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는 골목길

하노이 한 그릇의 아침, 벽화 골목, 나무 같은 성향

by cantata
부샹파이.jpg 부 샹 파이_팟 락 거리_1985

하노이, 한 그릇의 아침

큰아이가 중학교 졸업을 하고 겨울 방학에 가족여행을 떠났다. 고등학교에 가면 입시전쟁에 마음의 여유로움을 즐기지 못할 걸 알았기에 3년을 잘 보내보자는 의미였다. 회사에 휴가를 내면 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겼던 신랑도 큰맘 먹고 시간을 냈다.

3박 5일, 베트남 하노이, 하롱베이를 도는 패키지였다. 패캐지를 선택한 이유는 짜놓은 일정에 편하게 버스로 다니며 가이드님의 이런저런 얘기를 듣는 것이 좋아서다. 이것이 패키지의 장점이라면 빡빡한 일정 속에 우리 가족 외에 여행객들과 조율해야 하는 옵션 선택이 단점이다.


우리 가족 외 세 팀의 사람들 중, 중년 남자 다섯이 여행 오신 분들이 기억이 난다. 보통 아이들 키워 두고 여자친구들끼리의 우정 여행은 종종 보았지만, 남자들끼리의 여행은 조금 의아했다. 그들은 굉장히 유쾌한 분들이셨고 짝이 맞지 않으면 돌아가며 혼자 탑승하기도 했다.

다만 내 기억 속 하노이는 그림에서처럼 한적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토바이 기름 냄새 그득한 매캐한 도시였다. 아침이면 오토바이 출근부대의 행렬이 철새 떼처럼 도로를 가득 메웠다. 그런 와중에도 창밖으로 맞은편 건물의 사람이 붐비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그 가게가 궁금해 마지막 날에 조식을 포기하고 길을 가로질러 건너갔더랬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쌀국수를 아침으로 먹는 베트남 사람들로 붐비는 가게였다. 그들 사이에서 할머니가 말아준 국수 한 그릇을 받아 들었다. 하루를 든든하게 시작하는 베트남 사람들에게서 고요함은 없었지만 그들의 힘이 느껴졌던 낯선 풍경의 아침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벽화 골목

‘벽화’ 하면 생각나는 곳들이 있다. 골목골목에 예쁜 그림이 그려진 벽화마을이다. 번화하기보다는 낙후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에 관광명소를 만들기 위해 조성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사는 가까이엔 행궁동이 있다. 서울 이화벽화마을, 부산 감천문화마을, 전주, 통영, 인천…… 모두 내 기억엔 여름휴가를 이용해 갔었기에 땀 흘리며 비탈길을 오르거나 계단을 올라야 하는 극기훈련 코스 같았다. 감상을 즐긴 다기보단 예쁜 사진 한 장 찍고 오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행궁동은 평지여서 접근성이 좋아 종종 가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행궁동은 골목골목 눈요깃거리나 맛집들 예쁜 카페도 많다. 그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테이스팅 뮤지엄’이라는 100년 된 한옥을 개조해 식당으로 만든 집이 있다.

파스타와 스테이크가 맛있다. 메뉴들 가운데 버섯을 넣은 크림소스 베이스에 소고기 스테이크가 올라간 ‘만조 머시룸 파스타’를 좋아한다. 여기서 만조(Manzo)는 이탈리아어로 소고기를 말한다. 한적한 골목 초입에 있는 식당. 식당 안팎은 천장을 받치는 장선(長線)들과 기둥들이 짙은 브라운색으로 묵직하고 안정감을 준다. 통창 옆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마당을 보며 어두운 조명 아래 식사를 한다. 그 시간은 도시 속 여유로움을 느끼는 일상의 호사다.

나무 같은 성향

그림을 보면 차분함이 떠오른다. 주된 색이 주는 분위기가 차분함인 것 같다. 지붕 색으로 쓰인 브라운은 가을의 느낌으로 나무와 땅을 대표하는 색이니만큼 자연 친화적인 색이다. 말없이 듣는 것에 집중하는 나의 모습 같다.

나는 가을에 태어났다. 사람은 성향이라는 것이 있다. 나를 보면 가을 성향의 사람들은 보통 변화를 선호하지 않고 익숙함과 일상을 중요시한다. 갑작스러운 변화보다는 지속 가능성과 일관성을 추구한다. 책임감 있고 믿음직하다. 내면에 E의 성향을 몇 퍼센트 더 가지고 있어 가끔 고개를 내밀지만, 대부분은 I의 성향에 가깝다. 느리지만 꾸준한 삶, 나무가 자라듯 깊이 쌓아가는 뿌리 깊은 관계를 좋아한다.


부 샹 파이의 그림을 마주하며 익숙함을 좋아하는 나, 뿌리 깊은 단단한 관계를 좋아하는 나, 조용히 성장하고 싶은 나와 함께 그림 속 골목을 조용히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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