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배우는 학생이라 적어다오

오늘도 나는 배우기 위해 살아간다

by 고기완


매일 아침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한 사람의 고백

매일 아침마다 나는 눈을 뜨는 순간, 천장을 바라보며 아직도 나의 목숨줄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아직도 나의 힘찬 심장이 여전히 가슴속에서 박동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나는 잠시 세상 잡념을 멈추고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감사를 올린다. “오늘도 살아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한 문장으로 오늘 하루는 시작된다.


이 조용한 의식은 거창한 종교적 신앙도, 습관적인 주문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죽음을 매일 곁에 두고 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나의 <영혼육에 대한 인사>다. 존재 자체에 대한 경외와 감사 그것이 나를 오늘 살아가게 만드는 동력이다.


죽음을 늘 곁에 둔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에게 죽음은 두려운 종착역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을 더 선명하게 살아내게 하는 <죽음은 나의 인생 나침반> 같은 것이다. 오늘 하루가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내기엔 너무 나도 아까운 시간들이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소곤대는 말 한마디, 찬란한 창밖의 영롱한 빛, 그저 스쳐 지나가는 남모르는 낯선 이의 표정 하나까지도 죽음을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이 새삼 고맙고 또 고맙고 눈부셔진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그동안 살아오며 가까기에는 나의 부모님을 저세상으로 보내야만 했고 멀리는 진료를 하면서 많은 환자분들이 나의 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신 분들의 모습이 영화장면처럼 나의 뇌리를 스쳐간다. 한의사인 나도 언제 가는 죽는다는 그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지금 살아간다는 것은 오히려 나의 이 삶을 더 깊고 선명하게 만들어 준다.


나는 가끔 상상해 본다. 숨이 점점 가늘어지고, 이제 이 생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는 그 찰나인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인 그때, 만약 나에게 단 몇 분이라도 내 인생을 조용히 돌아볼 여유가 주어진다면 나는 아마도 아주 편안한 미소를 지을 것 같다.


죽음이 문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창밖을 바라볼 여유가 있는 그런 순간을. 지나온 날들이 천천히 흘러가고, 나는 조용히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동안 충분히 나의 인연들과 사랑했는가? 그동안 충분히 나의 인연들에게 많이 배웠는가? 그동안 내가 지나간 자리가 조금이라도 나의 인연들과 더 따뜻하게 도움주며 살았는가? 그 세 가지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행복한 눈을 감겠다. “참 잘 살았다.” 그 한마디를 나 스스로에게 건네며 후회보다 감사가 더 많은 삶이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는 너무나도 행복함을 느끼며 세상을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나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려준다면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오히려 웃을 것 같다.

내가 떠나는 그날,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나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려준다면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오히려 웃을 것 같다. “아… 내가 그래도 누군가의 마음에 남을 수 있는 삶을 살았구나.” 그 깨달음 하나로 나는 가볍게, 아주 가볍게 이 생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아, 나의 삶이 그런 삶이었구나, 하고 스스로 자화자찬하며. 남들이 보기에 초라하든 화려하든 상관없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진심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려 했다면, 그것으로 나의 삶은 충분했다고 생각할 것 같다.


나는 내가 무슨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하늘이 이 세상에 내려보낸 하나의 작은 도구로서, 부지깽이처럼 보잘것없어 보여도 불씨 하나 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거창한 존재가 아니며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의 작은 도구, 불을 지피는 데 부지깽이 하나쯤은 꼭 필요하듯, 이 세상 어딘가에서 조금이라도 따뜻함을 더할 수 있는 부지깽이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산다. 부지깽이의 역할과 늘 죽음을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며 아직도 숨 쉬는 것, 아직도 사람을 만나는 것, 아직도 작은 깨달음을 얻는 것 이 모든 것이 나에게 매일매일 기적처럼 여전히 느껴진다.


나는 아직도 배우는 사람이다.


오늘도 나는 배운다. 환자를 만나며 그의 힘겨운 고통 속에서 하나를 배우고, 책을 펼치며 누군가의 깊은 사유 속에서 하나를 배우고, 스쳐 지나가는 글 하나에서도 작은 깨달음을 하나 건져 올린다. 하루에 단 하나라도 배우면, 그날은 헛되이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배우는 사람이다.” 이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 성장은 멈추고 삶은 굳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들수록 더 학생이 되고 싶고 여전히 나는 매일 학생이다.


오늘도 누군가를 만나 그 만남에서 하나를 배웠고 오늘도 누군가가 써놓은 책 속에서 하나를 건졌으며 오늘도 누군가 올려놓은 짧은 글 하나에서 무언가를 챙겼다. 세상이 거대한 교실이라는 것을, 나는 살수록 더 깊이 믿으며 스승은 강단 위에만 있지 않고 지하철 맞은편 자리에, 새벽의 독서 안에, 낯선 이의 짤막한 고백 속에도 있다. 배움이 멈추는 날이 삶이 멈추는 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공부하며 잠들고, 내일도 공부하며 깨어날 것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알고, 어제보다 조금 더 이해하고, 어제보다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매일 바란다.


배움에는 끝이 없고, 삶의 끝이 곧 배움의 끝

만약 언젠가 자식이나 후손이 내 지방을 쓰게 된다면, 부탁이 있다. 화려한 경력이나 번듯한 직함을 적어주지 않아도 된다. 어떤 상을 받았는지,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도 필요 없다. 그저 딱 한 줄이면 충분하다.


<죽어서도 배우는 학생> 그것이 내가 살았던 방식이고, 그것이 내가 죽고 싶은 방식이다. 배움에는 끝이 없고, 삶의 끝이 곧 배움의 끝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 세상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자연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며 살다 가는 것이 내가 그리는 가장 아름다운 마지막이다. 더 겸손해지고, 더 궁금해하고, 더 배우고 싶다. 언젠가 내가 이 세상을 떠난 뒤, 자식들이나 후손들이


문장 하나면 나는 충분히 만족한다. 삶은 결국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배우고

얼마나 진심으로 살아냈느냐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원한다.


이 사람은 죽어서도 배우는 학생이었다.