스 최초의 카페는 주인의 이름 딴 ‘르 프로코프’. 1686년에 문을 열어 지금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 카페 ‘르 프로코프’는 샹들리에와 대리석으로 된 탁자 등 화려한 인테리어, 널찍하고 환한 공간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이후 여러 카페들이 문을 열었고, 1884년 문을 연 ‘뒤 마고(Les Deux Magots)’는 지금까지도 유명하다. 카페 ‘뒤 마고(Les Deux Magots)’에는 프랑스 대표 시인 아르테르 랭보, 철학가 사르트르 등 여러 문인과 예술가가 찾았고, 그들은 이곳에서 작품 활동과 토론을 즐겼다. 헤밍웨이의 에세이집 〈파리에서 보낸 7년(A Moveable Feast)〉 속에 자주 등장하면서 더 유명해진 카페 ‘클로즈리 데 리라(Closerie des Lilas)’는 프랑스 시인 베를레 같은 문학인들에게 특히 사랑받았다. 이렇게 다양한 문학인과 예술가, 패션 디자이너 등이 밤낮없이 모였던 19세기 파리의 카페는 서로 영감을 주고받고, 때로는 위안을 찾았던 곳이었다.

‘밤이슬을 피할 돈이 없을 때, 너무나 취해 다른 곳에서 문전 박대당할 때 카페에서 안식처를 찾는다.’ 고흐가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을 통해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카페’라는 장소가 주는 따스함을 어렴풋이 느껴본다.



빈센트 반 고흐_밤의 카페테라스(Café Terrace at Night), 1888년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무인으로 운영되는 가게들이 많이 생겼다. 무인 반찬가게,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무인 문구점, 무인 빨래방, 무인 옷 가게에 이어 무인카페도 등장했다. 다들 잠든 캄캄한 밤 무인카페는 환하다. 누군가는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누군가는 내일 있을 과제를 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누군가는 창작의 고통에 둘러싸여 있을 수도 있다. 시끌벅적 ‘만남’의 장이 되었다가 ‘나’를 찾아 떠날 수 있는 나만의 아지트 '카페'는 내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왠지 바쁜 월요일,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어가 따스한 커피 한 잔과 책 한 권, 사티의 〈짐노페디〉를 함께 누려보고 싶다.


밤의 카페테라스(Café Terrace at Night)


파란색 물감이 밤하늘을 덮고

노란색 물감이 카페테라스를 비춘다.

고흐의 손끝에서 이어지는 붓질에

밤하늘의 별들이 이야기를 나눈다.

쌓여가는 색 위에

부드러운 음악이 얹어진다.

색이 내뿜는 이끌림에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고 사람들이 모인다.

누구나 품어주는

밤의 카페테라스. <자작시>




콘스탄틴 코로빈(Konstantin Korovin)_ 비시(Vichy), 1911 oil on canvas | 69×97cm


비오니까, 카페



에릭 사티(1866-1925)가 짐노페디 작곡 후 사람들이 곡 해석을 요구하자

"그저 햇살과 먼지 속에 오래된 가구처럼 앉아 있는 음악이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https://youtu.be/Y1vGBukbY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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