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어떤 한의사의 몸무림
"몸이 힘들지 않으면 복록이 두텁지 못하며 마음이 힘들지 않으면 지혜가 깊지 못하다."
양명학의 창시자 왕양명(1472~1528)
나는 오늘도 공부하고 내일도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그 어려운 환자를 만난다면 나의 이 방법이 잘 적용하여 좀 더 1%라도 그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비방이 된다면 환자를 치료하기 위하여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고자 한다. 그래서 지금도 피곤한 눈을 비비며 이 책 저책을 뒤지며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 나의 마음이 너무 힘들기도 하지만 공부를 할수록 끝이 없는 공부가 의학 공부 아니겠는가? 왜냐하면 환자들을 대할 때마다 조금이라도 통증에서 벗어난 환자의 밝은 미소를 보면 그 환자를 통하여 나의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나는 세상을 위하여 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세상으로부터 철없이 받기만 하고 자랐다. 60여 년이란 세월이 지난 이제 겨우 철이 들어 이 세상으로 받은 선물이 너무 나도 많았음을 깨닫게 되었고 이 선물 빚을 갚아야 할 나의 의무도 보이게 된다. 한의사로서 그것이 죽을 때까지 가야 할 나의 인생 깨달음의 남은 여생 길이다.
한의사 생활 35년 차인 지금도 어쩌다가 환자가 잘 치료되면 나는 모든 병을 다 고칠 수 있을 <화타명의>가 된 것처럼 우쭐되곤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하늘은 난치병 환자를 나에게 보내주셨고 치료하기 어려운 그런 환자를 마주하는 순간 나같이 정말 실력 없는 하찮은 햇병아리 한의사는 없구나 하며 나 자신의 교만함을 한순간에 무너지게 만들었다.
오늘도 SNS에서 악플로 공격을 받았다. SNS에서 자기 본 얼굴 사진, 자기 이름, 자기 연락처, 자기 소속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동물 사진, 꽃과 경치 사진, 만화 캐릭터 사진 등등을 자기 얼굴이라고 올린 후 정식 이름도 올리지 않고 영어와 숫자를 섞어 가며 이상한 이름을 만든 후 그것을 방패 삼아 SNS에서 마구잡이로 악플을 달거나 욕을 하거나 심한 막말을 하는 이들을 나는 사회적 귀태(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회적 SNS 인간 기형아)라고 호칭한다.
패배주의적 생각과 남을 괴롭히거나 남을 죽이고 자기가 살려고 하는 극단적 이기주의 그리고 어려서부터 성적 등수를 올리는 공부만이 최고이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오직 남을 이기고 학교 성적만 1등 하면 되고 진정한 인성교육 같은 것은 필요 없고 오직 학교 점수를 올려서 남을 이기고 반에서 1등 또 1등 하는 것만이 나의 어떠한 기괴한 행동들 즉 모든 것도 이해하며 용납할 수 있다는 일부 부모님 세대의 생각 속에서 그들은 자란 것 같다.
대부분의 우리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세대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생존 본능의 경험으로 축적된 일부 잘못된 교육관에 의해 자라나고 강요된 어떤 자식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한 사람들 속에 편협된 지식 교육만 받고 중요한 인성 교육의 부재로 학교 성적만 잘 나오게 하여 좋은 대학만 가면 최고의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인격체가 아니라 친구나 자기 주변의 다른 사람을 경쟁상대로만 보며 자기만 오직 살고자 하는 이상한 사회적 귀태(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회적 SNS 인간 기형아)가 너무 많이 존재하는 것이다.
특히 한의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사람들은 특히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에 편협된 서양의학만 공부하고 진료에 임하는 일부 의료인이나 일부 의료 관련 종사자들 중에 고전물리학적 사고방식의 뉴우톤적 데카르트적 기계론적 생명관에 입각한 분석주의적 환원주의적 생명관만으로만 인간을 분석하고 그 기준에 입각한 EBM(근거중심의학)만이 인간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그러한 결과만이 최고 진리이며 나머지는 비과학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리고 환자를 통하여 나타난 NBM(맞춤형 의학-환자의 호소하는 반응을 의사가 중요시 여기며 임상에서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하며 지금의 미 과학적 고전물리학적 사고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된다 하더라도 임상의학에서 부작용이 없고 효과가 있는 의학)은 무시당한다.
SNS에서 한의학을 공격하는 고전물리학적 사고방식만을 주장하는 사람 들은 나 같은 한의사를 <한방사>, <한방 무당>, <아프리카 주술사>, <의학 박물관으로 갈 시조새>, <민속촌 한약방의 마네킹>이 될 놈, <작두 타는 박수무당>이라고 한다.
의학은 과학으로만 되어 있지 않다.
의학은 예술도 있다.
의학은 철학도 있다.
의학은 기술도 있다.
의학은 종합적 치유예술이기도 하다.
의학은 그리고 다시 초과학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그 과학은 정말 불멸로 인간의 모든 생명현상을 모두 설명되는 완벽한 그 과학인가?
오늘날 지금의 그 최첨단이라고 하는 가장 과학적이라는 그 과학이 지금의 생명을 살린다는 유일한 그 과학인가?
과학이 더 발전된다면 지금의 그 비과학적인 것들이 초과학으로 시대를 앞서간 진정한 과학이었다고 미래에 증명될 수 있을까?
SNS 상에서 그 사람들은 인민재판 홍위병 놀이를 하듯이 날카로운 언어 죽창을 들고 찌르며 또한 중세 암흑시대에 무고한 사람들을 화형 시켰던 마녀사냥처럼 오늘도 언어 화형을 시키더라도
나는 가야 한다. 내가 마지막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이 일이 내가 하늘에 진 빚을 갚기 위한 나의 천직이자 운명이기에
지금의 현대물리학적 사고방식, 시스템적 사고방식 양자물리학적 사고방식이 혹시 아직까지 인체를 바라보는 과학적 생명관이 아니라고 기존의 주류 과학계에서 인정할 수 없다 할지라도
나는 어려운 나의 그 환자를 치료만 할 수 있다면 한방무당이 되어 작두를 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