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꾼 의사와 농사꾼 의사

아들아 농사꾼과 같은 의사가 되거라

by 고기완



의사는 두 종류가 있다. 장사꾼 의사 인가? 농사꾼 의사 인가?




의원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환자의 얼굴에는 늘 비슷한 표정이 있다. 어딘가 불편하고, 어딘가 불안하고, 어딘가 기대하는 표정이다. 그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종종 생각한다.


의사는 과연 무엇일까? 몸을 고치는 기술자인가, 아니면 사람을 돌보는 직업인 인가?


현대의 의료 환경은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모든 병의원들은 기업처럼 운영되고, 진료는 효율성과 수익 구조 속에서 계산된다. 진료 시간은 짧아지고 환자는 숫자로 관리된다. 모든 의료의 세계에 들어오면 누구나 한 번쯤 유혹을 받는다. 더 많은 검사, 더 많은 시술, 더 많은 매출. 그렇게 하면 병의원들은 성장하고 의사의 삶도 안정된다.


그래서 어떤 의사는 어느 순간 “의사”라기보다 “의료 사업가”가 된다. 환자를 만나기보다 시장을 분석하고, 치료보다 매출 그래프를 먼저 본다. 이런 의사에게 환자는 한 사람의 삶이 아니라 하나의 케이스, 혹은 하나의 매출 단위가 된다.


그들에게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환자에게 무엇이 필요한가?”가 아니라 “이 환자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가능한 치료가 많을수록 매출은 늘어난다. 불필요한 치료라는 개념은 점점 흐려진다. 환자의 몸은 어느새 경작지가 아니라 채굴지가 된다. 가능한 것을 최대한 꺼내는 곳. 그러나 세상에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환자를 바라보는 의사도 있다.


나는 그들을 <농부 같은 의사>라고 생각한다. 농부는 씨앗을 뿌리고 바로 수확을 기대하지 않는다. 흙을 보고, 계절을 보고, 비와 바람을 기다린다. 어떤 밭은 비옥하고 어떤 밭은 자갈과 모래 천지로 척박하다. 어떤 작물은 빨리 자라고 어떤 작물은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 농부는 자연을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는다. 대신 자랄 수 있는 주변 환경을 만든다. 우리의 몸도 자연과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진정성 있는 의사는 몸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 회복하도록 돕는 사람이다. 환자의 몸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고, 그 사람의 삶과 습관과 감정을 함께 본다.


어떤 환자는 약보다 잠이 필요하다. 어떤 환자는 침 치료보다 식생활 먹거리 습관이 먼저다. 어떤 환자는 추나 처방보다 따스한 위로가 필요하다. 이런 농사꾼 의사는 공격적인 치료를 서두르지 않는다. 그리고 환자에게 이렇게 말할 줄 안다. “지금 당장 큰 치료는 필요 없습니다.” “시간을 두고 몸을 농사짓듯이 만들어 봅시다.” 놀랍게도 이런 말은 병원 매출에는 그 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환자의 삶에는 큰 도움이 된다.

농부 같은 의사는 환자의 몸을 경작지처럼 바라본다. 잡초를 뽑고, 토양을 살리고, 천천히 균형을 회복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환자의 몸은 스스로 건강을 만들어낸다.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역사를 뒤 돌아보면 모두 위대한 의사 선배들은 대부분 농부에 가까웠다. 그들은 몸의 자연적인 회복력을 믿었고, 선배 의사들은 그 과정을 돕는 심부름꾼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의료가 시장 논리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의사는 점점 장사꾼이 되기 쉽다. 이것이 선악의 문제는 아니다. 현대 의료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 자신에게 중요한 질문은 계속 남는다. 나는 어떤 의사가 될 것인가?


환자를 매출로 계산하는 <장사꾼 의사>인가? 아니면 사람의 몸을 밭처럼 돌보는 <농사꾼 의사>인가. 농부는 조급하지 않다. 오늘 씨앗을 심고 내일 수확을 기대하지 않는다.


좋은 의사도 마찬가지다. 오늘 한 번의 진료로 모든 병을 고칠 수는 없다. 하지만 진심으로 환자의 몸을 이해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 그 몸은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의원을 나의 작은 밭 즉 경작지라고 생각한다.


의원에 들어오는 모든 환자들은 각자 다른 흙을 가진 밭이다. 어떤 밭은 지쳐 있고 어떤 밭은 메말라 있고 어떤 밭은 이미 너무 많은 화학 비료를 맞았다. 의사의 일은 그 밭에 또 다른 화학 비료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흙이 다시 숨 쉬게 만드는 것이다.


의사가 장사꾼이 되면 환자의 몸은 시장이 된다. 의사가 농부가 되면 환자의 몸은 자연이 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믿는다. 사람의 몸은 시장이 아니라 자연에 더 가깝다. 그래서 나는 농부의 마음으로 진심으로 환자의 몸밭에서 열심히 농사를 짓고자 한다. 태풍이 몰아치고 비바람이 불어도 나는 열심히 땀을 흘려 농사를 짓고자 한다. 피와 땀으로 최선을 다하는 농부의 마음은 성실히 경작을 하고 그 이후의 결과는 사람인지라 나는 그저 하늘에 맡기고 간절히 두 손 모아 환자의 몸이 완쾌되시게 기도 하고 싶다.




생전에 정성것 식물을 가꾸고 계신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원예학과 과수원예학 전공 동산 고광출교수(1934-2025)님이시다.


아버지께서는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항상 환자의 몸을 지극히 소중히 여기며 꾸준히 농사짓듯이 열심히 가꾸어야 한다.

말씀하셨다.


의사도 신이 아닌 이상 모든 환자를 고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내 마음 깊숙이 간직하며 농부의 마음으로 지극정성 환자 몸을 평생 살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