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샹 파이 Bui Xuan Phai <Phat loc alley>
동네
평일 오전
베트남의 박수근이라는 ‘부 샹 파이’. 그의 초기 작품은 50~70년대 하노이의 모습을 묘사한다. 하노이 거리를 그린 작품이 여러 점 있다. 그의 작품 중 <Phat loc alley (팟락 거리)> 그림을 자세히 보며 글을 써본다. 고동색 갈색 나무색 계열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 중 이 그림에 눈길이 갔다. 모습이 매우 다르지 않은 고동색 지붕의 집들이 어깨동무하듯 있다. 그림의 집들 모두 출입문을 활짝 열어둔 것 같다. 아이들의 등원을 마친 평일 오전 10시쯤 같다. 남자들은 일터로 출근하고 아이들은 등교했다. 엄마들은 현관문을 열고 주말의 바빴던 공기를 환기한다. 예쁜 옷을 차려입고 몇 달 전 선물 받은 빨간 가방도 들고 어디론가 간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내 모습 같다. 여자에게 예쁜 옷이란 기분 전환이 돼서 행복해진다. 거기에 몸매를 가꾸었다면 옷이 더 돋보이고 뿌듯하다.
옷을 한동안 꾸준히 사 모았다. 간소하게 입던 지난날들이 무색하게 20대 초반도 아닌 내가 30대 후반에 늦게 옷에 빠져들었다. 나름 몸매를 신경 쓰던 날들이 지나고 살집이 늘어나니, 옷태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날씬해 보이는 옷, 나이에 맞는 우아한 옷, 남들 앞에서 서야 하는 직업이니 단정한 옷, 나만의 분위기를 잘 배합한 옷. 스타일에 맞게 갖춰야 하는 것들이 늘어났다. 그만한 소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는 써도 괜찮은 예산 안이었지만 패션이라는 두 글자를 따라가려니 역시 드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결국 같은 옷을 입어도 날씬한 사람이 입는 것과 아닌 것은 달랐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 작년에는 9킬로를 감량해서 자신이 있었다. 원래 먹는 양에서 조금 줄이고 간헐적 단식을 하면 가능했다. 물론 운동도 자주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3개월이 지나도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다. 정신적으로 나와의 싸움하던 터라 걷기만을 중점적으로 했던 것 같다. 식단을 신경 쓰지 못한 게 실패의 원인 같았다. 그저 먹던 양을 줄인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등원시키는 한 아이엄마가 10킬로를 운동과 식단으로 했다는 사실을 듣고 그제야 바른 식단을 잡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밀가루와 흰쌀 같은 정제 탄수화물이 범벅된 내 식단을 바꿀 마음을 그제야 먹게 됐다. ‘이왕 하는 운동 아깝지 않게 해 보자.’라는 마음을 먹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평일 오전 8시 40분 매일 운동하러 가는 루틴을 만들었다. 하기 싫으면 가지 않는 날을 따로 만든 것도 실패의 원인이라서 ‘10분이라도 걷는다.’라는 생각으로 가니 매일 가는 것이 가능했다.
이웃과의 거리
부 샹 파이 <Phat loc alley> 그림에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만큼 이웃과의 거리를 신경 쓰며 살아야 하는 고충이 느껴진다. 몇 달 전 등원 버스를 기다리다가 같이 아이에게 사건이 있었다. 처음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라 적잖이 당황했다. 발길질한 아이의 엄마는 옆 사람과 대화하느라 상황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아이를 잡고 이야기를 하나 싶었지만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한 듯 옆 사람과 학원 이야기를 오갔다. 아이가 괜찮은지 미안하다는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황당함과 이상한 기분이 휘감았다.
당황한 아이의 눈동자가 겁에 질려있다. 아이 운동학원을 등록했다. 이 계기로 아이 심신을 단련해야지 생각했다. 금요일 벌어진 일이다 보니 3일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몇 년 동안 무언가 일이 생기면 피하던 내가 아이를 낳고 아이 문제가 생기니 ‘더 이상 피할 곳 없다.’ 여겨졌다. 등원 길에 잠시 따로 불러내서 이야기하자 했다. 나로서는 큰 결심이었다. 이웃이 사람과 이런 불편한 이야기를 한 후가 걱정되긴 했지만 여기서 말해두지 않으면 앞으로 또 일어날 수 있는 일 같았다.
그 뒤로 등원 때 엄마들 모두에게 인사하긴 했다. 잘 못 느낀 것이면 좋겠지만, 그분은 나를 볼 때 얼굴이 굳었다. 수개월이 지나도 인사도 즐겁기 어려운 사이. 아침마다 어색함이 흐르는 분위기가 불편했다. 가끔은 다른 곳으로 등원하기도 했다. 아이는 잘못할 수 있기에 때린 형을 미워하지 않는다. 어색한 침묵의 시간. 내가 그날 따로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분과의 거리는 어색하지 않았을까. 가끔 생각하다가도 ‘그땐 그것이 최선이었다.’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공동체 삶
인간은 무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자유로움을 찾기까지 일정 기간을 버텨야 한다. 그 기간을 잘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가까운 사람을 제한해 만날 필요가 있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모든 이와 관계를 짓거나, ‘나는 누구와도 잘 지낸다.’라는 오만으로 과한 인간관계를 하면 그에 따른 감수 해야 하는 것이 찾아오는 법이다. 공동체에서 잘 살아남기 위해서는 담장 너머 세상에 크게 관심도 주고받는 것을 삼갈 필요가 있다. 내 안의 문제를 마주하기도 바쁜 삶이다. 글을 읽고 쓰며, 운동하고, 식단을 작성하고, 아이를 키우고, 남편을 응원해 주기로도 내 생활은 매우 바쁘다. 앞으로의 인간관계도 상처받지 않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나에게 집중한다.
식단과 운동만으로 3kg 빠졌다. 그야말로 정체기였는데, 운동과 식단을 공부하고 탐구하는 시간이 헛되지 않아 기쁘다. 야식을 즐기던 삶에서 이른 잠을 청하는 지혜로움과 바쁜 시간 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던 게으른 식습관에서 ‘새벽 배송’으로 도착한 달걀과 고구마를 찌는 것으로 시작하는 부지런한 아침. 루틴이 되면 딱히 힘든 일도 아니다. 매일 설렘으로 시작되는 아침이 좋다.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오늘이 감사하다. 시간이 흘러 어떤 형태로든 서로 풀리길 바란다.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이기에 그것 또한 이유라면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