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샹 파이 (Bùi Xuân Phái, 1920-1988)_ 팟락 거리
작년 12월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역사동아리 "역동"에 참석했다. 한 달에 한 번 수원시립 선경도서관을 찾아 역사 관련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던 시간이 좋았다. 참석률이 떨어지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이렇게 긴 공백을 가질 줄은 몰랐다. 7월의 토론 책은 샘 밀러 작가의 [이주하는 인류] 6장부터 마지막까지였다. 두꺼웠다. 처음 보는 책이기에 앞부분부터 읽어나갔다. (장 별로 골라 읽는 것도 추천한다.) 인류의 초창기 네안데르탈인의 이주부터 시작된 글은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신화에 나오는 사람들 이야기까지 다양했고 나의 배경지식이 따라가기 힘들었다. 속도가 나질 않았다. 나중에 '아! 이 내용이 책에서 봤던 이야기구나!' 하며 생각주머니를 열어볼 날이 올 거라는 긍정 마인드를 가동하며 겨우겨우 읽었다. 드디어 6장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내가 아는 콜럼버스가 나왔다. 버지니아, 노예 등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배경지식들이 출동하니 내용이 눈에 쏙쏙 들어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7장까지 겨우 읽었다. 인류의 이주를 읽고 생각하다 보니 '나'와 '이주'가 연결 지어졌다. 곁에 둔 메모장에 '나의 이주' 네 글자를 썼다.
광주에서 태어나 28년을 살았던 나는 결혼이라는 인생의 전환점에 이주를 했다. 나의 이주 장소는 남편 직장이 있는 '수원'이 되었고, 2005년 12월 중순에 첫발을 디뎠다.
작가는 심리학자 그레그 메디슨의 의견을 빌려 이주민에 대해 정의를 내렸다. 이주민은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옮겨간 사람으로, 그가 경험하는 두 번째 문화는 첫 번째 문화와 크게 다르며,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도전 과정을 겪기에 충분한 기간 동안 머문다고 했다. 작가의 정의에 모두 부합되는 건 아니지만, 나 또한 수원에서 일상생활을 한 지 20년이 되었고, 낯선 사람들만 가득한 도시에서 적응하는 도전을 부단히 했다. 20년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수원에 가면 버스를 타고 수원 방방곡곡을 돌아다녀야지!' 야심 차게 시작된 나의 이주는 날씨에서 좌절을 겪었다. 수원의 겨울을 예상하지 못했다. 매년 겨울은 추웠지만, 수원의 겨울을 처음 경험한 2005년의 나는 남쪽에 있는 광주의 겨울이 포근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매일 새벽같이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남편만 바라보다 우울증이 올 것만 같았다. 결국 수원에 있는 유치원에 면접을 보러 가는 고향 동생을 따라나섰다. 나름 당당하게 품에 넣어 둔 이력서를 꺼내 원장님께 드리며 "주변에 교사 구하는 원장님께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마디를 건넸다. 운이 좋았다. 금방 연락이 왔고, 면접 날짜를 잡았다. 기분 좋게 면접을 보러 가려했는데 연락이 왔다. "결혼하셨네요. 죄송합니다. 미혼 선생님인 줄 알았어요." 면접이 취소되었다. 결혼이 취업하는데 걸림돌이 되다니! 하지만 얼마 후 면접을 취소하셨던 원장님께 다시 연락이 왔다. 흔쾌히 승낙하고 유치원을 찾았다. "한 번 보고 결정하세요!"라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다시 연락하셨단다. 이렇게 우여곡절 속에 수원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되었고, 나의 이주 첫 번째 도전이 되었다. 유치원 견학은 아주 특별했다. 외부 활동은 아이들에게도 즐겁지만 수원을 알고 싶은 나에게도 신나는 시간이었다. 정시 퇴근하는 유치원이 처음이었던 나는 퇴근 후 시간도 채워야 했다. 아주대 근처 평생교육원을 찾아 아동미술 자격과정을 수료했다. 컴퓨터 자격증도 땄다. 구연동화 대회도 나갔다. 유치원교사라는 내 직업이 정말 고마웠다. 분식가게 김밥으로 첫 번째 혼밥을 시작했다. 