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엔 한적한 주택가에 몇몇 여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자전거인지 바퀴달린 탈 것이 보이는데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여인들만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처음 큰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을 때가 18개월무렵이었다. 남편과 맞벌이를 하고 싶었다. 아이가 없었다면 우리끼리 사는 것이야 어디에 살던, 무얼 먹던 굶던 상관없었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고 지켜야 할 너무나 소중한 것이 생기자 입하나만 늘어난 것이 아이었다. 물론 밥은 못 먹는 입이었지만 말이다. 예쁘게 입히고 싶고 좋은 것 먹이고 싶고 최신 장난감과 책도 사주고 싶었다. 그런 부모마음을 이용한 사기도 당했다.
보안이 잘 되지 않는 다세대 빌라에 살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누군가 현관문을 다급히 두드렸다. 문을 열었더니 어떤 여자분이 화장실 좀 쓸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나도 결혼전 학습지 교사일을 하던 때에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어 얼른 문을 열어 주었다. 그런데 화장실을 다녀온 후 아이가 예쁘다며 바운서에 앉아있는 갓난아이를 보고 자리를 잡은 여인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아이를 얼러주었다. 어느새 일행 한 명이 와서 아이에게 책을 보여주었다. 우리 큰아이는 어찌나 방긋방긋 잘 웃던지 책이 너무 재미있어 죽겠다는 투였다. 그 책만 있으면 애보기는 식은 죽 먹기 일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아이의 인지발달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분명했다. 출산한지 오래지 않아 집에만 있던 내게 현금은 없었고 그들은 금제품으로도 결제가 가능하다며 나를 꼬드겼다. 결혼 전 사모은 목걸이며 반지며 팔찌며 금장신구를 싹 다 챙겨드리고 추가로 카드로 28만원을 결제했다. 그 책은 헤밍웨이 자연관찰전집 80권이었다. 일행 한명이 새 책 한 질을 들고 들어와서 포장을 뜯고 박스는 버려주겠다며 들고 갔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당장 환불하라며 나를 다그쳤다. 다음 날 회사로 전화했지만 포장을 훼손했기에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남편과는 육아에 관한 가치관이 달라 종종 갈등의 씨앗이 되곤 한다.
우리끼리 살았다면 어떻게 살건, 무엇을 먹건 갈등이 될 것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 문제는 각자에게 너무나 소중했기에 양보할 수 없었다. 남편은 부부가 안정적인 울타리가 되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고 나는 그보다 더 정서적, 물질적 지원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우리가 충분히 부유하다면야 고민없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겠지만 정해진 수입에 끝없는 지출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둘 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고 아이가 잘 크길 바라는 마음도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