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는 끝이 아니고 AI 시대엔 시작조차 다르다

학위의 무게를 내려놓으며 다시 배움을 묻다

by 고기완


나는 석사 학위가 셋이고, 박사 학위가 둘이다.

이렇게 쓰고 나면 스스로도 웃음이 난다. 남들보다 훨씬 오래 공부했고, 훨씬 많은 시간을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진료실과 병원 그리고 도서관과 연구실을 오고 가며 그 세월 동안 나는 대단한 무언가를 완성하고 있다고 스스로 믿었다. 굳건히 믿고 있던 나의 그 신뢰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긴 건 아버지의 말씀 때문이었다.


"아들아, 박사학위 취득은 학문의 완성이 아니다. 지금부터 네가 스스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연구의 시작점일 뿐이다."


서울대학교 교수이셨던 아버지는 평생을 학문 앞에 겸손하신 분이셨다. 박사 학위증에 도장이 찍히던 그날, 나는 뭔가를 다 이룬 듯한 자신감과 포만감에 젖어 있었는데, 아버지는 오히려 그날을 '출발점'이라고 부르셨다. 그 말이 나는 그때 다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다. 박사 공부를 이만큼 했으면 됐지, 언제까지 공부만 해야 하나 싶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아버지의 말씀은 옳았다. 학위는 어떤 앎의 완성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자격증에 가까웠다. 박사 과정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지식의 총합이 아니라, 무지를 직면하는 방법이다. 내가 모른다는 걸 정확하게 아는 것, 그게 박사 이후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또 다른 당혹감 앞에 서 있다. AI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지식을 다루는 방식이 통째로 뒤집히고 있다. 내가 박사 논문을 쓰던 시절, 문헌을 찾고 분류하고 종합하는 능력은 연구자의 핵심 역량이었다. 밤새 데이터베이스를 뒤지고, 수백 편의 논문을 손으로 정리하고, 각주 하나 달기 위해 원문을 직접 확인하는 일들. 그 모든 수고로움이 '학문하는 몸'을 만들어간다고 믿었다.


지금 AI는 그 수고로움의 상당 부분을 몇 초 만에 해치운다. 문헌 요약, 논리 구조 정리, 초고 작성, 심지어 반론 예측까지. 내가 두 번의 박사 과정을 통해 연마했다고 믿었던 기술들이, 도구 앞에서 급격하게 낡은 것이 되어간다. 처음엔 불편했고 그다음엔 조금 무서웠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흥미롭다.


아버지의 말씀을 다시 꺼내본다. <박사는 시작점>이다. 그 말이 이제는 다른 결로 읽힌다. 학위가 출발점이라면, 그 출발점의 의미는 시대마다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 나의 아버지 세대에게 그것은 자기 방법론을 갖추는 것이었지만 지금 현재 나에게는 학제를 넘나드는 유연함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AI 시대의 출발점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이 질문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정보를 암기하고 종합하는 능력이 아니라,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를 아는 능력. AI는 방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만, 올바른 질문은 여전히 인간이 만들어야 하며 좋은 질문은 지식의 양에서 나오지 않으며 도리어 그것은 경험에서, 실패에서, 오랜 사유의 흔적에서 나온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 학위들을 다시 본다. 다섯 개의 학위가 나에게 남긴 것은 특정 지식이 아니다. 모르는 것을 오래 들여다보는 인내심, 다른 분야의 언어로 생각하는 습관, 틀렸을 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는 근육. 이것들은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AI 시대일수록 더 귀해지는 것들이다.


나에게 새로운 공부법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하며 더 이상 '많이 아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없다. AI 시대의 학습은 도구와 협력하는 방식, 내 사유와 기계의 처리 능력을 어떻게 연결할지를 배우는 것이며 그 무엇보다, 도구가 내놓은 답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기르는 것이다.


과거의 박사학위가 '무의미'해졌다는 말을 나는 온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그 의미의 내용이 달라졌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박사 과정에서 쌓은 것들은 AI를 상대하는 지금, 오히려 더 잘 써 먹힌다. 하지만 그 학위 자체를 목표로 삼는 공부는, 지금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 학위는 도착이 아니라 통과였고, 그 통과 이후의 여정이 지금 완전히 새로운 지형 위에 펼쳐지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공부는 겸손해지는 과정이라고. AI 앞에 선 지금, 나는 다시 한번 겸손해진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작점>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