해가 지날수록 나의 혼밥은 베트남 쌀국수, 아웃백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이뤄질 만큼 당당해졌다. 하지만 나의 동선은 집과 유치원, 그리고 그 주변 정도였다. 바다가 보고 싶어 수원역에서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오이도를 향했던 날도 있었다. 집에서 멀어지는 만큼 내 심장 박동 수는 더 커지고 빨라졌다. 결국 몇 정거장 못 가서 회귀했다. 첫째 아이 출산과 함께 '원감 선생님'이라는 내 직업을 내려놓았고, 나의 이주 두 번째 도전이 시작되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와 함께 경험할 수 있는 수원은 직장 다닐 때보다 반경이 넓어졌다. 하지만 곧 아이들을 데리고 유치원 출근을 시작했다. 다시 나의 동선은 집과 유치원, 수원을 향할 때 세웠던 계획은 점점 멀어져 갔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생 입학을 하던 3월, 난 다시 심플하게 '엄마'로 돌아왔다. 조금 움직여볼까? 할 무렵 코로나 팬데믹으로 나의 생활 반경은 극도로 좁혀졌다. 2023년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학교에 등교하면서 나도 세상으로 나아갔다. 나의 이주 세 번째 도전이 시작되었다. 가까운 도서관에서 점차 버스를 타고 30분 이상 걸리는 도서관까지 이동했다. 편도 2시간을 잡고 이동해야 하는 경기도 미술관도 갔다. 화성시에 위치한 동양 초등학교도 갔다. 예술의 전당, 국립현대미술관, 코엑스 등 지하철을 타고 서울도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점점 많아진다는 생각에 자존감도 올라갔다. 다음 해 2024년 신기한 일들이 펼쳐졌다. 나의 이주 네 번째 도전이 시작됐다. 나의 이주 만 19년 차에 접어들어 서며 수원을 누비기 시작했다. '버스를 타고 수원 방방곡곡을 돌아다녀야지!'마음속에 품고 있던 계획이 현실이 된 것이다. 도도한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수원시 교육브랜드 "청개구리 스펙"의 청개구리 교실 문화 예술 강사로 버스를 타고 수원 곳곳의 초등학교를 찾았다. 짐이 무거우면 어떠하랴, 아침잠이 부족하면 어떠하랴! 뚜벅이 강사였던 나는 버스를 타고 다니며 수원을 탐험했다. 수없이 수원의 문화유산인 '수원화성'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수원의 모든 것들이 자랑스러워졌다. 보는 것만으로 뿌듯해졌다. 자꾸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아이들에게 수원 문화를 알리며 나도 수원 문화에 스며들었다.
2시간 역사동아리 시간을 알차게 마무리 짓고, 다음 일정을 위해 도서관 후문으로 향했다. 처음 가보는 골목길에 설레었다. 이 길은 어디와 맞닿을까? 수원의 구도심 골목길에 내 마음은 어느새 파아란 하늘과 뭉게구름만큼 커져갔다. 나의 '둘레둘레'가 발동됐다. 좁고 비탈진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조금 더 넓은 길이 나왔다. 왼쪽으로 몸을 돌리자 화서문이 보였다. 화서문을 보자 동공이 커지고, 입이 벌어졌다. 무조건반사처럼 사진을 찍었다. 서울에 갈 때마다 높고 멋진 건물을 위아래로 바라보며 "우와!" 하며 흥분했던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길 안내를 해 주시던 역사동아리분은 사진을 찍어대는 나를 바라보시며 웃으셨다. 태어나서 자란 터라 감흥이 없다고 하셨지만, 수원 화성에 대한 수원시민의 자긍심은 느껴졌다. 가까이 다가가자 200년 이상의 묵직한 기운이 느껴졌다. 1789년(정조 13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1796년(정조 20년)에 완공된 수원화성은 노송처럼 기나긴 세월을 묵묵히 서있었다. 나의 이주 만 20년 차인 2025년, 이제야 난 "수원 사람"이 되었다. 수원화성이 품고, 자연이 품은 수원의 시민이 된 것이다. 이쯤 되면 이주 성공 아닐까? 누군가 이주를 한다면, 긴 시간이 들지만 그 시간들이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여 결국 적응할 거라고 응원해 주고 싶다. 나의 뿌리를 마음에 심고, 새로운 곳의 문화가 내 안에 스며들며 가지처럼 뻗어나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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