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치료와 돈받은 치료의 차이

의료봉사와 개업의 진료

by 고기완


기적은 공짜침법으로 무료 진료소에서 일어났다



한의과대학 학부 시절, 여름 방학이면 동문 동아리 선후배들과 침통 하나를 메고 이름 모를 시골 마을을 찾곤 했다. 흙먼지 날리는 마을회관에 짐을 풀고 나면, 동네 어르신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에어컨도 없는 찜통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며 <공짜침>을 놓았지만, 그때의 기억은 늘 눈부신 금빛으로 남아 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변변한 장비도, 세련된 진료실도 없던 그 시절, 내가 놓은 <공짜침> 한 대에 할머니들은 "아이고, 이제 살 것 같네!", "젊은 선생이 용하네!"라며 환호하셨다. 사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나의 침치료 기술은 대단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환자들은 침을 맞기 전부터 나을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고, 치료가 끝나면 내 손을 맞잡으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곳에서 의료행위는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가 아닌, '마음과 마음의 교류'였다. 내가 드린 것은 서툰 진료였지만, 내가 받은 것은 그보다 훨씬 큰 존경과 감사였다. 그때 나는 믿었다. 의술이란 이렇게 환자와 의사가 한마음으로 빚어내는 예술이라고 말이다.


단돈 천 원이 바꾼 풍경

세월이 흘러 내 이름을 건 한의원을 열고, 정식으로 환자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문밖의 세상은 봉사 현장과는 전혀 다른 물리 법칙이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진료비를 받기 시작한 순간부터 '기적'은 자취를 감췄다. 의료 보험이 적용되어 환자가 내는 돈은 고작 천 원 남짓한 푼돈일 때도 있었지만, 그 '천 원'의 장벽은 생각보다 매우 높고 단단했다. 돈을 지불하는 순간, 환자는 '은혜를 입는 자'에서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로 위치를 옮겼다.


"돈을 냈는데 왜 금방 안 나아요?", "저번보다 침이 더 아픈 것 같은데?", "여기는 왜 이렇게 불친절해?"

봉사 현장에서 듣던 찬사는 없어지고 날카로운 불평과 요구로 바뀌었다. 치료 효과가 조금만 더디면 항의가 들어왔고, 나의 의술은 감사함의 대상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상품'으로 평가받았다. 단돈 천 원을 지불하면서도 환자들은 그 열 배, 백 배의 가치를 즉각적으로 보상받길 원했다. 인간적인 교감보다는 '비용 대비 효율'이 우선되는 차가운 거래의 현장이었다.


'환자'와 '고객'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개업의로서 느끼는 가장 큰 피로감은 육체적인 고단함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환자'를 '고객'으로 대해야만 하는 괴리감에서 온다. 환자가 진료비를 내는 순간, 그와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계약서가 써진다. 그는 돈을 지불했으므로 나의 시간과 기술, 그리고 확실한 결과물(치료)을 독촉할 권리를 갖으며 의사는 더 이상 인술을 베푸는 성인이 아니라,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면 언제든 '환불'이나 '평가'의 대상이 되는 서비스 제공자가 된다.



돈은 참으로 묘한 힘을 가졌다. 그것은 사람을 솔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독하게 이기적으로 만든다. 치료비 이상의 것을 뽑아내야 한다는 인간의 보상심리는 의사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서슬 퍼런 감시가 된다. 따뜻한 격려 한마디가 오가던 진료실은 어느덧 오차 없는 결과를 내놓아야 하는 공장처럼 변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침통을 놓지 못하는가

임상 35년 동안 수많은 환자의 불평과 항의를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가끔은 '그냥 아무 조건 없이 공짜침을 놓던 그때가 좋았지' 하며 씁쓸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거래가 시작된 진료실에서 의사는 늘 을(乙)의 마음으로 환자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자 환자들이 그토록 예민하게 구는 이유는, 어쩌면 그들에게 그 돈이 단순한 액수 이상의 '절실함'이기 때문은 아닐까? 자신의 고통을 돈으로라도 해결하고 싶은 간절함, 그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얻고 싶은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갈망 말이다.


무료 진료의 감사가 '순수한 기쁨'이었다면, 유료 진료의 불평은 '처절한 기대'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거래의 비정함 속에서도 내가 찾아야 할 것은, 그 차가운 화폐의 교환 너머에 숨겨진 환자의 불안을 읽어내는 일일 것이다.


다시, 인술의 길을 묻다

오늘도 진료실 문이 열리고 환자가 들어온다. 환자들은 접수처에 지갑을 열고 돈을 치료비로 지불하고 나는 다시 '거래'의 대상이 될 준비를 한다. 물론 여전히 환자들의 불평은 여전히 아프고, 또한 환자들의 과도한 요구는 무척이나 힘겹다. 하지만 개업의로서의 삶이란, 그 차가운 거래 속에 <따뜻한 인술 한 조각>을 몰래 끼워 넣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돈이 오가는 삭막한 테이블 위에서도, 환자의 눈을 한 번 더 맞추고 그의 아픔을 진심으로 긍정하는 순간, 그 '거래'는 다시 '치유'로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의료봉사 현장의 기적은 이제 없지만, 매일의 고단한 진료실 속에서 '신뢰'라는 이름의 새로운 기적을 일궈보려 한다.

천 원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그 무게만큼의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는 것. 그것이 35년 차 임상의가 가야 할, 조금은 외롭지만 숭고한 길임을 이제야 철이 들어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