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병아리 한의사 시절을 생각하는 추억 품팔이

침쟁이가 되기까지

by 고기완

어느덧 임상의로 살아온 생활이 35년이나 지나간 긴 세월이지만 오늘 문득 햇병아리 한의사 시절이 생각난다.


처음 침을 잡았던 날을 아직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손끝이 떨렸다. 얇은 금속 바늘 하나가 사람의 몸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너무 나도 신기했고 그것이 무엇이기에 사람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가? 나 스스로 끊임없는 의심과 두려움과 기대감 속에 나의 마음이 매우 무겁게 다가왔다.


그날 이후,




나는 수없이 내 몸에 침을 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다. 경혈을 찾고, 각도를 재고, 교과서에서 본 그대로 따라 하려 했다. 하지만 막상 피부를 뚫는 순간, 머릿속의 한의학적 지식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남는 것은 오직 나의 감각뿐이었다. 깊이, 저항, 미세한 회오리 같은 울림들.




나는 그것을 알기 위해, 스스로를 가장 먼저 나를 실험 삼아 나의 첫 번째 환자로 삼았다.


한의사들이 침을 스스로에게 시술하는 AI 사진


하루에도 수십 번, 때로는 수백 번. 팔과 다리, 손등과 발등, 때로는 얼굴까지. 작은 점들이 늘어날수록, 혈관이 터지면서 피멍이 들고 손끝 발끝은 너무 나도 전기에 감전되듯이 아팠다. 하지만 내 몸에 침을 찌르면 찌를수록 두려움은 줄어들고 감각은 선명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찌른다’는 느낌보다, ‘들어간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피부를 지나, 근육의 결을 따라가며, 어느 지점에서 멈춰야 하는지. 책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지점이었다.


뜸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뜸을 뜰 때는, 그저 따뜻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내 피부 위에 올려보니, 그것은 단순한 온기가 아니었다. 열이 쌓이고, 퍼지고,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순간도 있었다. 나는 일부러 그 시간을 버텼다. 환자에게 “조금 뜨거울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기 전에, 그 ‘조금’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피부가 붉어지고, 살이 타 들어가며 화상을 입었다. 열이 깊숙이 스며드는 그 감각을 나는 잊지 않으려 했다. 고통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느껴보는 것. 그것이 누군가의 고통을 다루는 사람의 최소한의 태도라고 믿었다.


한약도 마찬가지였다. 쓴맛은 단순한 맛이 아니었다. 몸이 거부하는 신호이기도 하고, 때로는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이기도 했다. 나는 처방을 공부하면서, 가능한 한 많은 약을 직접 달여 마셨다. 어떤 약은 목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 속이 따뜻해졌고, 어떤 약은 끝까지 거부감이 남았다. 며칠을 복용했을 때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미묘한 차이를 기록했다.




효과를 ‘안다’는 것과 ‘겪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나는 늘 그 차이를 줄이고 싶었다.



주변에서는 가끔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 나는 명확한 답을 하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환자에게 들어가기 전에, 적어도 한 번은 나를 통과해야 한다는 생각. 누군가의 몸에 닿기 전에, 그 감각을 모른 채 다루고 싶지 않았다. 기나긴 그 시간들은 결코 쉽지 않았다.


몸은 늘 성하지 않았고, 손에는 작은 상처들이 사라질 날이 없었다. 때로는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닐까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진료실에 앉아 환자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어느 날, 한 환자가 말했다.

“선생님은 침을 놓을 때… 이상하게 덜 무서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래전 내 몸에 수없이 침을 놓던 밤들이 떠올랐다. 혼자 앉아, 작은 불빛 아래에서 손끝의 감각을 익히던 시간들. 나는 그때 깨달았다.




기술은 손에서 나오지만, 신뢰는 시간에서 나온다는 것을.



환자는 단순히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몸을 맡기러 온다. 그 신뢰 앞에서, 나는 늘 조심스러워진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매일매일 환자로부터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가끔은 다시 내 몸에 침을 놓고, 뜸을 뜨고, 약을 마신다. 예전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그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은 더 정교해졌지만,




내가 가장 붙잡고 싶은 것은 ‘처음의 마음’이다.



두려웠던 순간, 망설였던 손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넘어가며 쌓아온 감각들.

그것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완벽한 의사가 아니다. 아직도 부족하고, 여전히 배우고 있는 학생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침으로부터 느껴본 고통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내가 뜸으로부터 견뎌본 뜨거움을 가볍게 말하지 않는다.
내가 약을 삼켜본 쓴맛을 쉽게 권하지 않는다.


그 모든 시간들이 나를 조금 더 신중하게 만들었고, 조금 더 사람 쪽으로 기울게 만들었다.


오늘도 진료실에서 침을 든다. 그리고 아주 잠깐, 예전의 나를 떠올린다.

세월이 지나면서 의료장비는 계속 발전해 왔지만 옛날 그 침시술 하나로 어떻게든 좀더 낳은 치료법을 알아 내고자 한 우물을 파면서 나의 몸에 수천번 수만번씩 찌르면서 좋은 침처방을 알아내고자 노력했다.

수없이 스스로 내 몸을 찌르던 그 밤들을.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나는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조금은 덜 무겁지 않은 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혹시 진료를 보다가 내가 마지막 이세상을 떠나는 순간이 온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한의사의 삶이었을 것이고


세상은 나를 보고 울런지 모르지만

나는 세상을 웃으면서

가볍게 떠날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