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가운도, 교수 직함도 막지 못한 죽음의 파도

어머니와의 마지막 1년 6개월

by 고기완


1년 6개월, 어머니하고의 서글픈 마지막 이별 여행


어머니의 일생에 ‘마지막’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은 1년 6개월 전이었다. 어머니의 생명 시간은 모래시계 속 모래알처럼 속절없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생존시간 모래알갱이들은 우리 삼 형제에게 허락된 마지막 이별 여행의 남은 시간들이었다. 우리 가족에게 허락된 시간은 딱 그만큼이었다. 그날부터 시작된 어머니 하고의 ‘이별 여행’은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떠나는 한가하고 행복한 나들이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숨소리가 조금씩 잦아드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내야 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마지막 이별 동행여행이었다.


세상은 나를 불효자라 부를지 몰라도, 나는 어머니 앞에서 만큼은 무너지지 않는 강한 아들로 남고 싶었기에 어머니의 죽음이 한 걸음 한 걸음씩 다가올수록 나는 마음의 근육을 더 강하게 만들고자 몸부림치듯 무척이나 나 나름대로 애를 썼다. 어머니 하고의 투병 과정 중에 앞으로 있을 어머니의 그 죽음을 나는 절대로 절대로 내 스스로 받아 들일수가 없었다.

또한 너무 큰 슬픔에 잠겨 어머니하고 같이 있을 한정된 이 소중한 시간들을 눈물로 허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 속에 나의 오만한 다짐이었음을 알게 되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죽음을 나 자신이 미리 연습한다고 해서 그 괴로운 마음의 무게를 가벼워지게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어리석게도 미리 연습하고 연습하고자 했다. 어머니의 영정 사진 앞에서 터져 나올 울음을 미리 삼키는 연습 말이다.


"울지 말아야지, 끝까지 담담하게 어머니를 보내드려야지." 그것이 불효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예의라 믿었다. 울음 섞인 얼굴로 살아생전에 어머니를 불안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이 한 뼘씩 한 뼘씩 다가올수록, 내 의지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슬픔을 미리 나누어 앓는다고 해서 마지막 순간의 고통이 희석되는 것은 정말 아니었다.



의학이라는 이름의 오만한 방패


"어머니, 조금만 더..."


우리 형제들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이른바 ‘의료 전문가’ 형제들이다. 쌍둥이 동생들은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이고, 큰아들인 나 역시 국내 통합의학 1호 박사이자 한의학 박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평생을 환자들의 생명을 돌보며 살아왔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최고의 의학 지식이 우리 형제들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었다. 우리 형제 들은 서로의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어떤 약을 써야 할지, 어떤 처치가 필요한지. 하지만 정작 우리 형제를 키워낸 어머니의 생명이 점점 꺼져갈 때, 그 수천 권의 의학 서적은 단 한 줄의 해답도 내놓지 못했다.


전통 의학과 현대 의학, 그리고 통합 의학까지 아니 이 세상의 지구 끝에 있는 어떤 방법이라도 살아생전 어머니를 위해서 라면 어떤 방법이든 찾아내야 하고자 했고 우리 삼 형제들의 의학지식을 합치면 세상에 못 고칠 병이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병색이 짙어질수록, 우리가 쌓아 올린 거창한 학위와 지식은 한낱 종잇장보다 못한 쓰잘 때 없는 먼지 쓰레기에 불과했다.


나는 수만 권의 의학 서적 속에서도 어머니의 생명을 단 하루 더 연장할 비책을 찾을 수 없었다. 최첨단으로 무장한 현대 최첨단 의학의 정점에 서 있는 의대 교수들인 나의 동생들도, 인체의 전일성을 논하던 한의학박사인 나도,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섭리 앞에서는 그저 길 잃은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우리 삼 형제들은 서로의 눈을 피하며 침묵했다. 의학은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일 뿐, 죽음을 거스르는 마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통감하는 순간이었다.


"형님,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동생들의 떨리는 목소리가 비수처럼 내 마음에 꽂혔다. 어머니의 작아진 손목 위로 흐르는 죽음의 시간을 단 1초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섭리 앞에서 인간이 쌓아 올린 지식은 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죽음 앞에는 박사도, 교수도 없었다



우리 삼 형제는 어머니를 모시고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그것은 물리적인 이동이 아니라, 한 인간의 생애를 갈무리하는 영혼의 동행이었다. 전문 지식으로 무장했던 아들들은 어느덧 의대 교수 직함을 벗어던지고, 그저 어머니의 야윈 손을 잡는 평범한 자식으로 돌아왔다.


누구도 죽음 앞에서는 예외가 없었다. 박사 학위도, 교수라는 직함도 어머니의 가쁜 숨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어머니의 곁을 지키며,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엄마 사랑해 " 그리고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요 엄마"라는 말을 나지막이 읊조리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어머니의 침상 곁에서 무릎을 꿇었다. 평소 환자들에게는 "이것이 최선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던 그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어머니의 생명을 구하지 못한 채, 우리는 그저 죽음이라는 절대자 앞에 무릎 꿇은 미천한 인간일 뿐이었다. 그 어느 누구도 죽음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한의학 나아가 통합의학의 신비를 믿었던 나조차도, 생명의 불꽃이 사그라드는 지점에서는 기적을 구걸하는 나약한 어린 자식에 불과했다.


어머니의 눈동자에서 생기가 빠져나갈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의학은 삶을 조금 연장할 수는 있어도, 영혼의 떠남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 형제들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최고라 자부해 왔지만, 정작 어머니를 위해서는 '최고'의 효도도, '최고'의 치료도 해드리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을 쳤다.


죄송함과 안타까움, 남겨진 자의 형벌



어머니가 떠나신 빈자리에는 차가운 적막만이 남았다. 미리 울지 않으려 애썼던 그 노력은 무색하게도, 영정 사진 속 활짝 웃고 계신 어머니를 뵙는 순간 참았던 제방이 무너져 내렸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그 많은 공부를 하고도 당신 하나 살려내지 못한 못난 아들을 용서하십시오."


안타까움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의학적 판단이 아니라 그저 아들로서 더 많이 안아드렸어야 했다. 과학적 시스템과 객관적 데이터로 어머니를 분석할 것이 아니라, 따뜻한 온기로 그 외로움을 채워드렸어야 했다. 박사라는 권위 뒤에 숨어 어머니의 고통을 객관화하려 했던 나의 현명하지 못한 부족함이 떠올라 밤잠을 설쳤다.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마지막 처방



어머니가 떠나신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죄송함과 안타까움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때 그 처방 대신 손 한 번 더 잡아드릴걸' 하는 후회는 지식의 깊이와 상관없이 공평하게 찾아온다.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인간의 생명은 시스템으로 설명될 수 있는 기계가 아니며, 죽음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삶의 마침표라는 것을.


어머니, 비록 불효자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지만, 우리가 함께한 그 시간은 제 생애 가장 고귀한 의학 수업이었다.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의 몸을 제물 삼아 아들 삼 형제에게 큰 가르침을 주셨다. 생명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임을, 그리고 의사의 최첨단 치료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임을 몸소 보여주셨다.


비록 불효자는 지금도 안타까움에 눈물짓지만, 어머니와 함께한 1년 6개월의 여행은 나의 생애 가장 아프고도 고귀한 어머니하고의 이별여행 시간이었다. 이제 박사 가운도, 교수 직함도 내려놓고 오직 아들의 마음으로 어머니를 추억하려 한다.



어머니, 부디 그곳에서는 삼 형제 아들의 의학적 처방 없이도 아프지 말고 평안히 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