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형제가 잡은 손과 발, 그리고 따뜻한 작별
유전이라는 이름의 가장 정직한 초상화
매일 아침 욕실 거울 앞에 서면, 나는 낯선 동시에 지독하게 익숙한 한 남자를 마주한다.
언제부터였을까. 이마 양끝이 서서히 뒤로 밀려나며 선명한 M자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것을 단순한 탈모라 부르지 못했다. 그것은 아버지가 내 몸에 새겨놓고 가신 당신 아들이라는 인감도장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깊게 파인 미간의 주름, 눈가에 자글자글하게 자리 잡은 세월의 흔적들. 남들은 그것을 노화라 부르지만 나는 그 변화 속에서 매일 아침 돌아가신 아버지를 거울 속에서 <부활>시킨다.
전화를 받을 때면 사람들은 가끔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어쩜 너는 그렇게 네 아버지 목소리랑 똑같니." 그럴 때마다 나는 목구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울컥함을 스스로 삼킨다.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나의 성대를 빌려 여전히 세상에 안부를 묻고 계신 듯하다. 주변 지인들은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입을 모은다. "자네를 보면 교수님이 살아계신 것 같아." 그 말은 내게 위로인 동시에 아픈 가시가 된다. 나는 아버지의 지성은 닮지 못했으면서, 그저 아버지가 남긴 껍데기만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못난 아들이라는 자책 때문이다.
상아탑의 거인, 지성의 무게를 내려놓다
나의 아버지는 평생을 '최고의 지성'이라는 성벽 안에서 사셨던 분이다. 서울대학교 교수라는 직함은 아버지에게 자부심인 동시에 한순간도 흐트러짐을 허용하지 않는 굴레였다. 아버지는 늘 정갈하게 빗어 넘긴 머리와 논리 정연한 말투로 세상을 호령하셨다. 자식들에게도 아버지는 우러러봐야 할 거대한 산이셨고, 결코 넘볼 수 없는 존재셨다.
그런 아버지의 머릿속에서 기억들이 하나둘 지워지기 시작했을 때, 우리 삼 형제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평생을 논리와 최고의 지식으로 구축해 온 당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는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아버지는 '치매'라는 불청객을 가장 평화로운 방식으로 맞이하셨다. 사람들은 그것을 '착한 치매'라고 불렀다.
그 존경받고 똑똑하셨던 서울대학교 교수 직함은 온데간데없으시고, 그 자리에는 갓 태어난 아이처럼 맑은 눈을 가진 노신사가 남았다. 아버지는 더 이상 복잡한 학설을 논하지 않으셨고, 세상의 복잡한 걱정거리에 귀 기울이시지도 않으셨다. 그저 순진한 어린아이처럼 평온하게 잠만 주무셨고, 깨어 있을 때는 천진난만한 미소로 어린아이처럼 우리를 바라보셨다.
마지막 행복한 치매, 그리고 '불효자'의 눈물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근심 걱정 없는 아이의 얼굴로 사셨다. 어쩌면 신이, 평생을 지성의 무게를 짊어지고 치열하게 사셨던 당신에게 주신 마지막 휴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회한도, 미래의 불안도 없이 오직 현재의 평온함 속에 머무는 상태. 아버지는 그렇게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기억 상실을 겪으며 천천히 이별을 준비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나는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고통스러운 투병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아이처럼 웃으시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꾸만 이기적인 슬픔이 차올랐다. "아버지, 그 대단하셨던 지성으로 평생 쌓아 올리신 것들을 정녕 기억하지 못하시는 건가요? 강단을 가득 메우던 강의 목소리도, 밤을 새워 붙잡으시던 논문의 문장들도, 후학들에게 건네시던 그 단단한 가르침도?"
아무것도 모른 채 평화롭게 잠든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나는 비로소 한 가지를 깨달았다. 당신이 평생을 바쳐 일구신 학문의 세계가, 그 방대한 사유의 지도가, 이제 당신 안에서 천천히 지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깊이 사무쳤다. 서울대학교 강단에서 수십 년을 호령하셨던 그 정신이, 수많은 제자들의 이름과 논문 제목과 학회의 기억들이, 아버지의 눈빛에서 하나씩 꺼져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고통 없는 이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지켜보는 자식에게는 또 다른 종류의 애도였다. 당신의 평안을 축복하면서도, 그 빛나던 지성의 흔적만은 끝까지 남아 있기를 바랐던 나의 욕심이 너무 나도 죄스러웠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직감하면서도, 그 마지막 사유의 불꽃만은 꺼지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다. 학자로 사신 당신의 삶이 당신 자신에게만큼은 끝까지 의미로 남아 있기를.
삼 형제가 잡은 손과 발, 따뜻한 작별
마침내 아버지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그날, 우리 삼 형제는 아버지께서 누워 계신 요양원 침대 곁으로 모두 모였다. 평생 엄격하셨던 아버지셨지만, 마지막 모습은 너무나 작고 가냘프셨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아버지의 양손과 다리를 각자 나누어 잡았다. 쌍둥이 동생들은 아버지의 주름진 오른손을, 한 명은 왼손을, 그리고 장남인 나는 평생 세상을 지탱해 온 아버지의 마른 양발을 감싸 쥐었다. 그 온기야말로 우리가 아버지에게 전할 수 있는 마지막 언어였다.
"아버지, 고생하셨어요. 이제는 무거운 책들도, 교수라는 이름도 다 내려놓고 편히 쉬세요."
아버지는 아무 대답이 없으셨지만, 그 표정만은 여전히 아이처럼 맑고 평온했다. 마치 좋은 꿈을 꾸다가 잠시 다른 방으로 건너가시는 분처럼, 그렇게 고요하게 생의 문을 닫으셨다.
에필로그: 내 안에서 살아가는 당신
아버지가 떠나신 후, 나는 더 자주 거울을 본다. M자로 깊게 파인 이마는 이제 흉한 탈모가 아니라, 아버지가 내게 남긴 마지막 편지처럼 느껴진다. 거울 속의 내가 짓는 웃음 속에서 나는 아버지의 미소를 찾고, 내가 내뱉는 목소리에서 아버지의 여운을 듣는다. 아버지는 지성을 잃고 어린아이가 되어 떠나셨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착한 치매' 덕분에 우리는 아버지의 가장 순수한 본모습을 만날 수 있었고 서울대학교 교수의 권위라는 외투를 벗어던진 인간 본연의 따스함 말이다.
나는 오늘도 거울을 보며 다짐한다. 내 얼굴에 새겨진 아버지의 흔적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고. 당신의 목소리를 닮은 나의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도움이 되는 말을 내뱉겠다고. 비록 울지 않으려 애쓰는 못난 아들이지만, 내 몸 구석구석에 남겨진 당신이 남긴 유산을 소중히 품고 살아가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